2011년 제 23회 부산가톨릭 문예공모전

 

1. 제23회 부산 가톨릭 문예 작품 공모 입상자 명단

 

부문

제 목

성명

(세례명)

주 소

전 화

본 당

최우수

수필

머리카락을 세다

이호정

마리아

양산시 동면 금산리 763 금산훼미리타운 908호

010-7305-0766

양산

우 수

나는 오늘도 빨래를 한다

이경자

크리스티나

부산시동래구사직3동137-6 3층

010-4567-7852

사직

동화

아름다운가게의크리스마스

양지영

수산나

해운대구 좌3동 주공2단지 201동 1301호

010-8844-1603

좌동

가 작

동화

내 친구 다니엘

최영홍

요셉

금정구 남산동 999-15번지

010-9330-0027

남산

소설

어른 연습

김지현

마리아

대연3동 경성대학교 누리생활관 905호

010-6525-6863

대연

수필

팥죽 행로

안영준

나타리아

남구 용호1동 GS하이츠자이 307동 2701호

010-7167-5164

이기대

장롱이 놓였던 자리

류윤모

요셉

울산시 중구 학성동 466-7 신화맨션 403호

010-6786-2841

복산

시조

소담재

장정식

그라시아노

부산진구 가야2동 669-9 벽산APT 114-904

010-3382-3977

가야

입 선

콩트

은수저

이정수

율리오

남구 용호동 오륙도 sk view 111-1502

010-3785-7402

남천

수필

물과 인생

조원제

토마스 아퀴나스

해운대구 좌동 1398 LG아파트 102-1302

011-863-2403

좌동

성당가는 길

김태향

아가다

울산광역시 동구 일산동 572-23번지

010-4193-8080

방어진

신앙체험

사랑하는 언니에게

이금주

마리아

해운대구 좌동 1392번지 두산 동국아파트 101동1803호

010-5549-0705

성가정

탄생

허영희

스텔라

남구 용호 1동 66-41 (12/5)

010-2493-2770

이기대

동화

내친구 도돌이

최선아

루시아

사하구 괴정1동 530-13 협진 태양아파트 7동 301호

010-4394-4667

사하

이태석 신부님

이중구

야고보

금정구 부곡4동 775-5번지 부곡아파트 308호

010-2256-5313

부곡

수필

복손

손미덕

가브리엘라

북구 화명동 대림쌍용 아파트703동 301호

010-9677-7061

수정

수필

무당벌레의 추억

정지영

카타리나

기장군 정관면 매학리 474-3

010-3867-7567

정관


 

 

*심사위원 : 시・시조(박옥위, 류선희, 홍정숙), 소설・콩트(이규정, 김상원), 수필・신앙체험(김양희, 정경수), 동시・동요(선용,정재분)

 

2. 제 23회 가톨릭문예작품 심사평

 

지난 11월 심사위원에게 넘어 온 응모작품은 모두 517편이었다. 작년의 118편에 비하면 관심이 매우 커졌음을 알 수 있다. 반가운 일이다. 이름이 모두 잘려나간, 원고 뭉치는 심사위원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9명의 심사위원은 각 장르별로 새로운 신인의 발굴에 기대를 걸면서 심사에 들어갔다.

먼저 문학성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어떤 장르이든 문학적 감동이 있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전에 정서법이나 단락, 원고지쓰기 등의 기초적 소양은 말할 것도 없다. 단순히 경험의 나열로서는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차근히 문학적인 기초를 바탕으로 꾸준히 정진하면 반드시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각 장르별 심사평을 간단히 적어둔다.

 

✤ 동시․동요

동시는 5명이 33편의 작품을 응모했으나 아쉽게도 입상작이 없었다. 동시는 어린이들의 해맑고 순진무구한 동심을 노래한 시이다. 그러면서 새로움과 감동을 노래한 시인데 응모작 33편 대부분의 소재부터 진부하며 동시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동시가 어떤 시임을 먼저 알고 응모해 주었으면 한다.

동화는 8명이 10편의 작품을 응모했다. 10편의 작품 중 <아름다운 가계의 크리스마스>, <내 친구 다니엘>, <내 친구 도돌이>는 동화로서 수준작이다. 사랑의 실천인 봉사, 사물을 바라보는 따스한 눈과 동심의 세계를 잘 그리고 있으며,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환상의 세계를 통하여 동화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선용, 정재분)

 

✤ 시․시조

시는 78명에 322편, 시조는 8명에 34편으로 총 85명에 356편이 응모되었다. <나는 오늘도 빨래를 한다> 는 상상력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으로 시어들의 유기적 연결이 자연스럽고 의성어의 적절한 구사와 잔잔한 마음의 빨래씻기를 잘 보여주었다. <대가야 순장소녀>는 박물관에서 본 순장소녀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 시대상을 애도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으며, <소담재>는 단아한 한수의 시로 소담재를 산뜻하게 나타낸 점은 돋보인다. 그 외 <장롱 놓였던 자리>, <성당 가는 길>, <이태석 신부님>,<탄생>, 등은 수준작이었다. 시 5편이라는 응모수를 지키지 않고 20~30편을 보낸 것은 심사위원들을 도와준다는 의미에서 응모자가 유의해야할 사항이다. (박옥위, 류선희, 홍정숙)

 

✤ 소설・콩트

콩트는 9명이 12편, 소설은 6명이 6편을 응모했다.

콩트 : 분량이 단편보다 짧다고 콩트가 될 수 없다. 콩트는 콩트로서의 특징이 있어야 한다.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예리한 혜안이 단편보다 더 강하면서 이를 촌철살인 격으로 나타내야 하지만 특히 반전기법으로 독자를 사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조건을 갖춘 작품이 없었다. 겨우 건져 낸 게 <은수저>였다.

단편소설은 6편이 응모되었고, 전반적으로 수준이 향상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한 작품은 눈을 번쩍 뜨게 했는데 나중에야 작가가 기성작가임이 밝혀졌다. 나머지 5편은 고만고만한 수준에 공통적인 단점들을 갖추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어른 연습>이 뽑혔다. 이 작품은 불량소녀가 통과의례를 거쳐 정화되어 가는 이야기인데 다소 산만한 느낌이 들었다. 대폭 압축해야겠다. 정진을 바란다.(이규정, 김상원)

 

✤ 신앙체험・ 수필

신앙체험기는 33명 34편이 응모되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모두 나름의 자기극복을 위한 노력이 엿 보이나, 단순한 체험의 나열이나 진부한 내용이면 식상하기가 싶다. 진솔한 자기고백과 성찰이 문학적으로 아우러져서 공감을 주고 감동을 느낄 때라야 신앙체험의 가치가 나타나는 것이다.<사랑하는 언니에게>는 죽은 언니와의 신앙적 대화를 통하여 자신의 신앙을 승화시키는 편지 형식의 글을 썼다.

수필은 54명이 66편을 응모하였다. 생활이나 신앙적 체험을 작품화 하는 데는 수필이 적절한 장르임을 말해준다. ‘붓 가는대로 쓴다.’는 말은 이제 진부한 말이 되었다. 적절한 테마와 주제에 맞는 다양한 자료가 망라된 가운데, 주제로 향해 집중되는 탄력이 없고는 한편의 잘 짜여진 수필이 되기는 어렵다. 그런 면에서 체험의 나열식구성이거나 주제가 흩어진 산만한 글들이 많았다. <머리카락을 세다>는 암으로 인하여 빠지는 머리카락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면서 내면의 갈등을 차분하게 아우르고 적절한 사유를 문학적 감동으로 이끌고 있다. <팥죽 행로>도 수작이다. 팥죽 쑤기를 통해 할머니와 어머니, 특히 어머니의 나눔과 사랑의 정신을 잔잔한 회상으로 반추하고 있다. 그러나 철자 띄어쓰기 등에 유의해야겠다. 그밖에<물과 인생>, <복손>, <무당벌레의 추억> 등도 수작이다. 정진을 바란다.(김양희, 정경수)

 

<요약>

전 장르에 걸쳐 186명, 517편이 응모되었으며, 9명의 심사위원이 지난 11월 9일(수) 장르별로 나누어 심사하였다. 대부분 컴퓨터를 통해 응모했는데, 편집을 하는 데 미숙한 곳이 많았다. 산문의 경우 단락을 나누는 것, 원고지쓰기의 원칙, 철자 띄어쓰기 등 기초적인 정서법 등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주제에 대해 집중하는 내용이 되도록 공부해야한다.

최우수작 이호정 씨의 <머리카락을 세다>는 내용의 집중성과 구성의 탄력이 내면의 사유와 잘 접맥되어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단락의 구분이나 표현의 적절성, 내용에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하게 처리되었다. 암으로 인한 좌절을 딛고 일어서려는 고뇌와 진실이 진하게 배어있다. 쾌유를 빈다.

우수작 이경자 씨의 <나는 오늘도 빨래를 한다> 는 상상력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으로 시어들의 유기적 연결이 자연스럽고 의성어의 적절한 구사와 영혼의 빨래씻기로 이어지는 착상이 기발하였다.

다른 우수작 양지영 씨의 동화 <아름다운 가계의 크리스마스>는 사물을 바라보는 따스한 눈과 동심의 세계를 잘 그리고 있으며,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환상의 세계를 통하여 동화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심사평 : 정경수)

■ 2011부산가톨릭 문예 공모전 입상작 최우수/수필

 

머리카락을 세다

이 호 정┃마리아

 

요즘 하는 일이라고는 빠진 머리카락을 세는 일이다. 일차 항암을 받은 이래로 닿이는 손길, 옷깃에도 우수수, 시커먼 숯덩이 뭉치처럼 빠지는 머리카락을 수습하느라 바쁘다. 여기저기 옷가지에 붙어 몸을 쑤셔 대고 있는, 머리에서 떨어져 나온 머리카락을 보노라면 서글퍼지기 일쑤다. 서너 시간씩 머리카락을 떼며 앉아 있노라면 삭발해 버릴까도 여러 번 생각했다. 여자란 자연적인 세포의 노화 현상마저도 한사코 거부하며 좀 더 아름다워지고 싶어 하는 존재가 아닌가. 세월의 흔적인 주름살이야 성형으로 화장술로 커버한다지만 탈모는 어찌 할 수가 없다.

여자에게 있어 머리카락이란 어떤 의미인가? 머리는 여자다움을 나타내는 여성의 상징 이상이다. 머리 부분은 화장술로 교묘하게 감출 수도 없는 곳이다. 남자는 대머리도 간혹 있어 머리숱이 없는 게 자연스럽지만, 여자는 머리카락이 없는 것은 이상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나는 마치 하루의 중요한 일과인 것처럼 머리카락을 모으며 하루를 연다. 차마 버리지 못해 모으고 있다. 내 신체의 일부이자 단 한 순간도 없이 살 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갑자기 사라진 그 존재감에 거울을 볼 때마다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풍성하고 새까맣게 웨이브 있던 곱슬머리는 이제 몇 가닥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암 선고 이후 한 달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중에 가장 큰 변화라고 하면 내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을 하거나 모임에 참석하려고 해도 지인들은 무리 되는 일이라며 오지 말고 쉬라고 한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내 주변의 지인들은 하나 같이 나를 배려해주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기에 그들은 내 마음의 상처보다는 먼저 내 몸부터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무엇이든 당하면 하기 마련인데도, 사람들은 무리하는 일은 못하게 말린다. 새삼스레 머리를 거울 앞에 갖다 댄다. 약간 젖은 눈은 연민으로 듬성듬성 빠진 두상을 지켜본다. 암 환자인 것을 표시라도 내고 싶은 것일까. 도무지 다시 자라날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나는 계속 머리카락을 세며 인생을 돌아 볼 수밖에 없다. 만 서른다섯 아니다. 이름값 높은 아파트의 38평을 분양받았고, 내 이름의 영어 학원도 열었다. 아이들도 많이 모이고, 가맹점도 2호점부터 7호점까지 6개월 간격으로 오픈 예약이 잡혔다. 배우로서 다시 선 연극무대에서는 다음 작품이 선정되어 대본이 수정에 들어갔고, 그간 여러 번의 고백과 청혼도 받았다. 모든 일이 너무나 순조롭게, 마치 행복 열차라도 타고 있는 것처럼, 진행되어 가고 있을 때, 브레이크가 걸리며 암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이럴 때를 운명의 장난이라고 하지 않는가.

모든 것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결혼도 할 수 없고, 사회에서의 명성도 없다. 나는 다만 머리카락만 세고 있을 뿐이다. 우두커니 바라보던 창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만져본다. 그 차가움에 문득 감사한다. 아니 정확하게 내가 살아 있음에, 너무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올 땐 그 차가움을 느낄 수 있는 지금의 내가 살아 있다는 것에 북받치는 것이다.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물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떠나간 연인이 그립고 옛 친구가 그리워진다. 옷깃만 스치고 갔던 사람에게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인생이 길 줄 알았다. 악착 같이 벌어서 번듯하게 살며 노후를 대비하고 그래서 좀 더 편안하게 살게 되는 그게 다인 줄 알았다. 삶을 치열한 전쟁을 치르듯이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시간에 쫓기며 살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병마와 외로움과 약해지는 내 자신과 싸우고 있다. 어쩌면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모자를 벗는다. 머리를 감을 때 빠진 머리카락들이 엉켜 한 뭉치씩 매달려 있다. 가위를 들고 머리카락을 자른다. 코끝이 시큰해진다. 이제 울지 않으리라. 이 머리 뭉치는 병마와 싸울 내 자신의 각오다. 나는 환자처럼 보이지 않으려 남은 머리를 자르지 못한 건지도 모른다. 다 빠진 머리를 하고도 암이 아닐지 모른다고 버텼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강해져야만 한다. 나의 십자가, 나는 기적을 믿는다. 나는 말기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내 사람들을 향해 진심으로 계속해서 말하리라.

태양이 하늘 어디론가로 깊이 잠적해 버리면, 가만히 있기가 힘들다. 신기가 오른 여자처럼 떨치고 일어선다. 갈대처럼 흔들리지만 쓰러지지는 않는다는 자세로 조그마한 주먹을 쥔다. 고지를 눈앞에 두고 오르지 못한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채워지지 않는 갈구는 무엇이며 치열한 갈증은 또 무엇인가. 그러나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걸 한시도 잊지 않는다. 건강한 사람들에게 산다는 것이 한 자락 꿈이라 부질없는 욕망이라고 해도 나에겐 살아야 한다는 것은 절대 절명의 도전이요 과제가 아닌가. 잡히지 않는 그림자 같은 것일지라도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붙잡아야 하질 않겠는가.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이윽고 강한 생명의 욕구를 느낀다. 숨을 쉬고 싶다. 한 순간이나마 온전히 나 자신이고 싶다. 공기, 그 앞에 서면 전율과도 같은 쾌감이 낱낱의 신경을 자극한다. 공포와 두려움의 포박을 푼다. 비로소 가슴이 후련해진다. 마음이 맑아온다. 살아 있다는 것이 자신과 싸워나가며 나약한 자신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이 말할 수 없이 고맙다. 문을 열고 길게 호흡해 본다. 나는 가끔 빛에서 어둠으로, 또 다시 어둠에서 빛으로 왔다 갔다 한다. 그렇게 하면서 차츰 강해진다. 비가 그친 후의 신선한 공기가 내 폐로 깊숙이 들어와 온몸에 퍼진다.

38평의 아파트 그리고 7호점까지 예약된 가맹점도 다시 되찾고 싶다. 오르기 직전에 놓친 고지에도 다시 오르고 싶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욕심은 탐심이니라. 소유의 인간에서 존재의 인간으로 변모하라는 외침이 들려오는 듯하다.

2010년 1월의 날에

 

■ 2011 부산가톨릭 문예 공모전 입상작 우수/동화

 

아름다운 가게의 크리스마스

양 지 영┃수산나

 

따뜻한 겨울 볕이 천천히 가게 안으로 스며듭니다. 점심을 막 끝낸 자원봉사자들이 끓이는 커피향기가 기분을 좋게 합니다.

문 밖에는 방금 도착한 중고 물건들이 복도에 나란히 키를 맞추고 있습니다. 오늘은 몸이 큰 세탁기도 한 대 도착해 있고, 아기들이 사용하는 식탁도 보입니다. 유리 창문에는 크로바그림의 “아름다운 가게”란 글자가 쓰여 있습니다. 이곳에는 매일 새로운 소식으로 넘쳐납니다.

진열된 벽 모서리의 두 번째 칸에는 낡고 못 생긴 가방들과 구두들이 줄지 어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습니다.

오전에 잠시 할머니들이 다녀갔습니다. 봉사자들이 부딪히는 커피 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오후 시간입니다.

나는 이 시간이 제일 심심합니다. 잘난 체하는 콧대 높은 명품가방도 며칠째 잠잠합니다. 첫날, 명품가방이 오는 날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진열대가 전쟁이 날만큼 시끄럽고 요란했거든요. 명품가방의 몸에는 헤어진 손잡이와 바래진 가죽표피의 상표가 희미하게 남아있었습니다, 금속장식을 딸랑거리며 명품가방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습니다.

“좁고 더러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지낸데? 돌아보니 새 것은 하나도 없구먼.”

조용한 진열대에서 가방들이 수군거렸습니다.

“당연하지, 여긴 중고물건들이 모이는 곳이야.”

모서리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골프가방이 톡 쏘며 말했습니다.

“루비똥, 아무리 잘난 체 해봐도 여긴 다 중고 물건 집합소야! 다 비슷한 가격으로 팔린다는 사실이야. 그나마 이런 곳에서도 주인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인줄 알아!”

말이 마치기도 전에 루비똥이 건들거리며 말했습니다.

“어이~ 골프가방, 평생 차가운 골프채만 담는 주제에 말이 많군. 내 몸에서는 아직도 주인이 남기고 간 향수냄새가 있어. 아무리 이런 곳에 굴러다닌다 해도 명품이 가지는 명성은 여전하다고 아마도 얼마 있지 않아 나의몸값을 알아주는 근사한 주인이 나타 날거야.”

이곳에 오랜지기로 지킨 골프가방은 이제는 모든 것을 체념했다는 투로 심드렁 하게 말대꾸합니다.

“그나마 쓰레기 소각장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알아!”

골프가방의 한마디에 명품가방이 입을 삐죽거렸습니다.

오늘도 우리 주인은 나를 찾아오지 않을 모양입니다. 이곳엔 배낭도 많고, 보조가방도 많지만, 나는 요술공주그림이 그려진 핑크빛 가방입니다. 어쩌다 이곳에 흘러 들어왔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주인이 일하는 동안에 일어난 일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이곳에 맡겨졌는데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많은 가방들이 들어왔는데 새 식구가 들어올 때마다 가방들은 비좁다고 아우성을 지릅니다.

한동안 이 낯선 곳에서 부대끼느라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불평들이 많습니다. 좁고 불편한 곳이지만 가방들은 곧 적응합니다. 친절한 봉사자들과 새 주인이 나타날 희망에 부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발길도 끊어지고 창문을 바라보니 서리가 소복이 쌓여있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붑니다. 덜컹 거릴 때마다 찬바람이 창틈으로 새어 들어옵니다. 이런 날은 주인이 많이 보고 싶습니다. 주인과 함께 학교 마치면 가는 곳이 정해져 있습니다. 넓은 공원이었습니다.

“아줌마! 호떡 세 개 주세요?”

호떡 사러온 손님이 소리치지만 호떡을 굽는 아줌마는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주인은 포장종이에 능숙한 솜씨로 호떡을 넣습니다. 기름기 없이 바싹하게 구워진 호떡에서는 달콤한 꿀이 흘러내립니다. 호떡 굽는 아줌마가 손짓으로 주인에게 호떡을 먹으라고 하지만 주인은 그럴 때마다 수화로 대답합니다.

“엄마, 괜찮아~ 나는 배불러요.”

손짓으로 답변하는 주인이 참 근사합니다. 손짓으로 대화를 하는 모습은 이 세상에 말로써 대답하는 일보다 더 가슴을 울리는 일 인거 같거든요.

또 한 아이가 친구들과 호떡을 사러 왔습니다.

“아줌마, 호떡 주세요!”

대답이 없자 아이가 냉큼 말했습니다.

“아줌마, 아줌마 호떡 달라니깐!”

아이의 말에 짜증이 묻어나왔습니다.

아줌마가 수화로 조금만 기다리라고 손으로 큰 행동을 보여도 아이는 막무가내입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아줌마 눈엔 안타까움이 실립니다. 나도 아줌마도 말 못하는 세상 갑갑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창문을 바라보며 공원의 바람이 오늘은 얼마나 추울까를 생각해봅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공원에서 오늘도 호떡을 담고 있을 주인을 생각하니 마음이 슬퍼집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술렁거리던 가게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쉿! 조용해. 범이가 떴다.’

범이는 수요일마다 자원봉사자가 데리고 온 아이입니다. 범이는 어김없이 긴 작대기를 들고 가게통로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옵니다. 범이가 지나갈 때마다 인형이 힘없이 떨어집니다. 악기코너에 멈추어 서자 탬버린을 사정없이 두드리는 가하면 긴 막대기로 물건들을 건들기도 합니다.

“이것들은 뭐야? 본때를 보여줘야겠어!”

서 있던 골프가방이 힘없이 무너지고 차례대로 가방이 막대기 끝에 매달려 빙빙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야,범,너,또 정신없이 할 거야~ 물건들 가만 놔두지 못하겠어?”

범이 엄마가 또박 또박 부르고 있는데도 막무가내입니다.

바닥에 떨어진 가방들 사이로 공중에서 빙빙 돌아가던 학원 가방이 철퍼덕 소리를 내며 떨어집니다.

가게 안은 폭격 맞은 것처럼 정신이 없습니다.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치루는 전쟁입니다. 범이는 가만히 있는 물건들을 보면 괜히 마음이 뒤틀리나 봅니다. 막대기로 빙빙 돌리는 일이 시들해진 범이는 이번에는 구두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구두 한 짝이 날아옵니다. 신발코너에 신발들이 와르르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보다 못한 범이엄마가 범이 손을 꼭 잡았습니다

“어이구, 내가 너 땜에 못살아!, 집에서 데리고 오는 게 아닌데 …….

같이 있던 자원봉사자들도 범이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습니다.

한바탕 시끄러운 일들이 지나가고, 물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제자리로 찾아들었습니다. 범이가 오는 날의 신고식이 끝났습니다.

짧은 해가 창가에서 머뭇거립니다. 얼마 있지 않아 해는 서서히 꼬리를 감춥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일을 끝내고 가게 안을 휘 둘러보더니 불을 끄고 문을 닫습니다. 순간, 크리스마스 추리에 오색불이 환하게 들어옵니다. 어둠속에 반짝거리는 꼬마 전등위로 산타할아버지가 마차를 끌 준비를 합니다. 추리위에 달린 갖가지 선물꾸러미가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저 양말 안에는 오늘 누군가가 선물을 놓고 가겠지요.

밤이 깊어지자 창가로 바람이 휘익 소리를 내며 지나갑니다. 크리스마스추리 앞으로 가방들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명품가방이 너덜거리는 금장식을 어루만지며 말합니다.

“아! 또다시 크리스마스가 다가왔군, 나는 이맘쯤 파티를 다녔어. 환상적인 밤을 보냈지.”

그러자 큰 가방이 말합니다.

“맞아, 크리스마스 종소리가 울리고, 나는 성탄미사를 보러 다녔어. 이웃들에게 나누어 줄 초를 항상 가지고 다녔지. 평화로운 밤이었어.”

스포츠 가방이 할 말 있다는 듯이 앞으로 나가며 말했습니다.

“나의 주인은 크리스마스에도 운동을 다녔지. 매일 저울에 올라가 몸무게를 재고했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

학원 가방도 지지 않은 듯이 말 합니다.

“맞아, 나도 학원 다닐 때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있었어. 주인은 나를 함부로 대했어. 집에 오면 나를 완전히 내동댕이쳤어.”

엄숙한 목소리로 골프가방이 말합니다.

“그래 우리는 너무 상처받았어. 사람들이 우리들을 아끼고 돌보지 않았어.”심지어 잃어버려도 찾아오지 않는 인간들이 괘씸해!”

그때 조용히 지켜보던 여행 가방이 큰 몸집을 뒤뚱거리며 다가왔습니다.

“나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어. 유럽 곳곳에는 벼룩시장이 많이 열리지. 우리 같은 이런 물건들을 값나가게 쳐주는 곳이 그곳이야 우리의 오래된 나이를 알아주는 거지. 새것이 아닌 오래된 것에 대한 사랑을 품을 줄 아는 사람들이야. 우리도 생각을 바꾸어야해. 그래서 아름다운 가게는 새롭게 시작하는 가게라고 생각하면 되.”

크리스마스 추리가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밤입니다.

나는 가방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주인이 언젠가는 나를 찾아 올 것 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버려진 가방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입니다. 일찍 출근한 자원봉사자가 문을 열었습니다. 환한 햇살이 가게 안으로 와르르 쏟아집니다. 어디선가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려옵니다.

점장님이 빨간 모자를 머리에 쓰고 산타 복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물건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바자회행사에 내어 놓을 물건을 고르고 있습니다.

“점장님! 바자회 장소는 어딘데요?”

“이번에는 공원이 될 거 같아, 물건을 좀 여러 가지 담아야 할 거야!”

가게 안을 둘러보던 점장님은 물건을 담기 시작합니다.

“어디보자, 어떤 물건이 좋을까?”

피노키오 인형도 당첨되고, 장난감도 당첨되었습니다. 보따리의 배가 자꾸 자꾸 불러옵니다. 그러다가 진열대에 놓인 가방 앞에 섰습니다. 내 가슴이 콩콩 소리를 내기 시작 합니다. 점장님이 내 손을 잡았습니다. 나는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쉬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종소리가 크게 들리는 가게 안에 오늘도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네, 오늘이 크리스마스네요. 주님의 은총이 가득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 2011 부산가톨릭 문예 공모전 입상작 우수/시

 

나는 오늘도 빨래를 한다

이 경 자┃크리스티나

하루 종일 만난 인연들을 벗었다.

투명 산소통에 넣어 흔들어 본다.

산소로 씻기지 않은 얼룩 짙은 인연들.

상처의 파편, 얼룩진 눈물자국, 이산화탄소의 심장.

하얀 물속에 빠뜨린다. 역부족이다.

열 명의 협조자가 투입된다.

뽀득뽀득.

을 위해 일치하여 기를 모은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오직 선한 마음이면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루리라.

뽀득뽀득.

얼룩진 상처의 인연들, 선으로 위로해 주었다.

이산화탄소의 심장, 일치된 사랑으로 산소가 공급되었다.

물 속 단련에 후줄근해진 빨래, 빨랫줄에 널었더니

땅에서 올린 정성, 해가 내려와서 뽀송뽀송.

지성감천至誠感天

 

 

세상 속 어리석음들로 얼룩진 내 영혼.

선한 눈물로 뽀득뽀득.

눈물 속 단련에 지친 내 영혼, 빨랫줄에 널었더니

땅에서 올린 정성, 해가 내려와서 뽀송뽀송.

지성감천至誠感天

 

나는 오늘도 빨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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