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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문인들

회장 장승재(야고보)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할 때 우연히 만난 사람이었다. 고풍스런 성벽을 돌아 예수님 탄생기념 성전으로 가는 입구 한켠에서, 그 옛날 로마시대 의상으로 치장한 노인이 엉성한 하프를 뜯으며 목청껏 무슨 주문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히브리 말 같기도 한 노인의 노랫말 뜻이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엄숙한 표정과 진지한 목소리와 손짓은, 아마 옛날 이야기나 시편 구절을 읊조리는 게 아닐까 짐작되었다. 빠듯한 순례일정에 쫓겨 어디 한곳에 멈추어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지만, 노인을 보는 순간 나는 호기심이 발동했고, 엉뚱한 상상에 말려 잠깐 일행과 뒤처져 노인의 음율을 음미하며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고, 빙그시 미소까지 짓는 여유를 즐겼다.

그 옛날 예수님 시절, 아니 그보다 더 옛날, 예언자 시대에 하느님 말씀을 저 노인처럼 노래로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았을까? 입으로 전승되어 온 히브리 민족들의 역사라든가 원조 아브라함과 모세의 행적을 저렇게 노래로 가르치지 않았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 옛날의 문인들은 분명 저 노인처럼 하느님 찬미를 지어 노래했으며, 이 노래를 들은 사람들이 따라 불렀고, 그것이 오늘날 전승된 시편이요 거룩한 성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내 나름대로의 유추를 했었다.

어쨌든, 글을 쓰는 사람들 오늘의 문인들은, 그 옛날처럼 백성들로부터 추앙받는 사람들도 아니요, 중요한 직업도 아니며, 설사 전업문인이라 하더라도 밥먹기가 빠듯한 잊혀져 가는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문학을 전공하며 창작에 매진하는 일은, 이제 시답잖은 일이요, 배고픈 길을 자청하는 어리석은 일로 치부해버리는 세태가 되어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다 글을 쓰게 되었고, 글쓰기가 좋아 문인이 되어버린 우리들. 그러면서 많은 문인들 가운데 용케도 천주교 신자라는 동질성으로 한 두 사람이 모였고, 그러다가 창립된 가톨릭문인협회이다. 올해로 어언 1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아홉 권이나 되는 책을 상재하기도 했으니, 생각하면 우리 스스로가 여간 대견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과 많은 곡절을 겪으면서도 이제 올해 열번 째 문집을 내어 놓게 된데는 모든 회원들의 하나같은 소망과 합심의 소산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하나 둘이 아니다. 협회가 출범할 당시엔 월례회는 통지서를 받든 못받든 보고싶은 마음에 다들 모였고 화기애애한 모임이었다. 그러나 근년에 와선 통지서는 물론 전화까지 해도 얼굴을 보이지 않는 회원들이 늘어가고 있어서 여간 우울하지 않다는게 회원들의 푸념이다.

우리 교회에는 많은 신심단체가 있어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여 함께 기도하고, 같은 길을 가는 동행자로서 같은 생각을 나누며 친교를 돈독히 굳혀가고 있다. 예술은 여럿이 하는게 아니라 혼자서 하기때문에, 단체같은 번거로운 건 안하겠다고 생각하면 빠지면 된다. 그러나 잘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협회를 왜 이렇게 끌고가느냐며 뒤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일만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문인협회는 사회의 여느 문인단체와는 엄연히 구분된다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있다.

어쨌든, 지난 봄 우여곡절 끝에 집행부를 맡아 간신히 모임의 명맥을 유지해 나가고 있지만, 모든 회원들의 내 일같은 뜨거운 관심과 사랑이 더욱 절실하다는 것을 솔직히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 모든이들의 축복인 대망의 대희년도 이제 반 이상의 날들이 흘러가고 있다. 새 천년을 맞으면서 우리모두 스스로 다짐했던 소망스런 일들을 다시한번 추스리면서, 하느님 백성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잠깐 반성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 주신 나의 달란트를 과연 나는 어떻게 유용하게 잘 쓰고 있는지도 뒤돌아보도록 하자. 그 옛날 이스라엘 광야에서 하느님 말씀을 음유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던 원조문인의 원형질이 나에게 있는지도 살펴보도록 하자.

부산가톨릭문인협회는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동인모임도 아니요, 문인 상호간의 친교와 권리를 도모하는 이익집단도 아니며, 오로지 하느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고 우리가 받은 달란트로 하느님 말씀을 문학으로 승화시켜 창작하며 형제애로 친교를 다지는 협회라는 것을 다시한번 짚고 넘어가야겠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10집이 나오기까지 수고하신 모든 분께 감사하면서 책을 손에 쥐었을 땐, 시원한 술이라도 건배하면서 힘찬 재출발을 다짐하고 싶다.


2000년 더운 여름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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