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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매 수필의 전개와 방향 / 정목일
 
 
1. 5매 수필의 대두
 
'장편(掌篇)'이란 '극히 짧은'이란 뜻이다. 단편소설보다 짧은 장편소설은 있었지만 장편(掌篇)수필의 대두는 근래의 일이다. 윤오영의 '달밤'이나 피천득의 '오월'은 5매 내외로써 장편수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굳이 '장편수필'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수필과 비평'지는 2001년부터 장편수필을 기획하여 1년이 넘게 게재함으로써 처음으로 장편수필의 전개를 보여주었다. '촌감단상(寸感斷想)'이란 명칭으로 제51호에 김시헌, 정봉구, 정진권, 정목일, 안재진, 제52호에 구자분, 유병근, 장생주, 최병호, 허창옥, 제53호에 반숙자, 박재식, 심영구, 황다연, 제54호에 김수봉, 맹난자, 박영학, 이재인, 정진채의 작품이 선보였다. '수필과 비평'지는 계속해서 장편수필을 청탁하여 게재하고 있다. '새 천년 한국문인'지에서도 기획특집으로 장편수필을 게재한 바 있다
 
장편수필의 대두에 대하여 문단의 구체적인 반응으로써 '월간문학'지 출신 수필가들의 모임인 '대표에세이문학회'에서 2002년도 연간집을 '5매수필'로 하기로 결의하고, 세미나의 주제를 '5매 수필'의 개척과 방향'으로 잡은 것이 본격적인 논의의 시초이다.
 
대표에세이문학회에서는 '장편(掌篇)'이란 단어가 추상적이기 때문에 분량에 대한 구체적인 명시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5매 내외가 적당한 하다는 합의를 도출하였다. 따라서 '장편수필'이란 애매한 개념 대신에 명확한 개념인 '5매수필'이란 말을 붙이기로 했다. 장편수필의 전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장편수필'의 불분명한 분량에 대해서 명확한 개념정리가 필요한 것이므로, 대표에세이문학회에서 규정한 '5매수필'이란 용어에 대해 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필과 비평'지의 장편수필의 게재와 대표에세이문학회의 5매수필 연간집 발간은 본격적인 장편수필의 전개를 보여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왜 5매수필의 전개가 대두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수필의 분량은 대개 15매 내외로 비교적 짧은 산문이기에 현대인들이 읽기에 적당하다. 시의 장점과 소설의 장점을 두루 취하면서 독자적인 개성을 드러내는 수필은 시와 소설의 중간 거리에서 가장 경제적인 효능을 인정받아 대중문학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런데도 3분의 1로 줄여 5매 정도의 분량을 취할 까닭이 있는 것일까?
 
 
2. 5매 수필 대두의 배경
 
짧은 수필의 요구는 '속도'를 가치화 하는 시대적 추세 속에서 파악해야 할 것으로 본다. 독서의 경향을 보더라도 대하소설이나 장편소설이 차츰 퇴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반면, 만화나 간단한 읽을거리, 짧은 분량의 글을 선호하는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시간절약의 경제성이 스피드한 생활을 영위하는 현대인들의 삶과 부응하는 면이 있으며, 5매 내외의 분량은 전철이나 여행 중에서도 시간적 공간적인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짧은 글 속에 함축된 심오한 사상과 값진 체험, 인생적 발견과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장편수필의 매력이다. 5매 내외의 글은 독자들에게 눈의 피로나 마음의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에 열독성이 있고 경쾌감을 주기 마련이다. 실제로 신문을 볼 경우에도 뉴스 벨류에 따라 톱뉴스의 제목과 부제에서부터 시작하여 필요하다면 본문을 읽어 가는 방식이 신문 읽기의 통례이다. 간결과 축약을 바라고 있다. 이는 모든 면에서 경제성을 요구하는 현대인의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런 요인들이 수필의 분량을 더욱 짧게 요청하는 하나의 경향을 이루고, '5매수필'의 전개를 바라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3. 5매 수필의 모습
 
현재 5매 수필은 어떤 모습일까? 처음으로 5매 수필(寸感斷想)을 기획 연재하고 있는 '수필과 비평'지의 2001년 51호, 52호, 53호, 54호에 발표된 19편을 텍스트로 삼아 5매 수필의 모습과 특징 등을 살펴본다.
 
1) 5매 수필의 분석
 
2) 5매 수필의 특징
 
(가) 효율성
- 5매 내외의 짧은 글이기 때문에 부담성이 없다(독서의 동기유발)
- 주제전달의 용이성(경제성)
- 주제의 선명성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다.
 
(나) 구성의 묘미
- 짧은 분량에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집필 전에 미리 구성을 하고 쓴 흔적이 보인다(구성에 대한 의식).
- 사물과 사물, 사례와 사례를 비교, 대조, 연상, 역관점으로 연결시켜 작자의 견해(주제)를 드러내는 구성을 보여준다.(단일 구성보다 2중 구성)
 
(다) 심오성
- 짧은 글에서 내용이 없다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심오성을 추구하고 있다.
- 사상성, 철학성, 삶의 깨달음, 사물에 대한 관조 등으로 깊은 사색과 삶의 철학을 보여준다.
 
(라) 참신성
- 소재, 주제, 구성 등에 있어서 눈길을 끌기 위한 요소로써 참신성을 의식하고 있다.
 
(마) 기법의 다양화
- 1인칭이 아닌 수필, 소설적 기법의 수필, 비평적 기법의 수필 등 다양한 기법을 선보이고 있다.
 
5매 수필은 시도 단계이지만 이와 같은 특징들은 묘미 제공과 함께 수필문학의 새로운 전개와 발전에 한 축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4. 5매 수필의 전개방향
 
1) 압축성
장편수필의 면모는 내용의 압축성에 있다. 장황한 서사나 설명이 아니라, 압축된 사상과 내용이 요구된다. 엑기스만으로 쓴 가장 경제적인 글이 되려면 압축성이 필요하다.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빙 둘러가는 방법보다 첩경으로 인도해야 하기에 함축과 절제, 암시와 상징, 비유와 역설 등 시적 기법을 이용하여 최대한 압축하여야 한다.
 
2) 참신성
주제나 소재의 참신성이 요구된다. 참신성은 어느 글이나 요구되는 요소이지만 특히 5매 내외의 수필일 경우엔 일상성적인 주제나 소재로서는 독자들의 흥미를 사로잡을 수 없다. 기발한 착상, 평범 속의 비범, 역 관점, 독자적인 해석, 새로운 소재, 전문적인 주제의 탐구, 흥미성의 계발, 공통 관심사의 새 관점 전개 등을 통해 참신성을 제공해야 한다.
 
3) 서정성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서사수필보다 감성이 바탕을 이루는 서정수필이 더 적합하다. 이야기가 있는 수필의 경우라면 하나의 단순한 이야기를 취하는 것이 좋다. 예컨대, 윤오영의 '달밤'과 피천득의 '오월'이 여기에 해당된다. 분량이 짧아진다는 것은 시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일 수 있다. 소설적 기법의 서사수필보다도 시적 기법의 서정수필에 적합한 양식이다.
 
4) 효율적인 구성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란 개념 때문에 무 구성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수필은 시나, 소설, 희곡 등 픽션문학과는 달리 의도적이고 치밀한 구성을 요하지는 않지만, 자유로움 속에 구성이 이뤄진다. 구성이 없는 문학이란 존재하는 않는다. 특히 5매수필의 경우엔 고도의 구성요법이 필요하다. 짧은 분량에 작자가 사상과 메시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선 보다 치밀한 구성이 요구된다.
 
5) 개성
수필은 개성의 문학이다. 어떤 문학장르보다 자신의 개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수필은 작자의 사상과 감정은 물론이요 습관, 취향, 인생관, 가치관, 태도 등이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소재, 주제, 문체, 사상, 태도 등에서 작자의 개성이 드러나야 독자들의 흥미를 북돋울 수 있다. 개성이 없는 글은 맛이 없는 음식이나 다름없다. 작자 나름대로의 독특한 개성의 발휘는 수필의 맛을 제공하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6) 문장
간결한 문장이 요구된다. 인용문의 삽입이나 예문을 도입하는 것은 자제하는 쪽이 좋다. 논리적인 문장보다 여운을 주는 서정적인 문장이 더 적합하다. 작자가 어떤 문제를 제시하여 결론짓는 쪽보다 독자들이 생각하여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는 것이 묘미다. 서두에 금언, 격언, 시, 속담 등을 삽입하여 시작하는 경우가 있지만, 5매수필의 경우엔 단도직입식의 전개가 효과적이다.
 
7) 심오성
극히 짧은 분량이라고 해서 내용이 없다거나 깊이가 없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5매수필의 성패는 '짧은 글 속에 담긴 심오성'에 있다. 부담 없이 읽었더니 '깊은 감동과 여운을 주었다'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5매수필' 쓰기의 어려움은 짧은 분량 속에 깊이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고도의 인생 연마와 깨달음의 경지를 갖지 않고선 구사할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문장뿐만 아니라, 철학성과 사상성이 결부돼야 할 것이다.
 
8) 구성
사물과 사물, 사례와 사례를 비교, 대조, 연상, 역관점으로 연결시키고 자연현상을 인생과 결부시킨다든지, 일반적인 예시를 의미부여하는 방법 등으로 내용을 심화시켜 나가는 것이 좋다.
 
 
5. 5매 수필에 대한 기대
수필문학 영역의 개척과 시도라는 차원에서 '5매수필'의 본격적인 전개의 필요성을 느낀다. 변화와 속도의 시대에 문학도 이에 적응하지 않을 수 없다. 5매수필은 속도, 변화, 경제성을 요하는 현대의 추세와 현대인의 삶의 속성에 부합되고 있다. 앞으로 '5매수필'에 대한 본격적인 영역 개척과 좋은 작품의 출현으로 수필 문학 발전의 전기 마련과 활력소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