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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수필이 좋은 수필인가 / 김태길
 
 
마음의 세계
 
수필가는 자기가 몸소 체험한 이야기와 느낀 소감, 또는 자기가 관찰하고 생각한 바 등을 산문으로 기록한다. 그런 뜻에서 수필은 작가의 마음의 세계를 그리는 자화상에 가깝다.
 
화가들이 그리는 자화상의 경우에 있어서, 좋은 그림이 되기 위하여 화가의 용모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어느 전문가에게 물어 보았더니, 자화상의 예술적 가치는 주로 그리는 솜씨에 달렸으며, 화가의 용모가 수려할 필요는 없다고 대답하였다.
 
아마 의견이 다른 전문가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설령 용모가 뛰어난 화가만이 훌륭한 자화상을 그릴 수 있다 하더라도, 평범한 외모가 탁월한 화가가 되기에 큰 지장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자화상이 아닌 다른 그림을 얼마든지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필의 경우는 사정이 크게 다르다. 수필이라는 것은 통념상 자기의 정신세계를 대상으로 삼도록 마련되어 있으므로, 화가의 경우처럼 묘사의 대상을 아무 데서나 구하기가 어렵다. 뿐만 아니라 화가의 경우에는 그림 솜씨만 탁월하면 빈약하더라도 예술성이 높은 자화상을 그릴 수 있을 것이나, 수필가의 경우는 아무리 문장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빈약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훌륭한 글을 쓰기는 매우 어렵다. 수필이 주는 감명이 문장력에서 오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필자의 인간성에 대한 공감이기 때문이다.
남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풍부하고 매력적인 필자의 정신세계가 있고, 그것을 탁월한 문장력으로 그렸을 때 진실로 나무랄 데 없는 좋은 수필이 생긴다고 하겠다.
 
그러나 훌륭한 인격자가 남다른 문장력으로 자서전을 썼을 때 가장 좋은 수필이 탄생한다는 뜻은 아니다. 풍부하고 매력적인 정신세계란 반드시 성현 또는 군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위인이나 석학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풍부한 체험이 내면화하여 세상을 보는 눈이 밝거나 인심의 기미(機微)를 포착함이 날카로운 사람은 탁월한 표현력만 있으면 좋은 수필을 쓸 수가 있다.
 
아름다운 정감이 풍부하거나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사람도 수필에 적합한, 매력적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이다. 희로애락의 감정을 넘어서서 자신의 절박한 처지를 남의 일처럼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도 수필을 위한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이며, 각박한 일상(日常) 속에서 잠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풍류를 아는 사람도 수필의 소질이 있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의 체험을 안으로 깊이 들여다보고 그 체험 속에 담긴 의미를 음미할 정도로 조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대개 수필을 쓸 수가 있다. 자기가 보통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 겸허하고 자기의 부족함이나 실패담을 숨김없이 털어놓을 정도로 솔직한 사람도 수필을 쓰기에 적합한 사람이다.
 
수필을 쓰기 위해서 특별나게 사람이 잘날 필요는 없으며, 오직 세상과 자기 자신을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할 뿐이다.
 
 
표현의 솜씨
 
좋은 수필을 위해서 요구되는 '탁월한 표현력'이란 어떠한 것이냐에 대해서 전문가들 사이에 여러 가지 다른 의견이 있을 법한 일이며, 수필의 소재와 주제에 따라서 바람직한 표현의 양식도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수필에 있어서 문장력 내지 표현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소설이나 논문의 경우보다도 월등하게 크며, 또 수필의 문장론은 여러 가지 고려 사항을 포함한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서 나의 빈약한 개인적 견해를 소개하기에도 많은 지면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만한 여유가 없으므로, 간단하게 몇 가지만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전통적으로 수필에서는 딱딱한 문장보다는 부드러운 문장을 선호해 왔다. 경수필(硬隨筆)이라는 것도 있어서 때로는 억세고 딱딱한 표현이 어울릴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수필의 맛은 역시 포근하고 부드러운 문장을 통하여 잘 빚어진다.
 
부드러운 문장이라 함은 미사여구나 수식어를 많이 사용한 이른바 '미문(美文)'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쓸데없는 수식어를 남용한 문장은 좋은 문장이 아니다. 글을 쓰는 순간의 마음을 부드럽게 가지면 문장도 부드러워진다. 간결한 표현 가운데 많은 함축이 담겨 있는 글이 좋은 글이다.
 
언어는 본래 의사소통을 위해서 생긴 것이다. 말이든 글이든 의사 전달이 잘 되지 않는 것은 좋은 언어가 아니다. 난삽한 문장은 대체로 의사의 전달에 어려움이 있다. 겉멋을 부린 문장에도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따른다. 쉬운 말로 된 깨끗한 문장을 나는 좋게 본다.
 
그러나 글의 뜻을 소상히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이 지나쳐서 설명적인 말이 많은 글은 좋은 수필이 아니다. 독자의 독해력을 못 믿겠다는 듯이, 일일이 설명을 집어넣으면, 글의 밀도가 약해지면서 함축의 묘미가 달아난다. 필자 혼자서 모든 말을 하여 결론까지도 명백히 밝히는 것은 수필의 바람직한 수법이 아니며, 독자에게도 생각할 여지를 남겨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읽고 난 뒤에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글이 수필로서는 좋은 글이다.
 
논문을 쓸 경우에는 빈틈없이 따져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나, 수필에 있어서는 논리를 앞세우면 도리어 맛이 떨어질 경우가 많다. 수필에도 논리의 일관성은 있어야 하며, 앞과 뒤에 모순이 있거나 현실과 어긋나는 구절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논리의 연결을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글 전체의 구성과 문단(文段)의 길이, 그리고 대화의 삽입 등도 넓은 의미의 표현에 관한 문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는 하지만 수필에도 구성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수필에도 짜임새는 있는 편이 바람직하며, 짜임새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구성을 짤 필요가 있다. 그러나 꾸몄다는 인상이 짙을 정도로 빈틈없는 틀을 짜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수필은 어디까지나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문단의 길이는 어느 정도가 적당하냐 하는 물음에 대해서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상념(想念)의 연결의 원근을 따라서, 그리고 호흡(呼吸)의 흐름의 자연스러움을 따라서, 적절하게 잇고 끊으면 스스로 넘고 처짐이 없을 것이다.
 
과거에 주고받은 말을 정확하게 기억하기는 어려운 까닭에, 대화의 삽입에는 자연히 작위(作爲)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작가 마음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어도 좋은 소설의 경우와 달라서, 수필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작위를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적절한 곳에 적절한 대화를 삽입함으로써 글의 묘미를 더할 수도 있다.
 
 
미화(美化)의 상한선
 
마음의 세계가 풍부한 사람이 반드시 문장력이 탁월하다고 보기 어려우며, 문필의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반드시 마음의 세계가 깊고 넓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글과 사람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문필가의 글재주가 그의 사람됨의 크기를 재는 척도가 될 수는 물론 없으나, 글 가운데 필자의 사람됨이 크게 반영되는 것도 사실이다.
 
성품이 솔직한 사람은 대개 자기의 모습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글을 쓰는 경향이 있고, 공격적 성향이 강한 사람은 글에서도 남을 공격하는 버릇이 나타난다. 재주는 놀라우나 인덕(人德)이 약한 사람은 재치 있는 글을 쓰기는 쉬우나 품위가 있는 글을 쓰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성품이 부드러운 사람은 대개 문장도 부드럽고, 성격이 날카로운 사람은 대개 문장도 날카롭다.
 
그러나 수필 전문가 가운데엔 문장 또는 표현의 기교가 탁월하여 자신의 본바탕을 감출 수 있는 필력을 가진 사람도 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 욕심이 없는 자화상을 그릴 수도 있고, 번뇌가 많으면서도 해탈의 경지에 이른 듯한 글을 쓸 수도 있다. 늙은 필자가 젊은이 같은 글을 쓸 수도 있고, 젊은 필자가 늙은이 같은 글을 쓸 수도 있다. 명배우가 되면 여러 가지 다른 가면을 쓸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사정이다.
 
배우나 탤런트의 경우에는 자기의 본색(本色)에서 먼 배역을 잘 해낼수록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수필에 있어서는 사정이 아주 다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늙은 사람을 대상으로 삼고 젊게 보이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뛰어난 화가가 아니듯이, 보잘것없는 사람을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붓장난을 하는 작가는 훌륭한 수필가가 아니다. 특히 수필의 경우에는 자기 자신을 그리는 것인 까닭에, 미화(美化)의 속임수는 더욱 큰 감점의 이유가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보여주는 글이 좋은 수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여자가 화장을 하고 싶듯이 수필가도 자기의 몸에 색동저고리를 입히고 싶어 한다. 이 유혹을 뿌리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며, 전문적 수필가일수록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비법을 알고 있다. 전문가의 수필이 간혹 감탄과 역겨움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사유가 여기에 있으며, 정말 좋은 수필을 쓰기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평소의 자기보다 나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언제나 거짓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필자가 글을 쓰는 순간에는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게 마련이고, 따라서 글을 쓰는 동안의 정신 상태는 평소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이를 경우가 많다. 이 높은 경지에 이른 순간의 자신의 모습을 그리게 되면 평소의 자신보다 아름다운 자화상을 얻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높은 선과 낮은 선 사이를 왕래하며 부단히 방황한다. 한 사람의 마음의 상한선(上限線)은 그가 자신의 모습을 미화해서 그리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 상한선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필가는 자신이 늘 그 상한선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가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솔직함은 좋은 수필을 쓰기에 가장 긴요한 덕성이다.
 
높은 곳으로 향하는 마음이 간절하되 좀처럼 낮은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나 자신의 모습. 그것을 진솔하게 그리면 좋은 수필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