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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표지(標識)

[중앙일보] 입력 2014.06.05 00:38

예전에는 책을 펼치면 저자가 쓴 머리말 끝에 연월일을 적고 ‘著者 識’(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著者 識’을(를) ‘저자 식’으로 읽을 것인가, ‘저자 지’라고 읽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저자 식’이 아니라 ‘저자 지’라고 읽어야 한다. 요즘에는 ‘저자 씀’ 또는 저자의 이름을 적는 경우가 흔하다.

 ‘識’의 대표적인 뜻은 ‘알다, 판별하다’로 음훈(音訓)은 ‘알 식’이다. ‘지식(知識)’ ‘식별(識別)’ ‘식자우환(識字憂患)’ 등과 같이 쓰인다. 그런데 이 ‘識’에는 또 다른 음훈이 있으니 바로 ‘기록할 지’ ‘적을 지’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著者 識’는 저자가 기록했다[적었다]는 뜻이므로 ‘저자 지’라고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識’자를 ‘지’로 읽어야 하는데 ‘식’으로 읽어서 적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표식’이다. 혹시 ‘표식’을 ‘표식(表式·무엇을 나타내 보이는 일정한 방식)’으로 알고 있어서 그럴는지도 모르겠다. 이 ‘表式’과 달리 어떤 사물을 다른 것과 구별하게 하는 표시(標示)나 특징(特徵)을 일러 ‘표지’라고 하는데 이 ‘표지’의 한자가 ‘標識’다.

 “많은 사람은 선택의 자유가 현대의 삶이 이룩한 위대한 진보의 표식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할 것이다.” “크림 반도에 출몰한 군인들은 러시아 군인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자경단원이라고요. 군복에 표식도, 계급장도 없잖아요.” 이들 예문의 ‘표식’은 모두 ‘표지’라고 써야 맞다.
 
 “동생의 군복에는 선명한 부대 마크(mark)가 부착되어 있었다”에서 ‘마크’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표지’라는 점을 기억하면 되겠다. ‘마크’란 단체 등을 상징해 나타내기 위해 옷이나 모자 따위에 붙이는 표(標)를 말한다. 길을 안내해주는 ‘표지판(標識板)’(표식판 ×)을 생각하면 더 쉽다.

 ‘標識’을 ‘표식’으로 읽는다면 ‘標를 안다[식별한다]’는 뜻이 될 것이므로 위 예문의 문맥과 맞지 않는다. ‘표지’로 읽어야 ‘標를 (기록)해놓은 것’ ‘그림이나 표로 표시한 것’이란 의미와 부합하게 된다.

최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