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주님 만찬 성목요일)

 

내 발을 씻기신 예수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때는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이라고 합니다. 잘 알다시피 파스카 축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기 위해 지내는 민족 최대의 경축일입니다. 파스카라는 말은 지나가다, 건너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야훼 하느님께서 이집트에 내리신 죽음의 재앙을 어린양의 피로 지나가게 하고, 결국 갈대바다를 건너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광야의 자유인으로 건너가는 탈출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 축제의 본질입니다. 파스카라는 말처럼 히브리인 노예들은 죽음을 건너 생명으로, 바다를 건너 약속의 땅으로 즉,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넘어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을 기념하는 파스카 축제일에 죽임을 당하십니다. 바로 내일이 성금요일이지요. 이날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시어 우리의 속죄를 위한 희생제물로 바쳐집니다. 오늘 성 목요일 만찬 미사는 바로 그 전날 밤에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여기서 말하는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는 바로 성자의 죽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곧 주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를 통하여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실 것입니다. 오늘 세족례 또한 주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이미 주님께서는 만찬 중에 새로운 계약을 맺으시고 미사를 제정하셨습니다. 그 최후의 만찬은 다음날 있을 십자가 희생 제사를 미리 보여주는 예표로 이제 빵은 그리스도의 살로,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로 성화됩니다. 결국 당신 목숨을 바쳐 세상과 인간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자 하는 마지막 뜻을 식사의 형태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 복음은 특이하게도 다른 복음사가들과 달리 최후의 만찬을 통해 미사성제를 제정하신 것을 강조하기보다 만찬 중에 있었던 세족례를 더 부각시킵니다. 왜냐하면 결국 미사의 본질이 죄 사함을 통한 구원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발 씻김 예식을 섬김과 봉사의 의미로 알아 듣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의미는 발 씻김 예식은 세례처럼 죄를 씻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당신을 말리는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고 하신 것이지요. 여기서 그 몫이란 구원을 뜻합니다. 주님은 십자가 속죄양으로서 세상의 죄를 씻기 전에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그들의 죄를 모두 용서해 주셨습니다. 또 복음은 세족례 전의 예수님 마음을 이렇게 전합니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주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의 자질과 조건과 상관없이 영원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러한 주님의 마음을 아직 헤아리지 못합니다.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말씀대로 제자들은 스승께서 죽고 나서야 그분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한편 요한복음은 세족례를 통하여 우리가 매일 드리는 미사성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미사성제의 목적은 죄 사함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이웃을 용서하는 것이 미사성제의 본질인 것입니다.

 

이제 사제는 강론 후에 세족례를 할 것입니다. 2천 년 전 주님을 따라 그 예를 행하는 것입니다. 상징적으로 하는 전례 행위이지만 우리는 압니다. 서로가 서로의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또 그것이 주님의 마지막 유언임을. 우리는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 죄를 속죄하시려는 주님의 사랑임을 압니다. 또 오늘 우리는 이 미사 후에 성체조배를 할 것입니다. 성체는 미사 중에 사제의 손으로 축성된 빵 안에 계시는 주님의 현존입니다. 매일 미사 중에 성체는 우리에게 먹힙니다. 그리고 내 뱃속으로 들어간 성체는 산산이 부서지고 소화되어 내 몸과 하나 됩니다. 빵이 먹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 먹히는 빵이 생명을 가져다줍니다. 결국 성체는 영원히 매번 우리에게 먹히시는 생명의 주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했으니 우리는 주님의 모범에 따라 또 다른 이들에게 빵으로 먹혀야 합니다. 그것이 성체성사의 참된 의미일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성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듯이 성체를 모신 우리는 타인들에게 나 자신을 줌으로써 생명을 전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미사성제는 하나의 종교적 이벤트가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구현되는 희생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 내 가족, 내 교우, 내 이웃을 위한 희생적 삶이 바로 성체성사를 이루신 주님의 뜻입니다. 이제 사제는 본당과 구역 대표들의 발을 씻길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서로의 발을 씻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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