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시기 전례와 영성

-레오 교황의 사순시기 강론집을 중심으로

 

1. 레오 교황의 생애

magnus(, 위대한) 호칭

재임 기간(440~461)

서로마 제국은 야만인의 침입으로 붕괴 상태

정치적 불안 속에서 여러 이단 출현

전례 및 교회 규율 개혁 주도

이단에 맞서 그리스도의 육화, 하느님의 은총, 인간 자유 문제 등 전통 교리 확립

4차 칼체돈 공의회(451)에 결정적인 역할

전례주년에 따른 97편의 강론

 

우리는 레오 대 교황의 사순시기 강론들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사순시기의 의미와 영성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사순시기의 발전 역사

 

1) 교회의 유일한 축제인 파스카 축제와 그 연장

성경과 전례와 교회생활에서 중심적인 주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로 요약되는 파스카 신비는 그리스도교의 모든 신비를 수렴하는 중심이며, 구세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정점이자 그 목적이다.”

 

-초세기 신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을 지키기 시작함.

-2세기부터 부활 당일(니산달 14일 파스카 축제, 춘분 이후 첫 보름이 지난 첫 일요일)을 특별한 기념일로 정하고 기도와 단식하는 가운데 부활절을 지냄.

-부활 대축일은 한 해의 중심이 되는 날, 나머지 주일은 그 부활 대축일을 기념하는 날

-3세기부터 파스카 축제를 50일간 연장함(부활시기), 50일째 날 오순절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내기 시작함.

-초기에는 파스카 축제 준비 기간으로 성삼일 도입

-3세기 전까지 부활 대축일 전 단식 실시(하루나 이틀, 혹은 40시간)

-이후 성주간 제도 도입(성지주일부터 성 수요일까지 준비 기간, 성 목요일부터 부활 대축일까지 파스카 축제)

-이후 3주간 단식하면서 부활절 준비하는 관습이 생김.

-4세기 말부터 40일간의 단식으로 부활 대축일 준비하기 시작함.

-Quadragesima 사순시기라는 이름이 생김.

-서방교회는 주일만 단식일에서 제외시켰으므로 부활 대축일 전 6주간을 사순시기로 정함. 6×6=36, 4일이 모자람.

-7세기부터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4일 앞당겨 재의 수요일을 사순시기의 시작일로 삼음.

 

2) 사순시기와 세례성사 준비

 

사순시기는 예비자들이 세례를 받기 전에 집중적으로 준비하는 기간이었다. 예비 신자들은 이에 앞서 3년간 단순 예비자로 준비를 해야 했다. 세례식은 주로 부활 밤에 거행되었으므로 사순시기는 예비자들의 집중적인 세례 준비를 위한 시기가 되었다. 3년간의 예비자 교육이 끝나고 세례를 받게 되는 해의 사순 제1주일에, 예비자들은 세례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심사를 받은 다음 세례 대상자로 선발되었다. 사순 제1주일의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마귀로부터 받은 유혹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이것은 예비자로 등록하는 이들을 겨냥하는 것이었다. 이 세례 대상자의 선발 심사는 단순히 의무사항들을 잘 지켰느냐에 대한 심사가 아니라, 예비자 교육 기간 동안의 생활 전반에서 이웃 사랑의 차원에서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생활했느냐가 중요했다. 이때 선발된 예비자들은 이후 주교로부터 마지막 심사를 받게 되는데, 선하지 못한 사람이나 생활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세례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한편 세례 대상자로 선발된 사람들이 세례 전까지 이처럼 자주 구마식을 받는 것은 영혼을 깨끗이 하는 정화의 의미, 악마의 유혹을 막아내는 예방의 의미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신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전향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구마예식은 세례식 전보다 당일에 많이 함)

 

3. 레오 교황의 사순시기 강론들에 나타난 영성

 

1) 마음의 정화

죄로 인해 더렵혀진 하느님의 모상을 깨끗이해야 한다.

친애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 구원을 위해 매우 유익하게 제정된 이 복된 시기를 잘 이용하고, 우리 마음의 거울을 세심한 주의로 깨끗이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사멸할 현세생활을 아무리 순결하고 절도있게 살아간다 하더라도 세상살이에서 오는 먼지가 끼게 마련입니다. ...매우 조심하며 사는 영혼들에게도 이 시기가 필요하다면, 거의 일 년 내내 태평하게 그리고 게으르게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더 요긴하겠습니까?”(사순시기 강론 5,3)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양심성찰을 해야 한다.

영혼의 순결과 마음의 거울을 가리는 모든 것을 주의 깊게 벗겨내야 하며, 그 광체를 되찾기 위해서 더 깨끗해져야 합니다. 각자 자기 양심을 성찰하고, 엄한 심판대에서처럼 스스로 자기 자신을 심문해 보아야 합니다. 각자 자기 마음의 내면에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가 있는지, 자기 안에 어떤 육적 원욕(교만, 탐욕, 음욕, 질투, 과식, 분노, 게으름)이 영적 원의를 거슬러 싸움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비천한 것을 경멸하고 높은 지위를 탐하고 있지는 않은지, 부정한 이득을 얻고서 즐거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재산을 과도하게 늘리고서 기뻐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실 어떠한 현혹에도 전혀 동요되지 않고 어떠한 원욕에도 전혀 자극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온통 유혹들로 가득 차 있는 현세생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을까 두려워하지도 않는 사람은 반드시 빠지고야 맙니다. 죄를 쉽게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사순시기 강론 3,1)

 

하느님의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한다.

사실 축제의 날에 옷을 더 화려하게 차려입고 마음의 기쁨을 육체의 옷으로 표시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며 종교적인 태도로 여겨집니다. 그 때에 우리는 주의를 더 기울여 성당 자체를 할 수 있는 한 화려한 장식으로 꾸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살아 있는 진짜 성전인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지혜롭게 자신을 단장하고, 자기에게 구원을 주는 성사를 경축하기에 앞서 어떤 죄의 때가 자기를 가리고 있지는 않은지, 또는 이중적인 마음의 주름이 자기를 흉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사람의 내면이 악습들로 오염되어 더렵혀져 있다면, 아무리 외적으로 잘 꾸며 말끔한 모습을 보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사순시기 강론 3,1)

 

2) 구원의 원수인 마귀와의 싸움

인간을 죄로 유인하는 마귀의 정체

무죄함의 적대자이며 평화의 원수인 마귀가 광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 안에 있지 않은 그자는 교만 때문에 자신의 영광스러운 본성을 모두 잃어버렸는데, 자기가 잃어버린 그 좋은 곳에 하느님의 자비로 구원받은 인간이 인도되는 것을 보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죄를 처음 지어낸 그자가 바르고 성실하게 행하는 사람들을 보고 괴로워하고 있으며, 항구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을 타락시킬 수 없는 것을 보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에 놀라지 마십시오.”(사순시기 강론 10,2)

 

마귀가 사순시기에 더 광란하는 이유

이 적절한 시기에 사도께서 하신 설교 중에 한 구절이 우리 귀에 들려옵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2코린 6,2) 사실 악습들을 거슬러 싸움을 하고 모든 덕행을 향상시키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때가 있겠으며, 구원에 더 유익한 날들이 있겠습니까? , 그리스도교 신자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이 여러분 구원의 적대자에 대항해 항상 깨어 있어 유혹자의 계략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게다가 여러분의 원수가 시기심으로 더 맹렬히 덤벼들 때에는 경계를 강화하여 더 조심스럽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합니다....왜냐하면 땅 극변까지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재생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피조물이 새로 태어나는 때가 다가오자 악령은 자기가 차지하고 있던 이들로부터 내쫒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 빼앗겨 버린 원수는 패악한 분노로 으르렁대면서 새로운 노획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으니, 전에 누리던 권리를 모두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사순시기 강론 1,4)

 

마귀의 유혹에 대처하는 방법

첫째, 적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적의 작전을 먼저 알아야 한다. 마귀가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거기에 대비해야 하며, 마귀에 대항하는 무기는 사순시기에 알맞은 수계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둘째, 마귀는 세례를 받은 신자들에게 더 강한 질투심과 적개심을 가지고 있으며 게다가 사순시기에 더 교활한 함정을 우리에게 파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귀에 정면으로 대적하는 방법은 속죄의 생활을 통해 더렵혀진 우리 자신을 정화하는 것이다.

셋째, 적과 싸워 이기려면 적의 전술을 알고 이에 용감히 대적하는 용기와 지혜가 있어야 하지만, 또한 강력한 무기로 무장해야 한다. 에페 6,14-17 인용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마귀는 인간보다 유능한 본성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영적 무기와 장비로 무장하지 않으면 패하게 된다.

 

3) 단식

단식은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거룩한 사도들이 성령의 영감을 받아 이 시기에 더 엄한 단식을 하도록 제정한 것은 타당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사도께서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로마 8,17)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동참함으로써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 안에서 우리도 무엇인가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사람은 약속된 복락에 대해 확실하고도 안전한 기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사순시기 강론 9,1)

 

육신의 단식은 영적 단식을 동반해야 한다.

음식을 절제한다는 자체가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건강이 좋지 못해 먹을 수 없는 경우가 있고, 미용을 위해 단식하는 경우도 있으며, 무슨 투쟁이나 수행을 위해서 단식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단식의 이유와 목적에는 아무런 종교적 의미가 없는 것이다. 또 신자가 사순시기에 단식하더라도 교회법에 규정되어 있고, 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고 하니까 마지못해 하는 단식이라면 아무 영적 의미도 없게 된다.

 

단식의 경기장에서 음식만 절제하면 만족스런 결과를 얻으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육체에 음식을 줄이면 영혼은 강해집니다. 사람이 외적으로 약간 고통을 당하겠지만 내적으로는 영양을 섭취하게 됩니다. 육체에게는 육적 풍만이 줄어들지만 정신은 영적 즐거움으로 강인해질 것입니다. ...정결은 무절제를 멀리 쫓아내고 진리의 빛은 거짓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교만은 가라앉히고, 분노는 삭이고, 해로운 것들의 화살을 무디게 하며, 악담하는 혀에는 자갈을 물립시다. 복수하기를 그만두고 받은 모욕은 잊어버림으로써 삭입시다.”(사순시기 강론 1,5)

 

절제는 영혼과 육신의 선들을 자라게 하고 보존하는 데 필요한 힘을 주며 키워줍니다. 따라서 교회의 천상적 가르침들 중에 하나이며 하느님의 뜻에 따라 제정된 단식은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사실 육신의 식욕에 절제의 법규에 종속되어 있을 때 내적 충동들도 진정됩니다. 그래서 육신이 음식을 단식하듯 영혼도 악행을 단식하게 됩니다. (사순시기 강론 12,2)” (당시 단식은 식사량이나 식사의 횟수를 줄이는 것이었지 완전히 모든 끼니를 굶은 것이 아니었다.)

 

영적 단식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사도들로부터 전해오는 이 제도는 사순시기의 재계를 통해, 즉 음식의 절제뿐만 아니라 특별히 악습들을 제거함으로써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극기는 육적 욕망들의 불꽃을 끄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불의한 뜻을 늘 멀리하고 부정한 행위를 끊어버리는 일보다 더 추구해야 할 어떤 종류의 절제도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신심 행위에는 병자들도 제외되지 않으며 불구자들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사순시기 강론 6,2)

 

만일 우리가 단식하면서 우리 생활이 완전한 절제에서 오는 순결함과는 동떨어져 있다면, 불신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또 우리의 잘못은 우리 종교를 모독하는 불경건한 이들의 혀를 무장시켜 주는 꼴이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는 단식의 핵심은 음식의 절제에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일 마음이 불의에서 되돌아서지 않고 혀가 악담을 끊어버리지 않는다면, 육체에 음식을 줄이더라도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을 자유를 극기해야 하며, 다른 욕정들도 이런 방법으로 억제해야 합니다.”(사순시기 강론 4,2)

 

단식에는 자선과 선행이 동반되어야 한다.

단식에는 악행들을 깨끗이하는 영적 단식이 함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웃을 위한 실질적인 자선과 선행이 뒤따라야 한다. 단식하여 절제한 것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한다면 율법주의적 단식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합리적이고 거룩한 단식에 곁들여야 할 행위로는 자선보다 더 유익한 것이 없습니다. 자선 행위라는 하나의 이름에는 칭찬받을 만한 많은 선행이 내포되어 있으며,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은 서로 다르더라도 그 정신은 같을 수 있습니다.”(사순기기 강론 6,2)

 

4) 자선 행위

 

레오 교황은 물은 타오르는 불을 끄고 자선은 죄를 없앤다.”(집회 3,30) 말씀을 근거로 하여 세례의 물과 참회의 눈물이 죄를 씻어주지만 자선도 죄를 없애 줍니다.”라고 설파한다.

 

자선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본받는 것이다.(루카 6,36)

사람이 자기 창조주를 본받는 것보다 더 합당한 일은 없습니다. 따라서 자기 능력의 정도에 따라 하느님의 일을 이행해야 합니다. 굶주리는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이들을 입혀 주고, 병든 이들을 돌보아줄 때 하느님께서 그런 봉사자들의 손을 당신 도움으로 가득 채워주시지 않겠으며, 또 종의 선함은 주님의 선물이 아니겠습니까?”(사순시기 강론 5,4)

 

가난한 이들에게 베푼 자선은 주님께 한 것이다.(마태 25,40)

이보다 더 풍성한 결실을 맺는 행위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기쁜 인간의 행위가 어디 있겠습니까? 만일 한 사람이 자기와 동일한 인간 본성을 지니고 있는 다른 사람을 도와 주었다면 물론 칭찬받을 만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의 샘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한 상급에는 이르지 못합니다. 천상적 행위의 조건과 지상적 행위의 조건은 서로 다릅니다. 세속적인 친절은 도움을 준 사람 안에서 끝나버리지만, 그리스도적 사랑은 그 사랑의 영감을 주신 분에게까지 올라갑니다.”(사순시기 강론 7,3)

 

자선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루카 21,1-4 가난한 과부 헌금 이야기, 마태 10,42 냉수 한잔의 자선)

애긍을 하는 데는 부유하고 풍족한 이들뿐만 아니라 평범하고 가난한 이들도 각자 해야 할 자기 몫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재력에 있어서는 똑같지 않을지라도 그 마음의 애정은 같을 수 있습니다. ... 궁핍한 사람에게 동전 두 닢마저 줄 수 없을 만큼 극도로 가난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선한 뜻의 의무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주님의 명령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목말라하는 가난한 이에게 냉수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사람은 자기 행위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흔한 물을 남에게 준 것도 보상을 받게 된다고 하셨으니, 주님은 당신 나라를 얻기 위한 간편한 방법들을 당신 종들에게 얼마나 많이 마련해 주신 것입니까! 주님께서 자선의 한 형태로 냉수를 예로 드신 것은 혹시 누가 그 물을 데울 나무를 살 돈이 없어 자신은 자선에서는 오는 보상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일을 하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습니다. 한편 주님이 그 물 한잔을 당신 이름으로 주라고 권하신 것은 공연한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물 한 잔 자체는 별로 가치있는 것은 아니지만 믿음이 그것을 값지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이들이 주는 선물은 비록 막대한 돈을 들인 것이라 하더라도 모든 의로움의 견지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사순시기 강론 6,2)

 

자선을 할 때는 관대한 마음으로 하라.

사실 마음이 관대한 사람이라면 아무도 적게 바치지 않을 것이며, 자비나 동정심의 정도는 재물의 분량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잘 것 없는 물건이라도 풍성한 선의를 가지고 도와 주면 분명히 공로가 됩니다. 물론 부유한 이들이 더 많이 바치고 넉넉지 못한 이들은 적게 바치겠지만, 선행을 하는 이들의 사랑이 동일하다면 그 행위의 결실에는 차이가 없습니다.”(사순시기 강론 2,4)

 

주님은 신자들이 바치는 어떤 신심 행위보다도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어 준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이렇게 써버려 재산이 줄어든다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관대함 자체는 하나의 큰 부이며, 관대함의 기회는 없을 수 없으니, 거기에는 우리를 먹여주시면서 동시에 친히 대접을 받으시는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이니다. 이 모든 일에는 빵을 뗄수록 늘어나게 하시고, 나누어 줄수록 많게 하신 바로 그분의 손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평온한 마음으로(=아까워 하지 말고) 기꺼이 하십시오. 자신을 위해서 가장 작은 몫을 남겨둘 때 가장 큰 상급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사순시기 강론 10,5)

 

자선 행위를 하면서 지상의 재물이 줄어들까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그리스도인이라도 항상 부유하니,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이 가지고 있지 않는 것보다 더 많기 때문입니다. 또 그가 이 세상에서 궁핍하게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만물의 주님 안에 모든 것을 소유할 은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선행을 하는 이들은 선행을 할 재물이 없을까봐 절대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서에 나오는 저 과부는 동전 두 닢으로 그의 신앙심이 칭송받았으며, 흔쾌한 적선은 냉수 한 잔으로도 그 상급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사순시기 강론 4,2)

 

5) 용서

용서는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맺은 계약이다.

파스카 신비 전체는 죄인들의 죄사함을 위해 제정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을 본받아 우리도 실천합시다. 의로우시고 자비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용서를 약속하시면서 그분께서 용서해 주시는 이들도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해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께 어떤 기준에 따라 기도하기를 바라시는지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서도 여러분의 잘못을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아버지께서도 여러분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사순시기 강론 12,3)

 

파스카 신비는 모든 신비 중에 가장 뛰어난 신비이며. 이들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피로 우리 죄를 없애주신 그 신비를 경축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자비심의 제물들을 준비해야 합니다.”(사순시기 강론 10,4)

 

이상의 레오 교황이 신자들에게 권고하고 설파하는 내용은 모두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다. 따라서 전례에서 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수계생활을 충실히 하는 신자는 하느님과 대화하는 사람이다. 성당에서 기도할 때는 신앙인이고 밖에 나가서는 달리 생활하는 사람은 참다운 신자가 아니다. 그래서 레오 교황은 신자들에게 전례의 생활화, 신앙의 생활화를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사순시기에 하는 회개, 단식, 자선, 용서 등의 수계생활은 사실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순시기를 회색빛 도는 무겁고 우울한 때로 여기고 빨리 지나가서 기쁜 부활 대축일이 왔으면 하고 바라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우리는 주님의 수난은 생각하고 싶지 않고 주님의 부활만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주님의 수난 없이는 부활도 있을 수 없으며, 수난과 부활은 하나의 파스카 신비에 결합되어 있다. 레오 교황이 누차 강조하듯이,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은 주님의 부활에 동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순시기의 수계생활을 부활의 기쁨 안으로 승화시켜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의 강론들은 지금으로부터 1,600여 년 전의 강론이지만 시대를 초월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생생한 감동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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