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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일 (2020.4.26)

장유성당 주임신부 손태성 다미아노

 

하루살이 같은 비천한 삶을 어망에 의지하고 있을 때, 낯선 이가 나를 불렀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마태4.19)

무식쟁이에 가진 것 없는 나를 불러 주는 이가 있다는 것이 그저 기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바닥에서 근근이 먹고 사는 일이 전부였던 내게 생전 처음으로 그 날, 목표란 것이 생겼습니다.

남루하지만 기품이 있고 말씀과 행동에 힘이 있는 분, 예수를 따르는 것이 내 삶을 바꾸어 놓을 것 같았습니다. 스승을 위협하는 적들이 많았지만 수많은 이적과 표징을 일으키며 메시아로 불리는 스승은 곧 이 나라를 다스리실 것이고 나도 그의 곁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여 살리라 꿈을 꾸었지요.

 

그러나 이제 그 꿈은 수포로 돌아갔고 남은 것은 절망뿐입니다.

그물을 버리고 그를 따랐던 그 날이 후회스럽습니다.

스승은 아무 저항 없이 잡혀 갔고, 죄수들과 함께 십자가형에 처해 지셨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꾸짖던 그 위엄과 수많은 이적과 표징을 일으키던 그 능력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목자를 잃은 양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리는 문을 꼭 잠그고 숨어 버렸습니다. 주간 첫날 새벽 스승의 무덤을 찾아 갔던 여인들은 빈 무덤과 예수의 부활 소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하지만 죽은 후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셨던 스승이 진짜 살아나셨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제자들 중 몇몇은 이미 생업이던 옛터로 돌아가려고 이른 아침 길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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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기억해 보면, 예수와 우리의 만남은 예수와 제자들의 만남과 닮아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내 삶 속으로 어느 날, 예수가 찾아오시고(내가 먼저 예수를 찾았다고 착각하기도 하지만) 그를 따르면 삶이 왠지 나아지리란 기대를 했지요.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기쁜 날들도 맛보고, 가난하고 슬픈 우리의 삶도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했지요. 부활을 믿는 우리의 신앙은 육신의 죽음 이후에 우리를 부활시키실 것이기에 이승의 삶을 그것으로 위안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고통과 절망이 내 삶을 덮칠 때, 하느님께서 구원하시지 않는다고 느낄 때, 하느님은 죽어 버리고, 나는 어둠 속으로 숨어버리지요. 그러다가 또 어느 날, 내가 원하는 대로 될 때, 하느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느낄 때, 하느님은 다시 살아나시고 감사와 찬미를 받으시지요.

이것이 우리가 믿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우상 숭배와 같은 이러한 신앙 안에서

예수가 부활하셨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우리의 신앙고백은 거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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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함께 걸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는 모세와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시고 함께 묵으시며 식탁에 앉아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십니다. 그 때, 그들의 눈이 열리고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예수의 제자로서, 그들이 따르던 것은 예수가 아닌 그들의 욕망이었으며, 스승을 안다고 생각했었지만 아무 것도 알지 못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빵을 떼어 주시는 예수는 그들에게 당신의 전부를 내어주고 계심을 보았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히 끝나지 않을 새 생명의 시작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생명이 그들에게서 시작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눈은 그들처럼 열리어 부활하신 예수를 알아보고 있습니까?

2000년 전 죽은 예수를 지금 여기에 살아계시도록 하는 일이 우리 신앙의 핵심이며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부활신앙입니다.

부활은 죽어서야 체험하는 것이 아니며 죽은 이들의 보증이 아닙니다.

부활은 살아있는 자들의 것이며 살아서 부활을 체험한 이들에게 보증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지금 여기에 살아나시게 하기 위하여 나는 무아(無我)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갈라2.19-21)

내 안에 가득 들어 찬 나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남김없이 비워내어 無我가 될 때 비로소 예수께서 내 안에서 살아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고난이 영혼까지 탈탈 털어버리고 모든 것을 앗아갈 때에 無我가 된 나를 예수는 더 힘차게 살아가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신앙의 여정은 어떤 경우이든 예수를 살리는 일이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살리는 것이 나를 살리는 것이고, 내가 사는 것이 예수를 살리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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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교구를 비롯한 여러 교구들이 미사를 재개하였습니다.

부산 교구도 곧 미사가 재개될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우리의 일상이 멈추어 버린 곳에서 고요히 머물며 그동안의 우리가 살아온 신앙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순식간에 나약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에 인간이 작은 자로서 모든 피조물을 돌보며 그들과 공존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기를 바랍니다.

이기심과 욕망이 판치는 세상에서 연대와 사랑, 희생과 나눔이 우리의 본성임을 발견한 희망의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살아계신 예수께서 이 모든 시간 안에서 우리를 부활시키고 계심을 가만히 들여다 보십시오.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마르코 1.15)

하느님의 나라는 손에 잡히는 생생히 살아있는 나라, 내 안에서 생생히 살아계시는 예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 나라에서 부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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