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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일 (2020.3.22)

장유성당 주임신부 손태성 다미아노

사순 제4주일(장미주일), 우리는 사순시기의 한 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슬퍼하던 이들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위로의 젖을 먹고 기뻐 뛰리라.” (이사66.11)

부활의 희망으로 기뻐하라는 오늘의 입당송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평범한 날들 중에 지내온 사순시기가 올해는 결코 평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 감염, 경제적 위기, 심리적 문제 등 수많은 고통들이 온 인류를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로 내몰고 있습니다.

온통 보이는 것은 불안과 공포와 갈등인 전대미문의 상황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것임을 우리 모두 깊이 체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겪는 일시적이고 가벼운 환난이 그지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마련해 줍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2코린토 4.18)

장유성당 교우 여러분, 영원한 것을 희망하는 우리이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시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이며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바라 볼 수 있습니까?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그 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길에 앉아 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탄생하는 순간부터 중년의 나이가 되도록 온통 어둠이 그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자신의 얼굴은 물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눈으로 본 적이 없습니다. 길거리에 앉아 그저 손을 내밀어 구걸하는 일이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사람들은 그가 죄를 지어서 눈먼 이로 태어났다고 비난하며 동정도 하지 않습니다. 눈먼 이에게 말을 거는 이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그를 보십니다. 누구의 죄 때문에 눈먼 이로 태어났는지 묻는 제자들에게 그 누구의 죄도 아니며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 된 것이라 하십니다.

예수께서 진흙을 개어 그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하시자 그는 곧바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옵니다.

이 대목에서 눈먼 이는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와 손을 대어도 거부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자신의 가장 부끄러운 곳을 내맡기고 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왜 연못으로 가서 씻으라 하는 지 아무것도 묻지 않습니다. 그는 들은 대로 행동할 뿐이었습니다.

우리의 감각은 너무나 복잡하고 과도한 인식작용을 일으킵니다.

감각이 작용하는 즉시 우리에게는 오만가지 생각과 상상과 감정들이 일어납니다. 그것에 익숙해진 우리는 감각을 통해 받아들이는 것들이 이미 진실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복음 속의 눈먼 이는 보지 못하기에 판단하지 않습니다. 보지 못하기에 감정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눈먼 이는 침묵이 익숙하기에 상대방의 말에 즉각 반응하여 말하지 않습니다.

눈먼 이가 평생 해 온 것은 오직 듣는 것, 온 세상이 그의 귀를 통해 그의 마음으로 흘러듭니다. 눈먼 이의 귀는 들은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가 듣고 행동한 그 사이에는 어떤 판단도 감정도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지난 주 복음의 사마리아 여인과 오늘 복음의 눈먼 사람의 공통점은 예수에 무지했지만 온 마음으로 그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즉시 행동하였으며 그로써 예수를 메시아로 알아 뵙고 새 생명, 곧 부활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안다고 큰 소리 치던 이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듣지 못한 것을 들었습니다.

복음 속 바리사이들은 눈을 뜨게 된 사람과 그의 부모를 불러 어떻게 다시 보게 되었는지 몇 번이나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들은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그들은 진실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듣고 싶은 것을 듣고 싶을 뿐입니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내가 믿고 싶은 것을 진실로 만들어 버리는 우리의 모습은 바리사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여지껏 살아오면서 만들어 온 모든 상()을 버리고 무지의 지식 속으로 가라앉는 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는 곳에서 말씀은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모든 것을 보고 싶어 하고 우리의 귀가 모든 것을 듣고 싶어 하고 우리의 마음이 모든 것을 곰곰이 생각하고 싶어 한다면

우리의 영혼은 산산이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어떤 상()도 아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기 위하여 우리는 수없이 우리 앞에 쏟아지는 상들에 눈이 멀어야 합니다.

침묵으로 나의 영혼에 말을 거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우리는 침묵을 연습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언젠가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나와 너의 구원, 나아가 세상의 구원이 될 것입니다.

모든 감각을 여의고자 가만히 앉아있고 또 앉아 있으십시오.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이인 양, 벙어리인 양 살아가십시오.

모든 감각의 구분이 사라진 날, 우리는 하느님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자꾸 묻지 마십시오.

그냥 살아가면 됩니다. 하느님의 때에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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