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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일 (2020.3.15)

장유성당 주임신부 손태성 다미아노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 벌떡 일어나 냉수 한 그릇 벌컥 벌컥 들이켜 보신 적이 있습니까?

마셔도 마셔도 분한 마음은 가라앉지 않고 답답한 마음은 뚫리지 않고

슬픈 마음은 달래지지 않던 기억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물 한잔 마시고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기도 하고 이 악물고 참아보기도 하고 아픈 생각들을 지우려 애쓰던 모습들을.

내일도 모레도 끝나지 않을 굴레에 갇혀 살 것이 두려웠던 날들을.

오늘 복음 속의 <사마리아의 여인>의 삶을 공감하기 위해 누구나 경험했을 우리 삶의 기억을 떠올려 보고 싶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혼혈족으로 유다인으로부터 부정하다며 천대받는 민족이었고

그 당시 여인은 남성에게 종속 당하며 혼인과 이혼에 대한 아무 권리도 없었으며 유대인들은 남성이 여성과 대화하는 것조차 금기시했습니다.

사마리아의 여인은 태생부터 천대받았으며 다섯 번이나 남편들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이웃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으며 멸시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매일 낮 12, 그녀는 뙤약볕 아래 마른 모래 위를 걷고 걸어 우물로 갑니다.

홀로 침묵 속에 걷는 먼 길, 마치 순례자처럼 그녀는 자신을 비우고 있습니다.

우물에 다다를 때 그녀의 마음은 한결 가볍습니다.

두레박으로 퍼 올린 한바가지 시원한 물과 우물가 시원한 나무 그늘은 더위에 지친 그녀를 행복하게 합니다. 그녀는 우물가에 앉아 산 위의 조상들이 예배드리던 곳을 오래도록 바라봅니다. 그녀의 얼굴은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우물가에서 물 한바가지 들이키고 앉아 회한과 눈물로 보낸 수많은 나날들을 지나 이제 그녀는 살고 싶고 행복하고 싶고 삶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슬픔과 아픔에 초연해 지는 것, 자신을 비워내는 것을 연습하고 또 연습합니다. 우물가는 단순히 물을 긷는 장소가 아닌 그녀를 정화시키는 거룩한 장소가 됩니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어둔 밤들을 거쳐 정화의 길로 나아갔으며, 이제 하느님의 빛이 그녀를 비추고 있습니다.

예수를 만난 후에 그녀의 삶은 근본적으로 변화되었지만, 그녀가 세상에 나기 이전부터 하느님께서는 그녀를 사랑하고 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요한2,24)

하느님의 손 위에서 오늘 예수와 사마리아의 여인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영원의 시간을 걸어 예수님께서는 우물로 그녀를 만나러 오십니다.

여인은 예수를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즉시 예수의 말씀에 마음을 엽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자주 예수의 이적과 표징을 목격하고도 예수를 믿지 못하고 죽이고자 하였던 복음 속 유다인들, 제자들, 바리사이들과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요한복음의 여러 곳에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다. 너희가 나를 알지 못한다.”

너희가 눈 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모르면서 -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우리는 차라리 눈 먼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너무나 많은 진리의 말씀을 담고 있기에 할 이야기가 많지만 저는 예수의 말씀에 즉시 변화한 사마리아의 여인에게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하느님을 잘 믿는 자가 되기 위하여,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하고 있습니다.

미사참례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배우고 강론을 듣고 영성서적을 읽고 기도모임을 하고 피정을 하고 성지순례를 하고...

애쓰며 살아보지만 기쁨과 만족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때로 신앙이 우리의 멍에가 되고, 말씀과 삶의 괴리는 우리를 죄인으로 만들고 하느님은 여전히 멀리 계시는 듯합니다.

내가 주체가 된 그저 열심한 신앙은 미성숙합니다. 힘이 듭니다. 변덕스럽습니다. 항상 부족함을 느낄 뿐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고 자유롭고 한결같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강론 때 자주 강조하는 비움의 신앙만이 여러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분을 위하여 비우십시오. ()가 되십시오.

하느님께 이르고자 하는 영혼은 정화의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성령은 완전하시기에, 성령께 나의 자리를 내어드리는 만큼 나는 완전함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알아야 할 것은 알게 하시고, 무시되어야 할 것은 무시하게 하시고 기억되어야 할 것은 기억하게 하시고, 잊어야 할 것은 잊게 하시고 사랑해야 할 것은 사랑하게 하시는 성령께 모든 것을 맡겨드립시다.

우리의 기쁨도 슬픔도 희망도 절망도 성공도 실패도 즐거움도 고통도 모두 성령께 맡겨 드립시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만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니 어떤 것에도 개의치 말고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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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말씀하시길,

누가 멍에를 졌는지 너는 모르느냐?

사랑이시여, 그럼 제가 시중을 들겠나이다.

사랑이 말씀하시길.

너는 앉아 내 살을 먹어야 한다.

하여, 나는 앉아서 먹었네. -조지 허버트 <사랑> -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은 당신의 살을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부족한 것이 없으시기에

내가 드리는 찬양은 당신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것은 그저 당신의 전부를 내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나의 예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