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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2 16:36

복음 요한 1,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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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요한 1,35-42
그때에 35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36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38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3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41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42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몇 년째 신학교에서 ‘설교학’이라는 과목을 맡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설교학’은 말 그대로 강론하는 법을 배우는 학문이지요. 스스로 강론을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강사로 활동을 하고 있어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계속해서 강의를 해왔습니다. 이 설교학을 강의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신자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때였습니다.
“우리 본당 보좌 신부님은 젊은데도 너무 강론을 잘하세요.”
물론 이 보좌신부는 신학생 때 제게 수업을 들었던 신부입니다. 저에 대한 칭찬이 아닌데도 기분이 좋은 것은, 본인의 노력으로 신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겠지만 가르쳤던 저 역시 한 몫은 하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의 잘사는 모습에 너무나 기분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을 기억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에, 세상의 빛과 소금 같은 존재로 당신을 따라오고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 뜻과는 정반대로 살고 있다면 어떠하실까요? 주님의 사랑보다는 세상의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욕심과 이기심만 내세우고 있다면 아마 크게 슬퍼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무엇을 찾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들이 무엇을 찾기 위해 예수님을 따라갔을까요? 예수님에게서 학식을 배우려고? 놀라운 기적을 행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출세 좀 하려고? 그 모든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무엇을 찾는지 제자들은 이렇게 말하지요.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동문서답 같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것을 주님에게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스승이 되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더 중요한 것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늘 예수님 곁에 있겠다는 염원의 표현으로 묵는 장소를 물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같이 하겠다는 의지 표명이었습니다. 이런 강한 의지를 보신 예수님께서는 “와서 보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직접 와서 직접 보고 믿으면서 함께 하자는 것이지요.
우리는 주님에게서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주님 자체를 찾고 있다면 기쁘게 여러분을 초대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에만 매여 있다면 주님께서는 크게 슬퍼하실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나쁜 습관은 고치는 것보다 예방하기가 더 쉽다(벤자민 프랭클린).
지금 잘 하세요.
가정에서 폭군의 모습을 보이는 중년의 형제님이 계셨습니다. 가족들을 향해 폭언을 자주 쏟으셨고, 심지어 물건을 집어 던지면서 자신의 화풀이를 하곤 했습니다. 이런 모습이 가장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는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내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이런 자신의 모습에 대해 친구들의 모임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해야 가장의 권위가 산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그러자 한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나이가 벌써 50을 훨씬 넘었어. 그런데 이런 말 들어본 적 없어? ‘50세 넘은 남자는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더는 존재 가치가 없다.’라고 말이야. 여기에 점점 경제적 영향력도 줄어들기 시작하는 나이야. 자네 가족이 착해서 그렇지, 자네의 그런 행동으로 나중에 크게 후회할 것이네. 앞으로 잘해.”
가족 안에서만이 아닙니다. 주변에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스스로 강하다는 표현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럴수록 점점 외로움 속에서 힘들어하게 됩니다.
나만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자신의 물질적 풍족이 영원할 것도 아니고, 자신의 신체적 능력도 영원할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인간이라면 예외 없이 언젠가는 도움을 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그때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잘하십시오.
빠다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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