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훈화
연중 제11주간 - 연중 제14주간

염철호 사도요한 신부

염철호 사도요한 신부는 부산교구 사제로 로마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바오로 서간 – 신약성경의 이해’(바오로딸 2017)가 있고, 역서로는 ‘최고의 성지 안내자 신약성경’(바오로딸 2012) 등 다수가 있다.


연중 제11주간(6월 18-24일)
로마서 읽기1 (로마 1-4장)

유다인들은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는 이방인들”, 곧 율법을 어기는 이방인들에게 하느님의 진노가 떨어지리라고 기대했습니다. 이방인들이 양심의 법안에서 하느님의 법규를 충분히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법규를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오로도 이 점을 지적합니다(로마 1,18-32). 하지만 바오로는 이방인들을 비난하는 유다인들 역시 하느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들이 율법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율법을 어기기 때문입니다(2,1-29). 결국, 율법을 기준으로 하자면 유다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가 하느님 앞에서 죄인으로 드러날 뿐입니다(3,19-20).
이 지점에서 바오로는 인간이 의로워지는 것은 인간이 율법을 준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약속을 지키는 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로마 3,21-4,25).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약속하시면서 어떤 조건도 걸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율법 준수와 상관없이 당신 약속에 따라 우리를 축복하시고 의롭게 해주실 것입니다. 바오로는 이를 두고 “하느님의 의로움”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음”으로써 의로움을 인정받게 됩니다. 아브라함도 율법과 할례가 주어지기 전에 믿음으로 주님께 의로움을 인정받은 바 있습니다(창세 15,17).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로움을 인정받은 이들입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하느님 약속에 대해 감정적으로 동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식 사고방식에서 믿음이란 확고하고 충실한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확실하다고 믿고 예수님이 알려주시는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을 지닌 이들만이 의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 로마 1-4장의 내용입니다.


연중 제12주간(6월 25일-7월 1일)
로마서 읽기2 (로마 5-8장)

로마서 5,12에서 바오로는 아담으로 인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그 결과로 모두 죽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죄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단절시키는데 그 단절은 영원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바오로는 세상의 모든 고통과 죽음이 아담이 저지른 원죄의 결과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한 명의 죄로 인해 우리 모두 죽게 된 것일까요? 바로 죄가 지닌 연대성 때문입니다.
죄는 죄를 낳고 고통은 고통을 낳게 마련입니다. 내가 받은 고통을 타인에게 전가하기 마련이고, 고통으로 복수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죄와 고통의 연쇄 고리가 이미 첫 사람에게서 시작되었지만 사실 첫 사람만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첫 사람처럼 같은 방식으로 죄를 짓기 때문에 우리 모두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죄의 고리를 끊이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모든 이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과 인류를 화해시켜 주셨습니다(5,6-11).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성자 하느님께서 모든 이의 죄를 뒤집어쓰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모든 죄의 고리가 끊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십자가 사건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아담으로부터 종말 때까지 이어지는 죄의 연쇄 고리가 끊어졌다는 것, 그것은 아담에게서 시작된 죄와 죽음이 사라지고 하느님과 화해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5,12-21).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희생 덕분에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육신의 한계 속에 살아가고 있기에 죄의 속성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7,7-25). 이런 비참한 우리이지만 다행스러운 사실은 하느님께서 우리가 죄인일 때도 우리를 찾아 구원해 주셨다는 점입니다. 그런 하느님께서 이미 당신의 자녀가 된 우리를 버리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결코 단죄받고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8,1-39).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닌 믿음과 희망입니다.


연중 제13주간(7월 2-8일)
로마서 읽기3 (로마 9-11장)

바오로는 로마 9-11장에서 유다인들의 운명을 언급합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께 선택받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완고해져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의로움을 얻지 못했습니다(9,1-33).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유다인들 중 일부가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지 모든 유다인이 그리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도 유다인이었고,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바오로 자신도 유다인이었기 때문입니다(11,1). 유다인들이 없었다면 그 누구도 예수님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다인들의 운명에 대해 비아냥거려서는 안 됩니다. 이에 대해 바오로는 올리브 가지 비유를 들려줍니다.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은 올리브 나뭇가지에서 몇몇 가지가 잘려 나간 뒤 새롭게 접붙여진 야생 올리브 가지들일 뿐입니다(11,11-24). 하느님은 본래 있던 가지들마저도 잘라 내시는 분이시니, 야생 올리브 가지도 잘려 나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이 당신 약속을 취소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 곧 하느님이 의로운 분이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하느님께서 유다인들을 당신 구원 밖에 마냥 내버려 두지는 않으실 것입니다(9,6). 하느님 당신이 직접 유다인들을 선택하셨기에 그 선택을 취소하지는 않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 않았더라면, 다른 민족에게 구원이란 없었을 것입니다. 이를 두고 바오로는 “그들의 잘못으로 다른 민족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고까지 말합니다(11,11).
결국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것도 사실은 처음부터 하느님 계획 속에 담겨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은 다른 민족들의 수가 다 찰 때 유다인들을 다시금 구원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11,25-32). 이것이 바오로가 알려주는 하느님의 신비입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하여 모든 피조물을 당신 구원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연중 제14주간(7월 9-15일)
로마서 읽기4 (로마 12-16장)

로마서를 읽다 보면 바오로가 “믿음”만을 강조하고 실천에는 관심이 없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는 거룩한 삶, 곧 실천에도 큰 관심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로마 12장부터의 이야기는 철저히 실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바오로는 로마서 시작에 우리 모두 하느님의 의로움 덕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게 되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1-4장). 이런 우리이기에 비록 죄스러운 몸을 지니고 있지만 결국 하느님의 구원을 얻게 되리라는 희망에 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5-8장). 그렇다고 우리가 함부로 살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믿음에 합당한 방식으로 살아감으로써 자신을 하느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거룩한 산 제물이란 흠이 없는 제물, 깨끗한 제물입니다. 함부로 살며 마음대로 사는 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거룩하게 살아가는 제물입니다(12,1-2).
로마서의 교훈 부분(12-15장)은 어떤 삶이 거룩한 제물이 되는 삶인지를 알려줍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교회는 다양한 지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기쁘게 받아들여 실천하며 서로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교회든 사회든 하느님이 부여한 권위에 순종하며 깨어 종말을 기다려야 하고, 형제를 심판하지 않고 형제의 삶에 걸림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 안에서 공동체의 일치를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바오로는 이렇게 실천에 관해 이야기하며 로마서를 마무리합니다.
지금까지 4주간에 걸쳐 로마서에 관해 다루었습니다. 바오로 생각들을 잘 담고 있는 로마서 전체를 천천히 통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은총과 그분에 대한 충실함, 곧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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