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간(10월 6-12일)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10월 7일)

서한석 사도요한 신부 (가톨릭대학교수)

예수님의 탄생 예고 후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문안 인사를 할 때 엘리사벳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어놀 정도였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엘리사벳의 말을 듣고 마리아는 기뻐서 노래합니다. 마니피캇. 이 찬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로써 하느님 앞에 선 인간 영혼의 기쁨을 노래합니다. 성모님의 겸손과 아름다운 말씨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특히 한 어머니로서 성모님의 말씀은 우리의 구체적인 신앙생활에 큰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말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8)하신 성모님의 말씀도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태초의 세상은 말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창세 1,3)하고 말씀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말대로 이루어진 기록입니다. 요한복음서 서언도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라고 증언 합니다(요한 1,1). 말의 ‘힘과 중요성’ 그리고 ‘말의 위력과 능력’ 등 말에 관한 잠언의 기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예를 들어서, 말하는 대로 된다는 ‘말의 힘’에 관한 구절은 “혀에 죽음과 삶이 달려 있으니 혀를 사랑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는다”(18,21)가 있고, ‘어떻게 말을 신중히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구절은 “지각없는 자는 이웃을 비웃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침묵을 지킨다”(11,12)가 있습니다. 그리고 ‘말 하기 전에 먼저 경청하라’는 구절은 “다 듣기도 전에 대답하는 것은 미련함이고 수치이다”(18,13) 등이 있습니다.

일찍부터 성모님은 이와 같은 말의 비밀을 터득한 사람이 아니었나 합니다. 예수님을 성전에서 잃어버리셨을 때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려니 하고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습니다”(루카 2,51). 예수님을 키우시면서 성모님은 항상 긍정적인 말, 건설적인 말, 사랑이 넘치는 말만 하면서 사셨을 것입니다. 성모님은 늘 하느님의 뜻에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맞추고자 하셨고, 말 대신 침묵으로 기도하는 분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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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간(10월 13-19일)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어렵다

서한석 사도요한 신부 (가톨릭대학교수)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가난한 이들을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특별히 산상 설교(마태 5장 참조)와 평지에서의 설교(루카 6,17 이하 참조)에서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을 강조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 여쭤볼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부자인 사람들은 모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까?” 실제로 예수님은 불행 선언에서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루카 6,24) 하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것만 생각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가난 그 자체로부터 구원이 온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우리 인생사에서 어떤 재물이든 재화든, 어떤 사람이든, 뭐든지 매이는 게 문제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파트를 여러 채 가진 갑부가 내놓은 집이 팔리지 않아 자금 마련에 차질이 생겨 돈에 집착하는 것이나, 어느 노숙자가 하루 종일 주워 온 폐지를 다른 사람이 가져갈까 밤잠을 설치며 집착하는 것이나 매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방한하셨을 때, 우연히 1994년 이래로 교황님과 알고 지내던 아르헨티나 산마르틴 교구의 문한림 주교님을 인터뷰한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주교님은 교황님의 ‘가난의 영성’에 대해서 설명하셨습니다. “제가 알기로 교황님은 부자도 많이 아신다. 그리고 부자를 배척하지 않는다. 다만 가난한 사람들은 ‘제외된 사람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특별히 선택해서 그들을 위하고 더욱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의 아들이 가난하게 태어나 자라고 살기를 원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 부활 후에도 예수님은 결코 화려한 곳이 아닌 간소하고 소박한 곳에서 자신의 부활을 증거해 줄 증인들에게만 나타나셨다. 그리고 지금도 성체 안에서 살아 계신다고 우리는 믿는다. 이게 ‘하느님 스타일’이다. 그걸 따르는 게 교황님이다. 교황님은 결코 부자들에게 ‘압력’을 넣은 적이 없다. 다만 물질에 묶이지 않는 것은 강조하셨다. 돈이 많아도 묶이지 않으면 ‘가난한 영성’이지만, 적게 가져도 묶이면 ‘가난한 영성’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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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간(10월 20-26일)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전교주일)

서한석 사도요한 신부 (가톨릭대학교수)

마태 28,16-20과 마르 16,15-18은 예수님이 갈릴래아에서 세상 끝 날까지 지속될 사명을 제자들에게 부여하시는 내용입니다. 십자가 사건의 충격에서 회복된 제자들이 갈릴래아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경배합니다.

그러나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은 의심하였습니다. 희랍어 원전 신약 성경은 “의심하였다”라는 의미로 “에디스타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마태 14,30-31에서 베드로가 물 위를 걷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할 때 그의 흔들리는 믿음을 묘사할 때도 쓰였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오해하기도 했고, 그분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귀신을 쫓아내지도 못하였으며, 세속적으로 누가 큰지 몰두하기도 했고, 예수님과 함께 깨어있지 못하고 그분을 버리고 부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이러한 사도들의 터전 위에 자신의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약속하시며,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에게 나아가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임마누엘 예수님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제자들과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십니다(임마누엘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파견 명령 그 자체는 그리스도교를 근거 지웁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있겠다.”(마태 28,20)

예수님이 파견 명령을 주는 목적은 자신의 가르침을 지키는 제자들을 위한 것이지 성당 주위를 어슬렁거릴 뿐 그분의 가르침을 행하지 않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민족으로부터 온 사람들이 제자가 되면서 순종하는 어떤 새로운 인류를 형성시키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따라서 선교 명령에 대한 순종은 하느님이 에덴동산에서 인류의 처음 부모에게 주셨던 최초의 창조 명령을 성취하는 것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실제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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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0주간(10월 27-11월 2일)

제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

서한석 사도요한 신부 (가톨릭대학교수)

마르 10,47에서 티매오의 아들인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는 이렇게 외칩니다.

“다윗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영원히 눈이 보이지 않게 살아야 하는 그의 운명은 분명 십자가였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바로 그 사람, 바르티매오 곁을 지나가십니다. 바르티매오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그분의 능력에 희망을 가집니다.

혹시 그분이라면 눈을 뜨게 해주실지도 몰라, 그는 희망을 믿음으로 바꾸며 애절하게 매달렸습니다.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신약 성경의 희랍어 “엘레에손 메”라는 표현은 칠십인역 성경의 시편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예를 들어 시편 9,14; 24,16; 25,11; 26,7; 30,11; 56,2 등). 그 내용은 자신의 영혼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달라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리곤 마침내 그분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 10,52)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지난 세월 자신을 가두었던 어둠이 이 한 말씀으로 걷히다니, 눈을 뜬 그는 평생 이 말씀을 심장에 새기며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바르티매오의 놀람과 느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복 받는 행위라고 너무 쉽게 판단합니다. 기도도 복을 얻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잘 믿으면 고통도 재앙도 없어질 것이라 여깁니다. 물론 우리가 청하는 것에는 이러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고통과 시련이 오더라도 주님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고, 축복과 기쁨이 넘치더라도 그것 역시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며 감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 보게 하여 주십시오.’ 무엇을 보게 해달라는 것입니까?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야 바르티매오처럼 변신할 수 있습니다. 다윗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바르티매오는

이 단순한 기도를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삶이 무미건조하고 신앙생활이 권태롭다면 우리도 이 기도를 반복해야 합니다. 단순한 기도가 힘 있는 기도입니다.

소경 바르티매오는 기도의 단순함과 믿음의 끈기로써 눈을 뜬 사람입니다.

우리도 그 은총을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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