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훈화
연중 제29주간 - 연중 제33주간

김성은 요한 신부

김성은 요한 신부는 2002년 6월 대구대교구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대구대교구 소속 쌍둥이 형제 신부(필자가 5분 먼저 태어난 형이다)로 현재 김천혁신도시 율곡성당 주임신부로 있다.


연중 제29주간(10월 16-22일)
성모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레지오 단원들은 입단할 때 모두 레지오 단기를 손에 쥐고 레지오 선서문을 바칩니다. 이 레지오 선서문의 특이한 점은 하느님의 성삼위 중 특히 성령께 바치는 기도로 되어있습니다. 이는 성모님께 대한 신심은 반드시 성령께 대한 신심과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여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선서문의 내용을 기억해 보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모든 재능과 성덕과 은총을 내려 주시는데,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때에,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만큼,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방법으로”
그 은혜를 베푸시고 계심을 안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성모님을 신적 위치에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온 삶을 순명하신 성모님의 믿음과 사랑이 결코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음을 교회가 고백하는 것이요, 성모님과 일치하는 길이 바로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특히 레지오 단원들은 모든 성인들에 앞서 성모님께 대한 전구를 통해 성령의 이끄심을 체험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자애로우신 어머니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삼위이신 하느님께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어머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전교주일, 연중 제30주간(10월 23-29일)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관한 물음

얇은 철학 잡지를 몇 줄 읽다가 드는 몇 가지 생각들을 레지오 단원들과도 나누고자 합니다. 다음의 내용은 ‘떼이야르 연구’ 제4호(2015.9)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블롱델은 박사학위 논문의 시작을 삶의 의미의 유무에 관한 유명한 물음으로 시작한다.
“‘예’냐 혹은 ‘아니오’냐? 인생은 의미를 지니는가? 그리고 인간은 목적을 지니는가?”
이 질문은 얼핏 보기에 세 가지 질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 가지 질문은 독립적인 각개의 질문이 아니라 결국 같은 하나의 질문의 세 가지 표현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수락과 유의미와 유목적은 결국 같은 것이고, 거부와 무의미와 무목적은 결국 같은 것이다. 인간이 삶의 의미를 인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 자신과 세계를 긍정하는 태도이고 목적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인간이 자신과 세계 앞에서 “예”하는 것은 결국 하나의 목적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고 인생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생이 목적을 가짐은 그것이 의미가 있음을 수락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 세 가지 질문은 하나의 실재를 세 가지 관점에서 보고 제기한 같은 내용의 물음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식 때 다음의 질문을 받습니다. “당신은 세례받기를 원합니까?” 이에 우리는 “예”라고 대답함으로써 신자가 되는 삶을 수락합니다. 이 선택은 수동적이면서도 능동적입니다. 우리는 이 대답 안에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선택한 것이고 그렇게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인간의 행동은 선택과 은총이라는 능동성과 수동성을 동시에 지닙니다.
레지오 단원 여러분, 기도가 의미 있고, 신앙과 봉사가 가치 있음은 그 사람의 삶의 목적이 그것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임을 생각해 봅니다.


연중 제31주간(10월 30일-11월 5일)
사랑에서 영생(永生)으로

레지오 단원 여러분, 위령성월을 시작할 즈음 독일의 성서신학자 게르하르트 로핑크의 ‘죽음이 마지막 말은 아니다’라는 소책자의 일부 내용을 간단히 소개할까 합니다.
로핑크라는 신학자는 이 책에서 인간 삶에 있어 죽음은 결코 모든 것을 끝내는 마지막이 말이 아님을 성서의 종말론적 계시를 통해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러하셨듯 이 사랑을 통해 영생의 길을 가게 되고, 또 그렇게 된다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초연한 삶, 그것은 신앙인이 가져야 할 분명한 삶의 태도입니다만, 죽음이 멀리 있게 느껴지고 죽지 않는 사람처럼 사는 우리의 모습에서 초연한 죽음을 거부하고 있는 삶의 태도를 자주 보게 됩니다.
로핑크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한평생 쌓아 올린 모든 자기기만과 환상이 일순간에 붕괴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숨겨두었던 가면들이 벗겨질 것이다. 우리 스스로에게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연기해 보이던 모든 것을 우리는 이제 중지해야 한다. 이는 끝없이 고통스러운 일이며 마치 불과 같이 우리를 스쳐 지나갈 것이다.”
죽음에 대한 참되고 깊은 묵상은 하느님이라는 절대적 존재와 영생의 삶에 대한 믿음으로 이끌어 줍니다. 영생에 대한 믿음이 없는 많은 사람들은 현세의 삶에 대해 부정하는 결과를 종종 초래합니다. 그래서 현세의 삶을 부정하는 사람들 중에는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또 허무한 인생이라는 생각에 방탕하거나 고약한 자신만을 위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도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죽음이 마지막이 아님을 아는 사람, 또 그것을 믿는 사람은 추하고 부끄러운 나의 생에 대해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희망하게 되고, 그 결과는 지금 현재의 삶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삶, 그것만이 우리가 이 땅에 왔다가는 이유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연중 제32주간(11월 6-12일)
보속과 희생으로 받아들여지는 죽음

레지오 단원 여러분, ‘누군가 나를 대신하여 보속과 희생을 바친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20여 년 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때는 저와 제 동생이 사제서품을 받고 1년이 채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이후 아버지를 생각하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친 적이 있는데, 그때 생전에 아버지께서 받아들여야 했을 죽음의 무게에 대해 제가 느낀 묵상 글을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신학교에서의 마지막 방학, 이 겨울방학이 지나고 여름이 되면 방학이 아니라 졸업이다. 졸업식은 사제서품식이다. 부제품을 같이 받았지만 학위를 마치기 위해 동생은 다시 필리핀에 가 있다. 4월에나 완전히 귀국한다고 소식이 왔다. 아버지께서 담석증이 심해지셨는지 자꾸 통증을 호소하신다. 약도 쓰고 담석증에 좋다는 음식, 물도 엄청 드신다. 주치의 선생님은 최신 기법인 충격파 시술을 권하신다. 그 덕분인지 주치의 선생님은 새끼손톱만 한 담석을 작은 유리통에 들고 와 우리에게 보이며 성공했다는 표정을 감출 수 없다. 아버지께서도 이제 안도의 얼굴을 보이신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또 통증을 호소하신다. 병원에서 가능한 검사를 모두 했다. 병명이 나왔다. 병명을 찾은 과는 ‘혈액종양과’다. 병명은 ‘원불성 혈액종양’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암으로 이미 온몸의 임파선에 종양세포가 퍼졌다. 주치의는 바뀌었고, 의사선생님은 6개월에서 1년을 더 사시기 어렵다고 하신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방사선치료 약물치료를 해보자 하신다. 원인을 알 수 없기에 어느 부위에서 종양이 시작됐는지 알 수 없고 수술도 할 수 없다. 아버지께서는 몇 시간째 아무 말씀 없이 저 멀리 산 너머 하늘만 보신다.
막내아들 쌍둥이 부제, 6개월만 있으면 사제서품식인데 … 아버지께서 … 한평생 고생만 하신 불쌍한 아버지께서 사제 둘을 만드시는 대가로, 우리 쌍둥이 두 부제의 죄를 대신하고 부족함을 대신하여 번제물이 되시듯 이 고통을 대신 지신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눈물이 한없이 흐른다.”


연중 제33주간(11월 13-19일)
고백록

그리스도교가 세상에 알려지고 그 기초가 닦여질 무렵, 교회 안에서 그리고 철학사 안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을 뽑으라고 하다면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4세기의 인물로서 그의 신앙과 가르침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그의 저서만도 232권이나 되며, 그중에서 대중으로부터 가장 많이 읽혀진 책이 바로 ‘고백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아우구스티노 자신의 생애를 되짚으며 주님께 보내는 고백의 편지인 동시에, 님에 대한 긴 서사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백록을 읽어보면 단순한 독백이나 자서전이 아닌 아우구스티노가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이며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제가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을 언급하는 이유는 죄에 빠졌다가 회개의 은총을 입은 그가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노래하고, 심연의 묵상을 기도말로 풀어내는 한 인간의 글을 통해 그것을 접하는 이도 그와 같이 변화되고 깨닫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위대한 철학자요 영성가인 아우구스티노의 글이라서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 인간의 진실된 고백이 진리를 깨닫게 하고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레지오 단원 여러분, 우리도 각자 자신을 잘 성찰하여 자신의 모습을 고백할 줄 알도록 영성을 키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진솔함은 하느님을 뵈옵게 하는 길임을 체험할 것입니다. 끝으로 고백록 제10권 제2장의 일부를 전해드리겠습니다. 고백은 기도이며, 고백이 깊은 자기 성찰을 통해 나오는 것일 때, 그 고백을 통해 하느님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하오나 주여, 당신 눈앞엔 인간 양심의 심연조차 환히 드러나 있거늘 설사 내 고백하고자 아니한단들 당신 모르실 무엇이 내 안에 있으오리까. 내게서 당신 숨길 수는 있을망정 당신에게서 나를 숨길 수야 없지 않사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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