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자료실
2017.03.13 17:32

성체와 성혈 대축일

조회 수 373 추천 수 0 댓글 0

성체와 성혈 대축일

조학균(베드로) 신부

 

1263년 프라하에서 사목을 하는 한 독일인 사제가 있었다. 이 사제는 신앙심이 돈독했지만 늘 성체성사 때 이뤄지는 축성어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라는 말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다.

“정말 빵과 포도주가 나의 이 말 한마디로 주님의 몸과 피로 변하는 걸까.”

“참 하느님이시지만 참 인간이기도 한 예수님의 살과 피가 진실로 빵과 포도주의 형태로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걸까.”

신자들에게 미사를 집전하고 가르쳐야하는 사제가 이런 의혹이 든다는 것에 대해 괴로워하던 그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로마로 순례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와 바오로의 무덤에서 괴로움과 의심을 맡겨드리고 주님께 도와달라고 기도를 드리자.”

 

지금과 달리 13세기 로마까지의 성지순례는 참으로 멀고 고달픈 길이었다. 걷고 또 걸어서 이 사제는 로마를 향했다. 의심을 풀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지만 성지순례를 하면서도 별반 달라진 것을 느끼지 못했던 사제는 로마 인근 볼세나(Bolsena)에서 미사를 집전하게 됐다. 보통 때처럼 성체를 축성하고 난 뒤 머뭇머뭇 거리며 의심을 품고 성반 위에서 성체를 쪼갰다.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성체를 둘로 쪼갰을 때 갑자기 피가, 진짜 피가 거기에서 흘러나왔다. 너무나도 놀란 사제는 성체의 윗부분이 피 묻은 한 덩이의 살로 변해 있는 반면, 손에 잡고 있는 부분은 성체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성스러운 피가 성체포 위에 흘러 25개의 점을 이루었다. 흥분한 나머지 미사를 마칠 수 없었던 사제는 재빨리 피 묻은 성체를 성체포로 싸서 성합과 함께 제의실 상자 속에 숨겨두고 급히 그곳을 떠났다.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된 사제는 가까이 오르비에토에 머물고 있던 교황 우르바노 4세를 방문해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오르비에토의 주교에게 즉시 조사를 위해 살로 변한 성체와 성체포를 모셔오도록 했다. 교황은 수많은 신자들과 함께 성체를 맞이했고, 오르비에토의 두오모(Duomo)성당에 이 귀중한 성유물을 보관했다. 뿐만 아니라 이듬해 1264년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성체를 공경하는 날로 성체성혈 대축일을 제정했다.

 

이후 두오모 성당에는 25방울의 성혈이 묻은 성체포를 보기 위한 순례객들이 줄을 이었으며, 성체성혈대축일은 오르비에토 지방에서 지내는 가장 큰 축일이 되었다. “두오모”는 “하느님의 집”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두오모 성당은 지역의 주교좌성당인 동시에 해발 300미터에 건축된 천연의 요새로 알려져 있다.

 

매일 거행되는 성찬례에서 성체 성혈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다. 미사에 참석하는 이들이 성체와 성혈에 대한 믿음을 갖고 참석을 한다면, 매일 매일이 신비체험을 하는 날인 것이다.

1독서 강론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주님의 은혜

(신명기 8,2-3.14ㄴ-16ㄱ)

안토니오 신부

돌아보면 모든 것이 은총입니다. 그 순간에는 주어진 모든 것이 고통이라고 생각되지만, 시간이 지난 후 그 고통을 바라보면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을 기억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모든 것들을 기억할 때 “하느님은 사랑이 지극하신 분, 사랑 자체이심”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고, 영광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1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모든 계명을 명심하여 실천하여라. 그러면 너희가 살 수 있고 번성할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하며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모든 계명을 명하여 실천하여라. 그러면 너희가 살 수 있고 번성할 수 있다.”하느님께서 주신 계명들은 생명을 줍니다.

 

혼인한 부부들은 서로 반지를 주고받습니다. “사랑과 신의의 표지”로 주고받는 반지는 서로의 사랑을 나타내고, 자신이 사랑해야 할 사람이 누구고,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게 해 줍니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묵주반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분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것이며,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가까이함을 통해서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들을 기억하려 노력하게 되고, 주님께서 베푸신 사랑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세례명도 마찬가지 입니다. 세례명을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신앙인들이 주님의 사랑을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기억한 것을 감사와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기억은 그저 공상이나 흘러가는 구름일 수 있습니다.

 

2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

모세는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구원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시어 자유를 주셨고, 굶주릴 때 먹을 것을 주셨으며, 절망에서 희망과 구원을 주신 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다 은총이요, 구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한다면 “오로지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3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종살이하던 곳에서 먹던 음식을 잊게 만드셨습니다. 먹을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더 중요함을 알게 하셨고,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시어 만나로 배부르게 하셨습니다. 만나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며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것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에로 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말입니다.

 

4 이 사십 년 동안 너희 몸에 걸친 옷이 해진 적이 없고, 너희 발이 부르튼 적이 없다. 5 너희는 마치 사람이 자기 아들을 단련시키듯,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단련시키신다는 것을 마음 깊이 알아 두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약속의 땅을 향한 당신 백성들을 손수 돌보셨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오냐 오냐!”하면서 버릇없는 아이로 키우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잘못은 꾸짖으셨고, 백성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언제나 명확하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과 심오한 계획을 모르는 백성들은 자주 투덜거리고 반항했으며, 불손하기 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받아주시며, 당신 자녀들을 단련시키셨습니다.

 

살아가면서 많은 시련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그 시련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만들어낸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원망하며, 하느님께 불경을 저지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을 사랑으로 감싸 주십니다. 그리고 그 시련을 통해 성숙해지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그 시련 속에서 나는 하느님의 부재를 느끼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되게 기도할 때,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시려는 은총과 구원이 바로 내 앞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6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을 경외해야 한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하느님의 계명을 충실하게 지키려고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백성들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계명을 하느님 백성들에게 멍에나 짐이 아닙니다. 그 계명은 하느님 백성을 생명에로 이끌어주고, 구원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을 감사하며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길을 따라 걷는 방법이고, 그것이 바로 주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주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주님의 모든 말씀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그 가르침을 기뻐하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계명을 기쁘게 지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쁨이요 자신에게는 한없는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은 주님의 길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습니다. 주님의 길에서 참된 자유를 느끼며, 힘차게 그 길을 걷게 됩니다.

 

7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좋은 땅으로 데리고 가신다. 그곳은 물이 흐르는 시내와 샘이 있고, 골짜기와 산에서는 지하수가 솟아나오는 땅이다. 8 또 밀과 보리와 포도주와 무화과와 석류가 나는 땅이며, 올리브 기름과 꿀이 나는 땅이다. 9 그곳은 너희가 모자람 없이 양식을 먹을 수 있고,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는 땅이며, 돌이 곧 쇠이고, 산에서는 구리를 캐낼 수 있는 땅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이끄시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하지만 광야를 걷는 백성들에게 거친 음식과 갈증은 오히려 이집트의 종살이를 생각나게 만들고, 모욕과 절망 속에서 고통당하며 먹었던 빵과 고기를 그리워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불경을 저질렀습니다. 자신들의 눈앞에는 뜨거운 광야와 고통만이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사막을 건너야 오아시스가 있는데, 사막을 건너지도 않고 오아시스를 찾고 있으니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지금 가고 있는 곳은 바로 약속의 땅이고, 풍성한 음식과 시원한 물이 있는 곳입니다. 아쉬울 것이 없는 땅으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10 너희는 배불리 먹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신 좋은 땅 때문에 그분을 찬미하게 될 것이다.

“찬미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 안에는 “지금은 불평하고 있지만”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앞에 있는 것만을 보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고, 못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고 따르는 백성들은 크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주님 말씀을 굳게 믿고 따를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알아야 무엇을 알겠습니까? 나의 판단이 언제나 옳겠습니까? 내가 좋은 것만을 보려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선으로 판단하려는 마음이 내 안에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버릴 때, 나는 주님께서 베푸신 은총을 감사할 수 있고, 온전히 주님을 찬미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순명할 수 있게 됩니다.

 

11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계명과 법규와 규정들을 지키지 않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12 너희가 배불리 먹으며 좋은 집들을 짓고 살게 될 때, 13 또 너희 소 떼와 양 떼가 불어나고 너희에게 은과 금이 많이 생기며, 너희가 가진 모든 것이 불어날 때, 14 너희 마음이 교만해져,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너희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힘들고 어려울 때는 “꼭 갚겠다!”고 하면서 도움을 청합니다. 하지만 그 상황이 지나가면 “그의 도움이 아니라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그 상황을 이겨냈다.”고 자만하며 그의 도움을 잊어버립니다. 그 모습은 기억하지 않는 이들의 모습이고, 감사하지 않는 이의 모습이며, 내 모습일 수 있습니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계명과 법규와 규정들을 지키지 않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라는 말씀을 통해 출애굽과 가나안 정착이라는 엄청난 은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잊어버리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유혹과 교만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만”은 “감사”를 몰아내고, “ 재물과 안락함은 “망각”을 가져오고, 망각”은 교만을 끌어안아 버립니다. 그리고 우상숭배와 불순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렇듯 유혹은 언제나 내 옆에, 내 앞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있지 않으면 잊어버리게 되고, 잊어버리게 되면 구원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15 그분은 불 뱀과 전갈이 있는 크고 무서운 광야, 물 없이 메마른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시고, 너희를 위하여 차돌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신 분이시다.

하느님께서는 구원자이십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끄신 분이시고, 멸망에서 구원에로 초대하시는 분이십니다. 나를 위해 세상 모든 것들을 준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알아야 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내 삶을 돌아보면 어려운 고비들이 참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간절하게 기도 했고, 응답을 받았지만, 그 어려운 시간들이 지나가고 나면 “언제?”하면서 망각해 버립니다.

 

16 또 그 광야에서 너희 조상들이 몰랐던 만나를 너희가 먹게 해 주신 분이시다. 그것은 너희를 낮추고 시험하셔서 뒷날에 너희가 잘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광야에서 배고픔에 괴로워하는 백성들을 하느님께서는 만나로 배불리셨습니다. 그 만나가 출애굽 하는 백성들에게 육신의 생명을 주었고, 하느님의 인도에 따라 광야를 걷게 했으며,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며 먹던 음식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따르는 이들은 하느님께만 구원과 생명이 있음을 체험하게 되었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게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잊어버리니, 하느님을 잊어버리게 되고, 결국 구원과 생명까지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너희가 잘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시기에 손수 이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만 구원이 있음을 나는 알아야 합니다.

 

17 너희는 마음속으로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이 재산을 마련하였다.’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18 그러나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기억해야 한다. 바로 그분은 오늘 이처럼,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계약을 이루시려고, 너희가 재산을 모으도록 너희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시다.

주님께만 구원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야만이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산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결국 멸망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권면할 때 거부하는 어떤 이는 “나는 내 주먹을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고로 그 손이 절단되고, 중풍까지 와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게 되자 “제가 믿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 뿐이십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그를 내치지 않으시고 끌어안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생명을 주시는 것이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을 거부해서는 안 되고, 망각해서도 안 됩니다.

 

19 만일 너희가 정녕 주 너희 하느님을 잊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 그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경배한다면, 내가 오늘 분명히 경고하는데, 너희는 반드시 멸망하고야 말 것이다. 20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처럼 너희도 멸망할 것이다.”

주님을 잊은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은 멸망밖에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을 섬기는 이유는 잊어버려서이고, 감정의 충실한 노예가 되어서 입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와 감사와 영광보다는 이교 신들에게 바치는 제사와 신전에서의 추잡한 행위들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우상숭배에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잊어버리면 멸망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체와 성혈을 모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당연하게 생각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믿지 못한다면 결국 구원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멸망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기억”해야 하고, “감사”해야 함을 명심합시다. 그리고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함을 꼭 기억합시다.

2독서 강론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1코린토 10,16-17)

웹진 편집실

성체를 받아 모시는 사람은 성체를 받아 모시는 사람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을 간직하고 성체 안에 예수님께서 계심을 고백하는 이들은 삶으로도 고백을 해야 하고, 성체를 모신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참된 믿음을 간직하는 것이고, 공동체와 일치하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이 없으면서도 성체를 받아 모시는 사람은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입니다. 성체를 받아 모시면서도 공동체와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일치의 성사인 성체성사를 가볍게 여기고, 모독하는 사람입니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상 숭배를 멀리하십시오. 15 나는 여러분을 슬기로운 사람으로 여겨 말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우상은 하느님 아닌 것을 하느님이라고 생각하고 공경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느님께 드릴 것을 하느님께 드리지 않고, 헛된 것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코린토 교회는 이교제사의 매력에 빠져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온갖 우상들을 섬기던 그 마음을 버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답답하다고 용한 점집을 찾아가는 이들, 부적을 가지고 다니는 이들, 하지 말라고 했다고 꺼리는 이들. 이들은 결코 슬기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또한 현대의 우상숭배는 건강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건강에 좋다면 뭐든지 합니다. 그래서 미사 보다는 운동에 더 관심을 가지고, 신앙모임 보다는 세상모임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우상숭배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회장님께서 영성체를 안 하셔서 본당신부님께서 물어보셨습니다.

“회장님! 뭔 일 있으세요? 왜 영성체를 안 하세요?”

그러자 그 회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약을 먹는데 밀것을 먹지 말라고 해서요.”

 

슬기로운 신앙인이 되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16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성체성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것은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먹고 마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고, 성체와 성혈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참조: 1코린10,17).

 

나와 생각이 같지 않다하여 상대방을 비방하는 것은 성체성사의 삶이 아닙니다. 내가 이끌지 않는다 하여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이들을 반대하는 것 또한 성체성사의 삶이 아닙니다.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함께하며, 일치하는 것이 성체성사의 삶입니다.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며, 형제자매들에게 기쁘게 손을 내밀고, 웃어주는 삶. 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며,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삶. 형제자매들과 일치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전하는 삶. 그 삶이 바로 성체성사의 삶입니다.

 

17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체성사는 일치의 성사입니다.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이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할 때, 형제자매들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대할 때, 나는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 뵙는 것이고, 성체성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내가 모신 성체를 함께 모시고 있음을 명심합시다. 주님께서 그를 사랑하시어 그와 함께 계심을 볼 수 있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과 나눔과 일치를 이루는 내가 되어 봅시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부 속 가 (성체송가)

웹진 편집실

1. 찬양하라 시온이여, 목자시며 인도자신, 구세주를 찬양하라.

2. 정성다해 찬양하라, 찬양하고 찬양해도, 우리능력 부족하다.

3. 생명주는 천상양식, 모두함께 기념하며, 오늘특히 찬송하라.

4. 거룩하온 만찬때에, 열두제자 받아모신, 그빵임이 틀림없다.

 

5. 우렁차고 유쾌하게, 기쁜노래 함께불러, 용약하며 찬양하라.

6. 성대하다 이날축일, 성체성사 제정하심, 기념하는 날이로다.

7. 새임금님 베푼잔치, 새파스카 새법으로, 낡은예식 끝내도다.

8. 새것와서 옛것쫓고, 예표가고 진리오니, 어둠대신 빛이온다.

 

9. 그리스도 명하시니, 만찬때에 하신대로, 기념하며 거행한다.

10. 거룩하신 말씀따라, 빵과술을 축성하여, 구원위해 봉헌한다.

11. 모든교우 믿는교리, 빵이변해 성체되고, 술이변해 성혈된다.

12. 물질세계 넘어서니, 감각으로 알수없고, 믿음으로 확신한다.

 

13. 빵과술의 형상안에, 표징들로 드러나는, 놀랄신비 감춰있네.

14. 살은음식 피는음료, 두가지의 형상안에, 그리스도 온전하다.

15. 나뉨없고 갈림없어, 온전하신 주예수님, 모든이가 모시도다.

16. 한사람도 천사람도, 같은주님 모시어도, 무궁무진 끝이없네.

 

17. 선인악인 모시지만, 운명만은 서로달라, 삶과죽음 갈라진다.

18. 악인죽고 선인사니, 함께먹은 사람운명, 다르고도 다르도다.

19. 나뉜성체 조각마다, 온전하게 주예수님, 계시옴을 의심마라.

20. 겉모습은 쪼개져도, 가리키는 실체만은, 손상없이 그대로다.

 

21. 천사의빵 길손음식, 가녀들의 참된음식, 개에게는 주지마라.

22. 이사악과 파스카양, 선조들이 먹은만나, 이성사의 예표로다.

23. 참된음식 착한목자, 주예수님 저희에게, 크신자비 베푸소서.

저희먹여 기르시고, 생명의땅 이끄시어, 영생행복 보이소서.

24. 전지전능 주예수님, 이세상에 죽을인생, 저제상에 들이시어,

하늘시민 되게하고, 주님밥상 함께앉는, 상속자로 만드소서.

복음 강론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요한6,51-58)

웹진 편집실

어떤 형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체가 상징 아니었어요?”

신앙인이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성체와 성혈은 예수님의 몸과 피 입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성체와 성혈을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체와 성혈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내가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던 간에 말입니다. 보고 맛보고 만져 봐도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몸과 피 입니다. 바로 예수님 이십니다. 하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 뵐 방법이 없습니다. 요즘은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머리카락을 십만 분의 일로도 쪼갭니다. 그러나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특수한 현미경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눈에 안 보인다고 없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임을 자처하는 것일까요?

 

전에 중고등부 지구 학생 체육대회 때 있었던 일입니다. 마침 그날이 성체와 성혈 대축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학생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성체가 예수님의 몸임을 믿습니까?”

손드는 학생들은 많지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결국 알아듣지 못하고, 알아 뵙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성체가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을 못 느끼고, 못 알아보는 것입니다. 어른 신자 중에도 “성체가 상징 아니었습니까?” 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대단한(?) 사람들은 계속 생길 것입니다. 볼 눈이 없는 사람들은 보지 못합니다.

 

1.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살아 있는 빵입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은 그 빵으로 힘을 얻어 구원을 향해 한발자국씩 나아갑니다. 성체로 힘을 얻은 신앙인들은 그렇게 생명을 향해,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또한 이 말씀은 믿는 이들에게 큰 기쁨과 희망을 줍니다. 마지막 숨을 내 쉬며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려는 형제자매들은 “한 생을 주님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살아왔기에” 굳은 믿음을 고백하며 영원한 생명을 희망합니다. 마지막 노자성체를 받아 모시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비록 부족하지만 주님의 성체를 받아 모셨고, 합당하게 주님의 성체를 모신 사람으로 살아왔기에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의 자비하심에 희망을 거는 것입니다. 그러니 행복하게 마지막 숨을 내 쉴 수 있는 것입니다.

 

2. 논쟁하는 유다인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유다인들 사이에서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왜냐하면 피를 마신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 금지되어 있었고, 더 나아가 사람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살을 먹는 다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결국 그를 죽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말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를 못하고 있었고,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이심을 모르기에 말다툼을 벌렸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 때 밀떡과 포도주의 형상을 통하여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물론 영성체를 하는데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코기를 먹으라고 주면 이런 반응이 나오겠지요.

“그리스도의 몸!”

“으아~악”

 

3. 성체기적

1264년 독일 신부님 하나가 로마를 순례하던 중, 「보르세나」에 들러 성녀 크리스티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과연 밀떡 속에 예수님이 계시는 걸까? 계시지도 않는 예수님을 계신다고 생각하며 헛수고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며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사 예식을 거행하는 중에, 갑자기 밀떡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며 밀떡이 살덩어리로 변하는가 하면, 포도주 잔에 있던 포도주가 피가 되어 잔에 흘러 넘치고 있었다. 당시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이 사건을 기념하여 교회 축일로 지정하였다,

 

예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먹도록 내어주는 이 빵은 바로 예수님 자신의 몸으로써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4. 성체를 영하는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지 않는 이들이 오해를 한다 하더라도 분명한 것을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즉, 믿지 않는 이들을 설득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얻고 싶으면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된다고 더욱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① 왜 첫영성체를 해야만 성체를 영할 수가 있나요? 이 말씀대로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당신께로 오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초자연적인 양식을 영하는 데에는 적어도 어느 정도의 이성의 분별과 신심과 존경이 있어야 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첫영성체 교리를 통해서 믿음을 준비시키고, 첫 고백을 통해서 합당한 자세를 준비시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왜 어린아이들에게 돈을 주어서는 안 됩니까?”라는 질문과도 같을 수 있습니다. 한두 살 먹은 어린아이가 돈의 가치를 알지도 못할 뿐더러, 쓸 줄도 모릅니다. 그러니 어린 아이들에게 돈을 안 주지요. 용돈을 주기 시작하는 것도, 어느 정도 나이가 있고, 돈을 쓸 줄도 알아야 주지 않겠습니까?

 

② 참된 양식, 참된 음료

예수님의 몸은 참된 양식이고, 예수님의 피는 참된 음료입니다. 성체를 받아 모시며 참된 생명의 양식으로 나에게 오시는 예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매 미사 때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나에게 오시지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무딘 마음으로 모셔도 안 됩니다.

 

예전에 신학교에서 선배 부제님이 부제품을 받고 첫 방학을 보내고 와서 해준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처음 성체 분배를 할 때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 내 손으로 예수님의 몸을 신자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몰라.” 그리고 다음 방학 때는 “내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그 두렵고 떨리던 마음이 모두 사라지고, 성체를 분배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볼 때가 있어!”

 

언제나 감사하며, 주님과 함께 있음을 기억하지 않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내밀며 ‘아멘.’”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동차는 연료가 없으면 멈춰 버립니다. “생명의 빵도 그렇게 되었으면 쉽게 이해할 텐데...,”하는 분심을 해 봅니다. 미사 참례 한번 안하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성체 한달 영하지 않으면 말을 못하게 되고, 기도 안하면 숨이 막혀 버리고... 그렇게 되면 잊어버리지도 않고, 안 찾을 레야 안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다면 난 벌써 걷지도 못하고 숨이 막혀 죽어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더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5. 예수님 안에 머무는 사람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아내가 어렵게 외아들을 키웠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죽음으로 나오게 된 “보상금(위로금)”으로 작은 밭을 샀습니다. 그리고 그 밭을 일구어서 두 가족이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외아들은 어머니의 마음대로 커 주지 않았습니다. 삐딱한 친구들과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아들은 어머니 몰래 작은 밭을 팔았습니다. 도박 빚 때문에 밭을 몰래 팔았던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아들을 붙잡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놈아! 그 밭이 어떤 밭인데, 그 밭은 네 애비 피여! 그 밭이 바로 네 애비 몸이란 말여! 어떻게 그것을 팔수가 있냐! 이놈아!~”

아버지의 목숨이 밭으로 바뀐 것입니다. 어머니가 밭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아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던 아들은 그 밭이 그저 밭일 뿐 이었던 것입니다.

 

성체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의 형상 안에 당신을 담으셨습니다. 포도주의 형상 안에 당신을 담으셨습니다. 우리 눈에는 빵과 포도주만 보이지만,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 안에 예수님께서 계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의 눈이 없다면 밀떡과 포도주밖에는 안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믿음을 가진 신앙인들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신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께서 그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 예수님 안에 머무는 삶. 그 삶이 바로 구원 아니겠습니까? 또한 이 말씀은 희망을 줍니다. 생명의 양식을 받아먹은 내가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확인이기 때문입니다.

 

6.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사람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파견되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이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아버지 하느님 안에 계셨고,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셨으며,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힘을 얻어 지상에서의 모든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성체를 받아 모신 사람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성체성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게 됩니다.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겼기에 예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힘은 주님과 일치할 때만 발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과 일치하시기 위해 모든 유혹을 물리치셨고, 밤을 새워 기도하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나 또한 예수님과 일치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요?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합당한 예복(혼인잔치의 비유)을 준비해야 함을 알고 있기에 의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 해 드리는 것임을 알고 있기에 내 옆에 있는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가려고 합니다. 또한 가장 중요한 성체성사를 통하여 힘을 얻고, 주님과 온전히 일치하여 주님 안에서 살아갑니다. 이 삶이 바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모습입니다.

 

7.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 빵입니다. 그리고 그 빵은 출애굽한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은 빵(만나)과는 다릅니다. 만나를 먹은 사람들은 모두 죽었지만,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시나이 산에서의 계약을 상기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맺으시고자 원하셨던 계약의 조건을 이스라엘 백성이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한 후 모세는 희생 제물로 바쳐졌던 황소의 피를 받아, 반은 제단 위에 붓고(하느님을 대신하는 제단), 반은 이스라엘 백성 위에 뿌려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계약의 성립을 표현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몸과 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과 맺었던 계약의 피나, 백성들이 먹었던 만나와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몸과 피는 영원한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성체와 성혈 대축일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몸과 피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굳게 믿어야 하고, 합당하게 받아 모시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성체를 받아 모시는 나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신 것을 기억하면서 나 또한 내 형제자매들을 위해 나의 것을 내어 놓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기에 서로 일치하여 주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웃어봅시다.

그리스도의 몸! 감사합니다!

웹진 편집실

주일학교 미사 중이었습니다.

영성체 시간이 되어 신부님께서는 성체를 분배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모두 “아멘!”하고 성체를 받아 모십니다.

성체 안에 예수님께서 계심을 굳게 믿는다고 고백의 의미로 “아멘”이라고 응답을 하는 것입니다.

 

신부님을 좋아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미사 중 신부님을 바라보면서 행복해 합니다.

신부님 앞에서 서면 얼굴이 빨개질 정도입니다.

그 학생이 성체를 모실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그러자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가슴 떨리며, ‘예수님! 감사합니다.’ 하고 성체를 모시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을 “아멘”이라고 응답하는 것이지요. 그 학생처럼 가슴 떨리며 성체를 모시는 내가 되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