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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1 15:49

병든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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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정신
 
  물은 정신적인 존재
 
인간은
동물적인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정신적인 존재’ 다.

그리고
영적(靈的)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의
숭고한 정신이
철학의 문을 열었다면
 
인간의 영은
종교의 문을 열었다.

철학의 밭을
통과한 신앙은 건전하지만
그렇지 못한
믿음이 미신이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위대한 인간의 정신에
우,열이 있다는 것은
사실
신비에 속하는 문제다.
 
사랑학 개론 - 선과 악

그것은
선과 악을
설명할수 없는것과 같은
차원의 숙제이기도 하다.

 
어떤 정신은
인류에게 봉사했지만,
다른정신은
인간을 파멸의 길로 이끌었다.

인간정신의 우,열은
아마도
처음부터 갈라져 있었을 것이다.

어떤면에선,
그건 태생적일수 있기 때문이다.

성격이 변하지 않는것을 보면
이해할수 있다.

그래서
문학에서는
‘나쁜피’ 라는
매우 유비적인 표현을 쓴다.
‘병든정신’ 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사람이 살고있는 모든시대에는

그 시대에서 나타나는
‘시대정신’ 이 있어왔다.
 
시대정신 >속편< 제3부 자크 프레스코시대정신
 
그 시대정신 안에는
사유체계(思惟體系)는 물론,
가치관도 포함돼 있으며

그 시대정신이
사람들의 행동양식(行動樣式)을
결정짓는것도 사실이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이미있는
학습과정의 ‘틀’ 을 통해
그것이
교육되고,퍼지기 때문에
보수적인
측면이 보전되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인터넷 이라는
보편화된 수단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검색된
정보를 정제하고,
구분하고, 판별하는데는
그렇게
할수있는 ‘실력’ 이
그 바탕에 있어야 한다.


그게 있으면
정보의 주인이되고,
그게 없으면
정보의 노예가 될수밖에 없다.

정보화시대의 위험과 파탄이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정보화시대의 리더 정보보안전문가!

이미 우리는
그것들을
아프게 체험한바 있으며
지금도
똑같은 위험앞에
노출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한 네티즌이

대학교 커뮤니티에 올린글이
‘43계명’ 이란
명칭으로 불리면서

인터넷포털의 게시판,
카페,
블로그등을 통해
빠른속도로 넓게 퍼지고 있다.

그 네티즌이
커뮤니티에 올릴때의 글 제목은

‘사회에 나가면
누구나 알게되는 사실43가지’ 였다.

43개의 짧고도
자극적인 글들은
대단히
냉소적이고 자조적(自嘲的)이며,
어떤 글들은

허무주의-nihilism 에 가깝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 보는데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것이다.

이제
43개의 글중
그 내용이 상대적으로
더 첨예한 10개를 선정,
 
부연설명 해 봄으로서
‘병든정신’ 이
사회공동체에 끼치는
나쁜영향에 대해 생각해 봐야한다.

나쁜정신도
시대정신임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1. 나까지 나설 필요는 없다.



[속담풀이]4.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겠다’ 는
얘기다.

함께
구정물에 손을 담글 의사가 없는,
가장
소극적인 이기주의가 그것이다.

인간의 사회공동체는
개개인의
자발적인 ‘참여’ 에 의한
‘관계’에서 시작되는 조직이기 때문에
 
한 발
물러서 있겠다는 태도는
지극히
반사회적인 발상일수 밖에 없다.

‘너희끼리 잘 해봐’
아웃사이더 만이

내 뱉을수 있는 말이다.

이런부류가 많아지면
그 사회공동체가 붕괴되는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특히
젊은이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2.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


무슨 헌신짝도 아니고...

헌신짝은
소용에 닿지않는 버려진 물건이다.

헌신(獻身) 이라는 이타적 행동이
결과적으로
‘쓰레기’ 가 된다는 이 발상은
지극히 반 인간적이다.


인류문화사에서
인간집단을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향상시킨것은 살아있는
정신들의

그 고귀한 헌신과 자기희생,
그리고 봉사였다.

가장
고상한 인간의
이타적 행동에 대한
이런 냉소는
그 정신이 깊이 병 들었다는 증거다.

가장
근접한 사례가 있다면
부부사이까지 희생하면서
자녀교육에 매달리는 부모들이
자식이 성장한후
용도폐기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효용가치가 없어지면
버려져
헌신짝이 되는것이다.

3. 포기하면 편하다.



"불가능 이겨낸 정주영의 &apos;도전정신&apos;, &apos;흙수저론&apos; 패배주의 극복에 도움"

패배주의의 전형이다.
모험과 도전이 없는 삶은

그 겉모습이
어떠하든 젊은이의 길은 아니다.

‘야심’ 은
성공의 가장 큰 열쇠다.

야심이 있어야
목표가 생기고
그 목표를 향해
어려운 과정들을 극복해 나갈수 있다.

지금의
젊은세대가 어려움에 약한것은
무지한
부모들의 과보호가 온실이 되어

비바람을 견디는
인내력을 길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면역력이 없는것이다.
그래서

빨리 포기한다.

4. 가는말이 고우면 사람을 얕본다.



4060, 50플러스 세대에게반전은 없다?>캘리그라피< 가는말이 고우면?
 
대단히 체험적인 말같다.

큰목소리가 통하는,
왜곡된 세상을
살아본 사람의 경험이 그것이다.

인사-人事 는
말에서 시작된다.

지금 우리사회는
만인이
만인을 향해 쟁투하는 살벌한 사회다.

자칫
공손한 언사가
약자로 비칠수도 있는
분위기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잘못된 것임을 계속 천명하면서
고운말이
오가는 사회를 만드는것이
당연한 일이지

 
얕보이는게 싫어
목소리를 높인다면
결국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수있는
사회는 만들지 못한다.

고운말에 힘을 싣는것은
그래서
‘자기의 신념’ 이다.

자기철학이 분명하다면
이미 표정에서
말 이상의 효과를 얻을수 있다.

5. 즐길수 없으면 피하라.

즐길수 없으면 피하라~시대따라 바뀐속담

즐겁다는 개념은
괴롭다는 개념이 있기 때문에
성립되는 정서다.

사람사는 세상은 날씨와 같다.
맑고

따뜻한 날이 있는가 하면,
먹구름이 낄때도 있고,
비바람이 치는가 하면
추운날도 있다.


그런데
맑고 따뜻한 날에만 얼굴을 내밀고,
궂은 날씨에는

나서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험한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

정신적존재인 인간은,
쾌락보다는 고통을 통해

더 크게
성장하는 ‘인격체’ 임을 알아야 한다.

6. 일찍 일어나는 새가 더 피곤하다.


사회에서 배우는 진리

일본과 우리는
‘같은시간대’ 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보다
평균 한시간 먼저 해가뜬다.

같은 시간대에서
그들은 우리보다
한시간을 벌고 들어가는 것이다.

하루를
일찍 시작 하는것은
밤시간과는 무관한
‘현실적인 이익’ 이 있다.

시간대가 같기 때문에
먼저
시작하는쪽이 유리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이
우리들보다
더 피곤해야 하는것일까.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다.

7. 어려운 길은 길이 아니다.

좁은 문 좁은 길

포기하면 편하다는 생각의 연장이다.
세상에는

어려운 길이 따로있고,
쉬운길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그 두가지 길은
섞여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피할 수가 없다.

따라서
어려운 길을 피하면
앞으로 나아갈수가 없다.

그 자리에 정체된다는 것은,
고여있는 물이

썪는것과 같은 과정을 밟게된다.

8. 내일 할수있는 일을 오늘 할 필요가 없다.

무한도전 2인자 거성 박명수의 묘한 공감 어록/명언

‘준비’ 가 필요없다는 괴변이다.
오늘일을

다 하고도 여력만 있다면
내일일을 끌어다 하는게
발전이요 성공이다.

‘주어진일’만 하는것은 노예일 뿐이다.
노예는

절대
내일일을 미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게 자유하는 사람이라면,
더구나

그게 자기일 이라면
모레일까지도 끌어다 해야한다.

정당하게 벌어
크게 재산을 불린 사람들은
하나같이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게 사과장사라 해도
열심히
자기일을 해 온 사람들이다.

9. 고생 끝에 골병난다.


고생 끝에 골병난다.모두 맞는 명언

고생의 의미는,
성공이 주는 보상이다.

골병날까봐 두려워서
‘리스크’ 를 피한다면
평생을
살아도 성공할수 없다.

성공은
꼭 돈을 많이버는것 만은 아니다.

자기의 실현,
자기재능의 구현,
그것들이

사실은 더 값진 성공이다.

골병은
고생하는 방법과
자세가 나빠서 생긴것이지
고생자체가
골병을 부르는것은 아니다.

10.티끌 모아봐야 티끌이다.



티끌모아 태산.

일확천금은
언제나 재앙을 불러온다.

복권인생을 두려워 해야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땀흘려 번 돈의 가치는
다른 어떤것과도 비교할수 없다.

‘저축’ 은
변함없는 경제의 미덕이다.

아무리 많은숫자도
그 시작은 ‘하나’ 부터다.
하나를

우습게 알면 돈은 쌓이지 않는다.

티끌 모아봐야 티끌이라는
이 잘못된 생각은
인간의 정신을 좀먹는
악마의 속삭임인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모든
사회공동체 안에는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부류들이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사회가
붕괴되지 않고 굴러가는것은
‘건전한 정신’ 이

상대적으로 더 많기 때문이다.
 
**오늘의 명언...*^^*

건전한 정신의 참 기능은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反을
성찰의 계기로 삼아
合을 도출해 내는 능력이다.


‘헤겔’ 에 의해 정식화된
‘正反合’ 의 변증법적 논리가
바로
그 개념이다.

문제는
合을 이끌어 내는
우리사회의 수준이 크게 미흡하다는
사실을 인정 해야한다.

지금의
모든 사회적 혼란의 원인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더 피곤하다’ 가
아니라,

‘일찍 일어나는 새라야
벌레를 잡을수 있다’ 가 변함없는 정답이다.
 
[긍정과 부정]

그래서
긍정과 부정은
종이한장 차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