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연혁

1. 구포지역 천주교 전래

최초의 구포 교우가 누구인가에 대하여는 확실치가 않다.
100여년 전에 왕궁의 어의(御醫)였던 이규화가 신자여서 그 아들 바오로를 양산군 상북면 대석리로 장가를 보냈다.
그는 그곳 처가가 사는 토기공장 부락에 김 모(성명미상)라는 사람에게 전교하여 영세를 받게 하였다.
신자가 된 김 모가 김해군 명지면으로 옮겨 살던 중 병인년(1866년) 대 교난이 일어 전국이 물 끓듯 할 때 김 모는 도로 양산군 호계리로 피신하였다가 교난이 그친 뒤에 구포 음정골로 와서 살게 되었으니 이분이 뒤에 대리 공소회장을 한 김윤서(본명미상)의 부친이라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고인이 된 윤신술(말지나) 가 90여 년 전 어린 나이로 영세를 받을 당시 그 부친이 교우(윤현철 요셉) 였고 조모도(김 마리아)교우이던 것을 보면 벌써 김모가 구포 지방으로 이주해 오기 전에도 교우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을 하게 한다.
고인이 된 이상만(요한) 전 공소회장이 이곳 숙등(현 덕천동)에서 태어났으며 그 부모가 양산에서 이주해 온 교우 - 부친 이기봉(야고보), 모친 권수임(이사벨라) - 이다.
1815년(을해년), 1827년(정해년) 두 교난에 이어 1839년(기해년)과 1846년(병오년)의 대 교난 이후 피난 신자들이 남으로 남으로 옮겨와 경주, 울산, 언양, 기장 등지로 도 한편으로 밀양, 양산, 진영, 김해 등지로 산간 골짝에 피신해 살았던 것을 보면 그 당시 수로교통의 중심지요 상업도시로서 번성하였던 구포지방에 박해가 누그러지자 생업을 찾아 옮겨 옴직도 한 것이다.
 

 

2. 공소 시절

pic_0101201.jpg음정골과 숙등 등지에서 교우들이 모여 공소예절을 함께 지내고 공소회장집이 공소가 되었다.
윤신술(말지나)이 영세를 받을 때는 대리공소에서 받았고(1910~1915) 그 동생들 고인 윤흥술(아나타시아) 과 필술(루치아)은 숙등공소에서 영세를 받았으니 김윤서는 1910~1915년까지 대리에서 회장을 지냈고 그 이후는 이기봉(야고보)이 공소회장을 맡으면서 공소자리는 숙등으로 옮겨지고, 이기봉 회장이 돌아가신 뒤 그 아들 이상만(요한)이 이어 받아온 것이다.
구포공소에 관한 기록은 범일동 성당 소속의 공소일 때 신자들 현황이 있는데 맨 처음이 1932년도의 신자수 44명 수계 신자수 11명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서양신부가 여러 공소들을 두루 다녔는데 범일동 주임인 마리오 쥬리앙(권유량) 신부가 봄, 가을 판공성사를 주러 왔을 때는 그 당시로서는 날쌘 자가용 택시격인 조랑말을 타고 왔다.
신부는 하루 밤을 지내면서 온갖 이야기들을 신자들에게 전해주었으며 신부를 맞게 되는 공소에서는 모든 경비를 공동으로 부담하여 이불을 씻는 등 준비에 바빴다.
이 때 시골의 화장실 등 여러 가지 불편한 시설로 공소를 순방하는 서양신부의 고초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pic_0101202.jpg1945년 해방을 맞아 일본에서 귀환해 온 동포들 중에 교우가 있었는데 이 분들이 구포 연동에 자리 잡고 살게 되었다.
연동에서는 김 막달레나, 김 안나, 서 요한(고인) 등 가족이 친척지간으로 김 안나 집에서 공소예절을 지냈다.
진영본당에서 전교회장을 하던 윤 말지나가 구포에 와서는 숙등과 서로 연결이 되었다.
그리하여 한데 뭉쳐서 교세를 늘릴 것을 의논하고 우선 제일 시급한 공소건물 매입 방법을 연구하였다.
이상만(요한) 공소회장은 대구교구 서정길 주교를 찾아가 공소건물 구입자금을 호소하는 한편 진영본당 정요한 신부에게 구입방안을 강구하였다.
윤 말지나, 김 막달레나(고인) 등도 진영본당 정 요한 신부를 찾아가 애걸을 하였다.
구포에 와 살던 한의사인 심상태(베드로)도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현 구포1동 453의 1번지 배동명(야고보) 댁의 대지 2백여 평 건평 40평의 기와집을 매입하게 되었다.

매입자금 : 대구교구 지원금
진영성당 협조금, 교우헌금(심상태 씨 등)

이리하여 공소건물이 마련되자 흩어져 있던 교우들이 모여들어 1957년경 김 요셉 신부(교구청 관리국장)가 이곳에 와 2~3차 미사를 집전해 보니 50~60명의 교우가 모인 것을 보고 본당 승격을 부산교구 최재선(요한) 주교에게 청언, 1958년 5월 31일 범일동 성당 유봉운(야고보) 신부를 파견 주임신부로 명을 내리니 천주교 구포성당이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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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본당 관할 구역 file 루카 2017.02.11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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