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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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듣기 : https://youtu.be/DTR7sO2Vr_E


 

오늘 복음을 여는 것은 베드로의 질문입니다. 평화가 깨어지는 이유 곧 균형이 무너지는 이유는 누군가의 잘못에서 시작됩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까지는 못지켜도 서로에게 잘못이 없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평화는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 순서와 상관 없이 서로를 존중한다고 말할 수도 있고 예의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 균형을 깨뜨리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것도 가장 친밀했던 이가 잘못을 하면 말입니다. 
 

한 사람은 용서를 구해야 하고 또 한 사람은 용서를 해 주어야 합니다. 물론 이 조차 '해 줄수'도 또 '안 해 줄수'도 있습니다. 빈다고 다 용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용서의 가치를 알고 있고, 그래서 용서를 생각하는 좋은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우리의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이 어려운 주제에 대해 '무조건'이라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용서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이 갈림길에 섰던 한 사람의 이야기로 베드로에게 전해집니다.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등장하는 종의 삶은 우리와 별 다를 것 없는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살기 위해 빚도 지고 열심히 일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 중 자신이 빚진 왕의 것을 갚아야 하는 지경에서 그는 가족을 팔아서라도 빚을 갚으라는 왕에게 간청을 합니다. 그리고 왕의 탕감을 받습니다. 그의 간절함과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을 헤아린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간절함이 자신에게는 누군가에게 원한처럼 작용합니다. 왕에게 탕감 받은 그에게 빚에대한 권리가 생기자 그는 벗의 멱살을 잡고 그를 가두어 버립니다. 친구의 간청을 물리치는 그의 모습은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또 한 편으로는 괘씸하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당연히 이 종의 악함을 나무라고 있고, 그가 왕에게 용서받은 것을 잊어 버렸음을 지적하며 그의 지난 빚까지 모두 되살아남을 알려줍니다. 
 

종의 처지를 헤아려 봅니다. 그저 반성하는 것이 우리의 같은 결론이겠지만 한 편으로 이 종은 억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왕 앞에서 보였던 모든 처지가 그의 기준에는 독함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는 인정사정 없이 더 열심히 세상을 살아야 할 것으로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왕의 자비보다 그의 독함에 더 가까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이야기가 일흔 일곱번이라도 계속되어야 할 용서의 근본이라 하십니다. 우리에게 누군가가 잘못했을 때 우리에겐 용서의 권리가 생깁니다. 평등하고 평화롭던 관계가 끊어지고 우리는 원하지 않는 채무자와 채권자가 되어 버립니다. 그럴 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잘못으로 인해 우리가 전혀 원하지 않는 관계로 향한다는 것을 재빨리 깨달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잘못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평생 차별을 두고 그 사람과 살 것인가? 아니면 그는 여전히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두고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잘못이든 관계에 상처를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때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우리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그 때 주님은 우리가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의 삶을 위해 우리는 하느님을 찾고 약속을 합니다. 때로 그 약속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이며 많은 것이 걸려있는 무모한 내기일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헤아려 용서와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그분께 그리고 세상에 새겨 놓은 상처들은 그대로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여러번 다시 시작하며 살아갑니다. 


 

하느님의 용서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깨지 않으시려는 당신의 사랑이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을 닮아 살아가는 것, 곧 우리의 거룩함은 하느님의 그 사랑을 본받음으로 가능한 가치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를 청하기 전에 용서하며 기다리는 하느님의 마음을 현실에서 헤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의 삶은 길에서 만난 우리에게 빚진 형제가 더 많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또 어떻게 살아가는지 꼭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사랑스런 모습을 잃지 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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