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묵상 듣기 : https://youtu.be/J0k8tgUdzZg
율법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 전해진 하느님의 말씀이자 규율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어떤 이가 임금이 되더라도 그가 완전한 통치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모든 백성이 하느님의 말씀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율법은 하느님, 곧 신으로부터 내려진 ‘절대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발견되는 율법의 내용은 늘 ‘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고, 또 하지 말아야 하고,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거나, 그 반대이면 죄인이 되는 것이 이스라엘 율법의 느낌입니다. 물론 그 책임은 하느님의 무서운 심판이라는 것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셨던 시대의 이스라엘 역시 율법에 충실한 이가 의인이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의인과 죄인으로 나뉘었고 의인들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떳떳한 처지를 증언하고 죄인을 하대하고 업신여기는 것이 의로움을 더욱 빛나게 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바리사이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율법을 준수하며 살아온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도 스승의 자리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묻는 질문은 궁금증이 아니라 시험인 셈입니다. 그들이 주님께 물은 것은 다름 아닌 ‘율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의로움과 죄의 기준이었던 율법은 예수님의 대답으로 인해 가려져 있던 진실이 드러납니다.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 곧 모든 율법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달려 있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전히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두고 죄를 기준으로 사는 듯한 모습이 있습니다. 심판을 이야기하며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고만 강조합니다. 고해소는 죄를 용서 받는 장소만으로 한정 되고 이 모든 것이 사랑하라는 하느님 말씀을 위해 전해졌음을 알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자주 봅니다. 사랑하며 살아야 하고, 그 사랑을 어렵게 하는 우리의 약함을 알려주신 하느님이십니다.
죄를 기준으로 의인이었던 바리사이들이 사두가이처럼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질문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위선을 들켜 버린 바리사이들. 그들 모두에게 가려진 하느님 말씀, 사랑하라는 것은 근본이자 내용이고, 목적이자 결과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