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묵상 듣기 : https://youtu.be/iPc4GI8sVc0


 

우리는 주일이면 성당을 찾습니다. 성당에 나와 함께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서입니다. 한 주간을 살고 그 마지막 날에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라 하루를 쉬어야 하는 안식일의 의미에 주님이 부활하신 구원의 날을 기억하며 그 날 함께 모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빵을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는 기억과 약속의 하느님을 실제 몸과 피로 우리 안에 모시며 살아가는 한 몸 한 핏줄의 사람이기 때문에 주일에 만납니다.


 

사람들 사이에는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족쇄인 듯 느끼는 감정들도 있고, 의미를 모르겠다는 생각들도 많습니다. 하느님은 언제 어디나 계시니 나는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기특한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그래서 지루한 듯 또 무엇인가 답답해 보이는 성당을 찾지 않는다는 용기 있는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이미 하느님을 알지만 자신을 그렇게 살겠다며 다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떠나게 된 수많은 인파들은 예수님이 당신을 먹어야 한다는 말에 거북함을 느꼈습니다. 그냥 그 자신이 능력자면 그만이지 당신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과 당신과 함께 사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분의 능력은 무척 필요한 것이고 나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그분과 함께 그분을 통해, 그분 안에서 사는 것은 우리의 삶을 불편하게 하고 속박하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하느님을 믿는 것이 외면 받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잘못된 오해에서 빚어졌거나 아니면 가장 현실적인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가르침과 달리 보이는 사람들과 교회의 위선적 태도일 수도 있습니다.


 

복음에서처럼 사람들은 여전히 현실적인 이유로 하느님을 외면합니다. 하느님은 능력 있고 대단해야 하는데, 예수님이 그러하셨듯 우리 역시 현실에서는 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신앙적 선택과 실천은 세상에서 손해보고 이용당하며 핍박 받기 좋은 어리석은 것들 천지입니다. 눈에 보이는 거짓과 위선 앞에서도 정의롭게 사는 것은 보기는 좋고 생각으로는 옳으나 가장 어리석고 위험한 삶입니다. 그것이 맞다는 확신과 각오가 없으면 바보스런 일입니다.


 

아니면 그리스도를 우리와 전혀 다른 차원의 초월적인 영웅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면 진리를 저버린 사기꾼의 모습으로 사람들 눈에 비치게 마련입니다.


 

구원을 이야기하면서 현실을 떠난 이상적인 곳을 말하고 거기에 선택된 이들만의 세상을 그리고 사람들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그 소수가 되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하고 인류 대부분을 무시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야 합니다. 이를 보는 이들의 눈에 하느님이 사랑이실 리가 있습니까? 손에 칼을 들고 불을 휘두르는 하느님을 사랑이시라고 고백하는 것은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조차 부정해야 하는 일과 같습니다.


 

또한 교회가 보여주는 역사의 흐름과 형성된 모습은 결코 천국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평등과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시대의 흐름 속에 윗자리를 차지하게 된 역사에 따라 형성된 문화와 형식은 이미 사람의 신분을 위아래로 나눈 듯 보이기도 하고 시대의 모습 속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교회는 승리자의 교회이거나 실패자들의 위로. 둘 중 하나의 모습을 선택해왔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사랑의 하느님을 전한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오해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람들의 외면의 이유는 분명 이 안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는 지금까지 이 빵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의인들과 죄인들이 가득한 못난 이스라엘의 모습을 반복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때 예수님이 그랬듯 여전히 이 생명의 빵인 그리스도를 안에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당을 찾는 이유는 의미의 내용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선택이 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형식의 유무와 상관 없이 어떤 열정적인 신심과 상관 없이 실제 살아계신 예수님이 여전히 우리 안에 계시기에 우리는 위선을 들키게 마련이고, 현실적인 잘못된 선택이 죄가 되어 드러나게 됩니다. 어리석지만 여전히 그것이 하느님의 뜻임도 죄인들의 입을 통해 세상에 선포되기도 합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행복을 말하며 십자가는 누구도 지려 하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도 내일도 십자가를 지고 가시기에 우리는 그분의 사랑에서 떨어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모시고 하루를 그리고 인생을 살며 사람의 구원을 이루려 하시는 예수님의 계속 살아계심을 증언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선택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사랑하신 하느님의 뜻은 늘 한가지 이유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에게서 멀어지는 이유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걸 모르시는 하느님이 아니심에도 그분이 여기에 머무르시는 이유를 알아들어야 합니다. 집나간 아들에게도 아버지는 중요했고 모든 것을 다 지니고도 몰랐던 큰 아들에게도 아버지는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빵인 주님의 살을 먹는 우리는 바르게 보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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