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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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을 두고 예수님께 판단을 원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의로움이라면 정당한 몫을 이야기해주실 것이라는 사람의 기대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우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주 등장합니다. 이미 나와 있는 예수님의 대답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예수님을 세상이 만든 가치와 연결시키고 우리가 바라는 것을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으로 둔갑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면에서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이루는 사회의 여러 단면들 중 성공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돌리는 것이 그 대표적인 일이고, 그것으로 누군가는 하느님의 선물, 은총, 갚음 등의 표현을 쓰며 하느님의 재판과 중재의 결과로 설명하는 일도 자주 일어납니다. 

 
그것의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한 영향을 가져 옵니다. 그것을 이용하는 이에게는 더 없는 부와 명예, 또 여러 사람의 시샘과 부러움을 가져와 결과적으로 이를 이용하는 이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줍니다. 이것을 이용하는 것을 지혜라 한다면 이 지혜로운 이들이 성공하는 교회가 이곳 저곳에서 등장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이익을 하느님이 주시는 것으로 여기고 기도하고 애절하게 격려하고 위로하기를 반복합니다. 

 
그래서 형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말해 달라는 기도는 오늘도 어느 십자가 아래서든 계속됩니다. 이 기도는 주님을 곤란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이미 우리에게 그 몫이 당신의 심판도 역할도 아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그 모든 사회적 이익과 관계들은 하느님의 능력을 이용해 연결시키기에 주님의 사랑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가치입니다.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니 모든 것이 가능하시다는 말로 우리의 사적인 이익들을 청하고 기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이 왜 나쁜가?' 어차피 사람들이 원하는 간절한 청을 이야기하고 기도하는 것으로 교회는 부유해지고 그것으로 그가 바라는 일을 하느님이 해 주신다면 좋은 일이 아닌가하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묻고 싶습니다. 그런 일을 꾀하는 이들은 결국 부유함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 답도 이미 나와있습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그들의 말이 거짓이고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말하지만 실상은 그들은 일정부분 부를 거두게 됩니다. 그 이유는 사적인 이익을 기대하는 이들은 그만큼의 절실함으로 '정성'(?)을 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그렇게 기도해주시는 누군가가 자신의 주머니는 '빈 적이 없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유명하고 존경받는 성직자의 입에서 나온 이런 무서운 말은 놀랍게도 그리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창조주 하느님에게 재물이라는 것이 따로 필요할리 없지만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세상을 살면서도 하느님께 또 다시 그 모든 것을 누군가의 것으로 나누어 주시길 기대하는 어리석음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재물은 세상 사람들이 살면서 만들어 낸 삶의 도구이자 사회적 신분과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부터 하느님이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것도 또 당신에게 충실한 이에게 차별적으로 주신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생명을 중심으로 서로 함께 살았던 것이 전부였던 사랑스런 존재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이기적인 질서에 하느님께 손을 들어 달라는 일은 그만두어야 합니다. 그렇게 무엇인가를 가지려 하다 진짜 주인이신 하느님이 그것을 거두시면 우리는 어떤 입장에 설 수도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돈이 신앙이고, 돈이 복지이며, 돈이 행복이 되었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돈은 어떤 때는 권력이기도 했고, 명예이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것에 주님은 재판관도 중재인도 아니심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아무리 우리가 그것에 기대어 사는 삶이라 하더라도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우리 삶이 그것에 의해 구원으로 향하는 것도 또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말하면 답답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로 손가락질을 받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을 바꿀 수 없다면 그분의 말씀을 왜곡하는 일들은 피해야 합니다. 머리가 많이 아픕니다. 필요한 것이 그것이라면 그는 분명 그 재물이 모일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고 그것이 생겨도 그것 한 푼을 쓸 수 없는 처지에 빠질 것입니다. 사랑은 이래저래 절박해지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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