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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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본당의 판공이 지났습니다. 사순절에 비해 많은 분들이 왔고 판공의 시간도 늘어났습니다. 판공시간이 늘면 고해소를 찾은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이고 그 말은 곧 고백이 필요한 '죄인들'이 많다는 이야기인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고백을 미루고 빠뜨리는 이들이 많은게 걱정이지만 그래도 더 많이 고해소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창을 보며 시간을 가늠합니다. 오늘은 몇 시에 미사인지에 따라 몸을 일으키는 시간이 달라지지만 그럼에도 홀로 세워놓은 출근시간에는 되도록 방바닥과 거리를 두려 노력합니다. 사제에게 사람들은 '고생하시지요'라고 인사하는 것이 일상이지만 사제가 바쁘려면 꽤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특별한 기도를 하는 이에게는 그것조차 업무일지도 모르지만 기도는 일반 교우들도 성무일도를 바치는 것이 드문일이 아니라 그것도 사제의 일이라 말하기에는 그렇고 그러고 보면 성무집행의 시간은 하루 중 10분의 1도 되지 않은 날이 거의 모든 날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바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짊어진 짐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처럼 여겨지는 통에 이래저래 참 행복하게 지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표현의 원래 주인은 예수님이시고 그분은 이 대림절에 당신의 시작을위해 마련된 마굿간과 어느 동굴. 그리고 그곳의 구유에서 시작해 제단 위 높은 곳에 자리한 십자가 이 둘 사이에서 삶을 살았던 분입니다. 매일이 위기였고 위험했으며 사람들 사이에 피곤하고 눈길가는 곳마다 사랑을 베풀고 용서를 해야 했으며 뒤로 전해지는 비웃음과 비하의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거기에 맞서서 옳은 일을 말하고 죄인들과 함께 어울려 밥을 먹고 쉴 곳도 일정하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며 아침부터 밤까지 제자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것이 '바쁜 삶'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예수님이 짊어진 멍에와 짐의 몫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시대의 성직자들은 이 말씀 아래에 우리에게 놓여진 것들의 무게를 스스로 표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내 삶에도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은 있겠지만 그것이 지금 삶의 무게를 설명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받아든 짊은 우리의 원의와 하느님의 허락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우리는 주님의 편한 멍에와 가벼운 짐을 받아들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이라도 이 삶이 너무 힘겹다. 어렵다라고 말하면 우리에겐 걱정하고 기도하며 어떻게든 도우려 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나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버팀목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힘든가라고 말한다면 적어도 주님의 멍에와 짐을 놓고 말해야 하는데 그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느낌의 차이가 아니라 주님의 기준에서 모든 것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람은 주님의 기준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 느낌 내 기준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미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와 같습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그것은 주님의 짐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판공이 끝나고 내일 복음 묵상을 미루어 아침에 적고 있습니다. 작은 책상 하나. 가려진 천. 십자가. 촛불 하나. 실루엣으로 보이는 한 사람의 다가옴과 고백을 들으며 대림의 준비를 위한 이 기쁨의 걸음들이 끊어지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죄인이라서가 아니라 주님을 기다리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을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함께 하며 그들이 만들어 낸 죄의 고리를 끊어주고 하느님께 다시 이어주는 일. 그 일이 멍에라면 그것은 여전히 편한 일이고, 그것이 짐이라면 그 짐은 충분히 아직도 가볍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소리 없는 짐꾼들이 이 세상을 지금껏 지키고 있음을 기억하고 그들과 함께 주님의 멍에와 짐을 함께 지는 것이 어떤지 청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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