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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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한국 교회의 수호자이신 성모님께 붙여진 호칭은 그분의 '투명함'을 보여줍니다. 우리 교회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께 봉헌 한 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한국 교회의 시작을 생각하면 꽤 잘 어울리는 지향을 찾아 낸 것으로 보입니다. '자발적 교회'로 말해지는 우리는 스스로 하느님을 깨닫고 받아들인 조상들의 모습이 죄에 물듦이 없는 성모님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가 자랑하는 '자발적 교회'와 이후 선교사들에 의해 형성된 '교육된 교회'의 두 가지 역사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취하려 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닫는 일은 드물고 그저 훌륭한 조상을 두고 있다는 것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역사 속 훌륭한 위인이나 왕을 조상으로 두고 있음을 자랑하는 허세 많은 후손들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스스로 받아들였다고 말하는 것은 성당을 짓거나 성사를 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받아들였을 때 우리가 양반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하느님을 처음 받아들인 이들이 자신들이 누리던 신분제도를 사람들 사이에서 분리해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변화였을 겁니다. 양반이 받아들였으나 세상 모든 이가 하느님을 믿게 되었다면 그것은 양반의 자기 포기가 우선되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당파싸움의 결과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혹세무민'의 죄를 물었다는 것은 하느님을 믿는 신앙이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교리를 가지고 있음을 세상이 알아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특권을 놓고 같은 사람으로서 한 하느님을 믿는 선택을 했던 선조들의 후예라는 말입니다. 


이제 신분이 재물로 정해지는 시대라면 우리가 이 신앙을 자랑하는 것은 우리 역시 이 구조를 허물고 모두를 존중하는 세상을 살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하느님을 뜻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받아들이는 선조들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것을 생각하기에 우리는 이미 서양에서 형성된 구조화된 교회를 받아들였고 교육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같은 존중으로 대하기 보다 교리로 형성되어진 굳건한 전통과 규칙 속에서 각자의 위치를 지키는 식의 신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일방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하기에 우리 선조의 신앙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의 깨달음이었고, 선교사들은 목숨을 걸고 이 땅에 와서 신앙을 전했으니 그 가치들은 모두 소중한 가치인 게 맞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말씀 앞에 자신을 봉헌하고 그 뜻을 지키고 품었던 성모님의 모습을 닮은 우리 조상들의 전통을 우리가 본받지 못함은 안타깝고 애가 타는 부분입니다. 


 

투명하다는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까지도 포함하는 것이 투명함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이의 원칙일 수 있는 견고한 투명함을 우리 안에서 되살렸으면 좋겠습니다. 대림절 안에 맞이하는 한국 교회 수호자 축일은 이 성탄에 우리가 마굿간으로 내몰아 버린 구세주의 가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가르침이 되어 줍니다. 


 

사람의 가치를 하느님 안에서 발견한 우리 교회. 그 교회가 조상의 참 모범을 따라 우리 교회의 모습으로 세상을 정화하고 거룩하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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