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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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읽고 그 내용을 묵상하는데 정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복음이 주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읽혀져야 한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복음 속 등장하는 인물이나 이야기들이 우리의 반성이나 회개를 끌어내는 일도 있지만 그럼에도 복음은 예수님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위해 적혔고, 또 예수님은 말씀과 행동으로 하느님을 우리에게 전하시려 하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읽으면서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반성을 하는 것은 복음을 적은 이유도 우리가 복음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물같은 가르침과도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오늘 복음의 이야기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로 알려진 바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자비로우신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어 집니다. 그럼에도 우리 눈을 사로잡는 것은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보다는 두 아들 사이에서 벌어진 내용들입니다. 


 

오늘은 이야기의 전부보다 이 이야기가 시작된 지점과 묵상을 불러내는 말 마디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이 이야기의 모든 내용들이 연결되는 것은 이야기의 시작이 전해주는 배경입니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은 세리들과 죄인들을 바라보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시선 안에 계십니다. 그들은 율법을 모두 지킬만큼 하느님께 충실한 사람이었고, 어쩌면 율법 때문에 방종한 삶을 포기한 채 평생을 사는 다소 답답하고 억울한 인생들입니다. 


 

이 배경을 생각하면 이 이야기는 작은 아들의 회개나 아버지의 자비하심이 아니라 오히려 큰 아들에 대한 가르침으로 보아야 합니다. 
 

작은 아들은 자신의 몫을 생각했고, 자신을 위해 미래의 몫을 챙겨 길을 떠납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잘못은 아버지나 형을 떠난 것입니다. 아버지보다 자신이 더 커보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나 우리가 쉽게 극복하기 힘든 유혹입니다. 자신의 밖의 유혹은 견디고 참고 거절할 수 있지만 자신 안에서 등장하는 이기심이나 욕심은 거절하기에 너무 절실하고 사로잡히면 전혀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 아니 보여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됩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을 금세 탕진해버립니다. 자신의 것이라 여겼지만 결국 그것이 자신을 거쳐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본 그는 빈털터리가 되었고, 결국 부정한 짐승을 키우는 일에까지 손을 대야 먹고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런 후 그가 생각한 것은 회개라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생각이었습니다. 그가 부러워한 것은 자신 보다 나은 처지에 있던 아버지의 품꾼들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는 그 순간조차 자신을 위해 선택을 한 셈입니다. 


 

그런 아들이 집에 돌아온 것을 두고 아버지는 떠들썩하게 잔치를 벌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큰 아들이 등장합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후한 처사가 부당하다 생각합니다. 작은 아들은 자신의 몫을 다 써버렸고 벌을 받아도 시원찮은 녀석입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작은 아들을 여전히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다해 진심으로 사랑해줍니다. 


 

그리고 큰 아들을 설득하며 아버지는 큰 아들을 이해하는 말이 아닌 그를 타이르고 가르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냅니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이것이 아버지의 결론이었습니다. 죄인이요, 어리석은 동생이 돌아왔음을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죄인과 어울리는 예수님은 평생을 의인으로 살아온 이들에게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중입니다. 그렇게 어울려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요 아들이신 예수님의 진심이니 그렇게 사람을 구분하고 차별하며 의인으로 사는 것을 자랑스레 살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함께 기다리고 사랑하는 것으로 아버지를 따르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미사 참례를 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큰 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곁에 비어 있는 자리의 사람들은 어딘가에 있을 작은 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들이 이 자리를지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더 중요했기 때문일 겁니다. 어떤 이유로든 우리 곁을 비운 그들의 자리를 우리는 채우고 있고, 그들이 버린 시간을 인내하듯 수고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성공하기 위해 이 자리를 비웠고, 우리의 생각과 달리 그 목적을 달성했을 가능성도 큽니다. 같은 시간 자신을 위해 투자하고 노력한다면 세상은 그 노력에 답을 해 주는 것이 이치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그 안에 머무는 것은 하느님이 보상을 주시고 은총을 주시기 때문이 아니라 그래야 하고 그렇게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면 세상이 주는 것과는 거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사실 그것을 바랄지도 모르지만 아버지의 세상이 우리의 것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나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래서 큰 아들처럼 하느님의 상은 받아 본 적도 별로 없습니다. 혹시 나를 칭찬하는 이들은 있을지 모르지만 별로 달라질 것 없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집을 나간 작은 아들을 매일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혹여 그 아들의 모습이 보일라치면 먼저 달려가 그를 안아 사랑하십니다. 그것이 억울하고 싫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는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이고, 우리는 그분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작은 아들이라 자신을 낮추려 하기보다 큰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 풀어내려 노력하는 것이 오늘을 이해하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아버지의 눈으로 그 아들의 마음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뜻을 함께 한 아들이 우리를 위해 내민 십자가를 이해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사순절의 중심에 아버지의 사랑은 십자가를 설명해주는 가르침입니다. 먼저 다가가고 벌이 아닌 사랑으로 감사 안아 그 아들을 다시 품는 것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의 선택이었습니다. 고통이 아니라 이해이고 수난이 아니라 감당이라 말해야 하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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