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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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루가 다 넘어간 시간에 복음 묵상을 합니다. 하루가 시작되는 저녁에 묵상에 들어가야 하지만 이미 다 지난 하루를 두고 복음을 미룬 숙제 하듯 보는 것도 나름대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듯 해서 좋아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느님 앞에 자신을 의롭다고 자신하는 사람.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사람됨의 기준과 자신 외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해보는 복음의 내용이 흘러갑니다. 그의 모습이 좋아보일리는 없지만 그중 한 부분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복음은 정작 세리의 기도를 향해 있지만 바리사이의 모습에서 멈추어 다음으로 넘어가지지 않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바리사이와 세리는 율법학자와 죄인의 관계처럼 늘 붙어 등장하는 이들입니다. 이 둘은 서로 상반되는 삶을 살았고 하느님 앞에서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바리사이는 모든 것이 옳고 의로운 이이고 세리는 그 존재 자체가 죄인인 너무 다른 존재들입니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바리사이의 모습은 그 자세부터 이 사람을 드러냅니다. 꼿꼿이 선 자세와 스스로에게 들리도록 혼자말을 합니다. 자신의 의로움과 선함을 증언하고 하느님께도 잘하는 그는 자신의 기도 속에 하느님께 말씀드립니다. 이 말 한마디 때문에 세리의 기도로 넘어가질 못합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의 기도를 보고 어떤 평가를 해도 좋지만 그의 기도 중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의 부분이 많은 생각을 가져오게 합니다. 적어도 그의 기도는 진실했을 것이고, 그는 진심으로 하느님께 이 감사를 드렸을 겁니다. 


 

그런데 이 기도가 진지하다는 것과 그의 진심이라는 것이 무서움을 가져옵니다. 그는 정말 그의 무죄함과 그의 정성을 통해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그 감사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죄인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그는 정말 다른 죄인들 때문에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들 때문에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도 없는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그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고 있으며 그 이유로 하느님의 은혜와 은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그가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모습이 가져올 파장은 우리가 고쳐줄 수 없는 수준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너무 많은 것을 가졌고, 너무 많은 이들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감사가 너무 무섭고 그의 진심이 보여줄 현실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보입니다. 


 

복음은 무심한 듯 세리의 기도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세리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합니다. 현실에서 자신을 높이는 이는 더 높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소외당하거나 그래서 무시를 당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이의 반성과 묵상이 깊어질 수록 세상은 그를 감추어 버리고 그의 부족함을 비웃고 그 덕분에 하느님께 감사를 표하는 이들이 이끄는 대로 세상이 바뀌어가는 것을 너무 자주 보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에 전율 같은 공포를 느끼며 그의 기도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해야 함을 느낍니다. 그의 꼿꼿이 선 모습과 그의 감사를 하느님이 받으실리 없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그리고 드러나게 말해야 할 때에 살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 복음으로 미사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허무하고 허전하며 좌절하는 밤입니다. 내가 말해야 하는 것은 내일의 복음이고 자비로운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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