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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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로 들어와 있는 우리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심을 듣습니다. '반드시'라는 말씀이 가슴에 걸리는 복음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죽음으로 내 몰았던 사람이 드러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하느님을 전해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배척을 받았다 하심은 예수님이 하느님과의 연관성을 부정당하셨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하느님의 백성에게 부정당하고 있음은 그들이 지금까지 가르쳤고 이어왔던 하느님의 뜻을 잘못 알고 있었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 그것을 현실에서 거부했다는 뜻이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당신의 죽음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질 것임을 아시는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를 사람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죽음을 피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당신과 같은 길을 걸으라 하십니다. 곧당신의 길은 틀리지 않았고 당신의 길이 곧 하느님이 원하시는 우리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가 잘못되었다고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그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는 것은 당신의 삶이 틀리지 않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도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을 동시에 나타냅니다. 곧 '예수님처럼 살면 죽을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무서운 이야기로 들리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물러섬 없이 우리에게 당신의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참 생명의 길이라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현실의 권력자들에 맞서는 삶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렵다고 말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백성의 지도자들이 이야기하는 하느님과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율법이 훨씬 더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려 하지만 항상 그들은 백성들의 머리 위에 있어서 그들을 따라하기란 가능하지 않은 정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은 항상 백성들 안에 있었고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가치였기에 주님의 가르침을 어렵다고 말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그 가르침이 우리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가의 문제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의 뜻이 맞고 진리라는 것은 알지만 그것 때문에 목숨을 건다는 것에 우리는 주저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목숨을 걸지 않는다면 우리는 권력을 지닌 사람의 눈 밖에 날 일도 없으니 목숨을 건질 뿐만 아니라 그런대로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온 세상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살려고 온 세상을 얻어온 사람의 시도가 결국 그 생명을 완전히 잃게 되는 일이라 말씀하십니다. 고민스럽지만 그렇다고 예수님의 이야기에 고개를 저을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결국 사람의 진짜 생명은 하느님에게 달려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목숨은 물론 영원한 생명까지 우리의 생명은 결국 하느님에서 시작과 마침이 주어져 있음은 우리가 재의 수요일에 마음에 새긴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걸어야 할 십자가는 우리가 말하는 고통의 길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며 감내하는 모든 수고와 땀흘려 일한 보람이 바로 십자가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수고와 사랑은 모두의 기쁨이어야 하지만 그것을 거절하는 대신 세상을 얻으려 한 이들이 만든 논리와 편견 안에서 부당한 고통을 당하는 것이 세상이 십자가를 보는 시각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이지만 동시에 십자가로 향하는 삶은 모두가 행복한 삶입니다. 내가 목숨을 걸어 지켜야 할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고 고통의 댓가로 받는 영광을 위한 조건이 십자가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목숨과 맞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님은 이미 우리에게 당신의 생명을 주신 분임을 안다면 어리석은 계산은 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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