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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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기적은 모든 이를 열광하게 합니다. 기적이 일어나면 그 의미를 연구하고 묵상하며 아주 많은 수식어들이 붙습니다. 사천명을 먹이신 기적은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처럼 예수님의 대표적인 기적 중 하나입니다. 성체 성사를 미리 보여주는 듯 여겨지는 기적입니다. 빵 일곱개와 물고기 조금으로 사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으니 놀라울 뿐입니다. 


 

그런데 사천명을 먹이신 기적은 장정만도 오천명이 넘었던 기적에 비해 그 규모가 적기 때문인지 또 도구로 사용된 빵과 물고기가 조금 더 많았기 때문에 비중이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는 듯 보입니다. 그저 '비슷한 기적'으로 생각됩니다. 


 

실제로 비슷해 보이는 이 기적은 그 비슷함 때문에 우리가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힌트 하나를 전해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 무렵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예수님이 터무니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빵과 물고기를 나누고자 하신 이유가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그것이 가능한지 어떤지 또 우리가 가진 것이 얼마인지를 생각하기 전 예수님이 백성들에게 가지신 생각과 걱정이 이 기적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도 그 때도 제자들의 태도는 같았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이르셨다.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오늘 제자들은 돈 걱정 대신 누가 그들을 먹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을 합니다. '누가'가 그 질문이었다면 예수님은 그것을 해야 할 몫이 다름아닌 그들의 배고픔을 걱정하는 이에게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곧 너무 단순한 말이지만 이 기적은 '배고프겠다...'는 걱정에서 시작되었고 우선 가진 것이라도 모두 아끼지 않고 나누는 것에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적에서 그 결과가 놀라움이지만 그 기적이 일어난 이유는 거창한 것이 아닐 수 있음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기적의 결과를 중심으로 보는 하느님은 '능력의 하느님'이지만 그 이유를 보면 '사랑의 하느님'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천명이 먹은 기적은 대단해 보이는 결과물이지만 예수님의 의도는 그들이 돌아가야 하는 먼 길과 사흘을 걸어온 허기짐을 채워주는 것이었습니다. 곧 한 사람 한 사람의 배고픔이 걱정된 주님의 마음이었기에 그 수를 헤아려 결과로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어리석은 태도일 수도 있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기적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이 기적들이 하나같이 보여주는 허무한 결과는 예수님의 진심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줍니다. 기적 자체가 어떤 의미가 있었다면 예수님은 그것에 대한 설명을 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욱 예수님께 모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일이 끝나고 사람들을 돌려보내시는데 바쁘십니다. 그리고 당신은 다시 길을 떠나십니다. 


 

예수님에 대해 그 자리에 머물러 이리저리 떠드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예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빵과 물고기의 수를 기억하며 기적에 미련을 두는 이에게 예수님은 그의 허기진 한 끼의 식사를 걱정하셨던 '그저 착한 주님'이셨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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