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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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마귀를 쫓아내시는 장면을 성경은 자주 보여줍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그 마귀가 자신이 깃들여 괴롭히던 곳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쫓겨나게 됨을 봅니다. 오늘 복음 속에는 예수님 앞에 이방인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데리고 오지 못한 자신의 딸에 대해 예수님께 간청을 드립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 결국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이 곧바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분 발 앞에 엎드렸다. 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하였다. 


 

예수님이 오신 곳은 이스라엘이고 그 이스라엘에 하신 약속과 그를 통한 구원의 메세지가 주님이 오신 이유이지만 그분의 소문은 먼 곳으로도 퍼졌고 예수님은 어딜 가나 사람들이 찾아가는 유명인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에 충실하고자 하셨고 그래서 늘 주님의 자리는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이 말씀을 들려주시고 손을 내어 주시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은 예수님에게도 이방인이었던 셈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기에 믿기 어려울만큼 충격적인 이야기이지만 엄연한 사실로 이 여인에게 당신의 뜻을 밝히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모든 것에 우선할 수 없는 이방인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 조차 확인하기 쉽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믿는 것이 하느님이신지 아니면 수많은 신들 중 하나인지 모르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베푼다는 것은 당사자들조차도 이것을 해석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벽을 허물어 버리는 어머니의 말이 주님께 전해집니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예수님은 빵이라는 '먹을 것'으로 자식들부터라는 순서를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의 대답은 '배고픔'의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사람이건 강아지이건 배고픔을 느끼는것에 필요한 것은 같은 빵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내가 누군지보다 내 딸에게 필요한 그 빵을 달라고 어머니는 딸을 위해 애를 씁니다. 


 

배고픈 이, 고통받는 이, 아픈 이에게 필요한 빵은 하나의 가치이고, 그 가치는 하느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은 그 자체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사랑의 고백이자 신앙 고백입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그 여자가 집에 가서 보니, 아이는 침상에 누워 있고 마귀는 나가고 없었다.


 

마귀를 나가게 한 것은 예수님이실까요? 아니면 이 어머니의 마음과 호소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식대로 해석하는 것이 어긋난 것이 아니라면 "네가 그렇게 말하니"로 시작하는 말은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마귀는 아이에게 머물 수 없어졌음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확인해주신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에 그처럼 믿음을 가진 어머니라면 그 딸은 어떤 경우에도 이 어머니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사랑하는 이에게 오래 머물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닮아 있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가치를 그대로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놀라심과 기쁨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예수님이 하실 일이 없으셨던 몇 안되는 이야기일 겁니다. 예수님은 소녀를 보시지도 않았고 떼를 쓰듯 당신 앞을 지키는 한 이방인을 보고 계셨지만 결국 그 이방인이 어머니가 되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드러나자 그가 가진 믿음으로 그가 바란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됨을 증언해 주셨습니다. 


 

결국 능력이 아닌 사랑이 모든 것의 열쇠라는 것입니다. 딸을 생각하는 어머니, 그래서 하느님을 온전한 사랑으로 알아들은 그 마음이 하늘을 열었고 우선 순위는 아무런 가치 없이 그저쏟아져 내리는 은총이 되었습니다. 


 

생명의 빵은 원래 모든 이를 위해 주어진 것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누구는 사람이고, 누구는 강아지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빵 하나의 생명임은 틀림 없습니다. 세상은 그 생명의 빵으로 원래의 가치를 찾는 중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구원의 가치입니다. 주님 앞에 섰던 그 어머니처럼 우리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모시는 생명의 빵의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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