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998148485D50AA33256F33




 

성전세에 관한 이야기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는 말이 등장한 복음만큼 많은 오해를 불러 오는 내용입니다. 종교과 사회의 관계로 연결시켜 이야기하거나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라는 말로 이상한 말들을 양산해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가 '성전'으로 여기는 곳에 대해 좀 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주님은 이 일을 겪기 전 당신의 죽음을 이야기하셨고, 그것은 다름아닌 당신의 집인 성전에서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스라엘이 벌인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에게 성전세를 요구하는 이들, 그들이 몰랐기에 잘못이라 말할 수는 없으나 그들은 같은 성전에 하느님을 섬기는 이를 아무런 죄도 없이 죽음으로 내 몰았습니다. 


 

우리의 성전은 여전히 하느님을 섬기는 자리로 서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며 주님을 모시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복음 선포의 실제를 경험합니다. 또한 그 속에서 우리는 늘 하느님의 말씀을 접하기도 합니다. 


 

2천년 전의 성전과 우리의 성전은 그런 점에서 같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공통점이 그리스도에게 같은 길로 비춰지진 않을까 걱정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2천년 전 복음 속에 발견되는 성전은 어떤 모습입니까? 하느님은 누구보다 사랑한다 말하고 정성을 다해 성전을 지어올리고 제사를 올리던 백성들은 그들의 실제의 삶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성전세는 성전을 유지하기 위해 중요하지만 정말 성전의의미는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고 따르는 이들의 삶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잊은 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 성전은 성전 밖으로는 한 걸음도 나서지 못하는 하느님의 감옥처럼 되어 버렸고 그 성전을 아버지의 집이라 말했던 주님은 어른이 되어 그 성전을 지킨다는 이들의 음모로 현실에선 죽음 앞에 서야 했습니다. 


 

성전은 하느님 백성의 정성으로 세워졌고 성전에서 하느님을 믿는 이들의 삶을 드러내는 소중한 자리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한 분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샘물처럼 세상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성전에서부터 물줄기를 끊어 버리고 그 밖에서는 자신을 위해서만 산다면 그것은 주님을 감추어두고자신의 소유물로 삼길 원하는 것과 다를 바 없고 결국 성전 밖에서 하느님이 누구의 소유냐를 두고 싸우는 일을 그치지 않게 됩니다. 


 

서로 사랑해야 할 이들이 자신의 자리를 두고 싸우는 것으로 하느님을 성전 안으로 몰아 세우고는 자신들과 다른 삶을 인정하지 않는 폭력적인 상태로 힘 없는 의인과 선인을 치워버리려 한 것이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2천년 전 성전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무수한 핏줄처럼 곳곳으로 퍼져 존재하는 우리의 성전들은 여전히 교우들의 정성으로 세워지고 유지됩니다. 그곳에서 주님의 식사와 우리의 제사가 이루어지고 성사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매번 우리는 성전 밖으로 파견됩니다. 우리가 또 다른 성전이 되어 말입니다. 


 

그곳에 파견되어 그 성전에서 머무는 사람은 파견된 이들의 삶을 궁금해하지만 그것은 잘 확인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일을 생각하면 분명 우리는 그 밖에서의 삶에 따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도 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들어 낼 수도 있는 사람들입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그 몫의 책임이 없겠지만 교우들과 그들의 사제인 저는 이 결과를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자리입니다.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말씀은 변화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기에 수천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 내용이 바뀐 적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것조차 구약의 하느님의 말씀에서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건물이 낡아도 그곳에 파견되는 이들이 수없이 바뀐다 해도 그 가치는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 성전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십자가는 우리의 삶에 의해 전혀 다른 의미로 세상에 전해질 수 있음을 꼭 생각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 성전이 주님의 감옥이 되거나 혹은 추방된 주님이 전혀 다른 곳에서 우리로 인해 죽음을 다시 경험하시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사랑도 구원도 우리가 이기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닙니다. 성전을 하느님의 집이자 우리의 심장이 되게 하는 방법은 우리가 삶에서 이 성전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으로 가능해집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모이는 하느님의 집과 하느님께 위로만 바라며 몰려드는 기도의 집은 전혀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1 2020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별지기 2020.01.06 4
210 2020년 1월 5일 주님 공현 대축일 별지기 2020.01.04 7
209 2020년 1월 4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별지기 2020.01.03 6
208 2020년 1월 3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별지기 2020.01.02 3
207 2020년 1월 2일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별지기 2020.01.01 3
206 2020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별지기 2019.12.31 9
205 2019년 12월 31일 성탄 팔일축제 제7일 별지기 2019.12.30 8
204 2019년 12월 30일 성탄 팔일 축제 제6일 별지기 2019.12.29 5
203 2019년 12월 29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별지기 2019.12.29 5
202 2019년 12월 28일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별지기 2019.12.27 3
201 2019년 12월 27일 성 요한 복음 사가 축일 별지기 2019.12.27 3
200 2019년 12월 20일 별지기 2019.12.19 7
199 2019년 12월 19일 별지기 2019.12.19 1
198 2019년 12월 18일 별지기 2019.12.18 5
197 2019년 12월 17일 별지기 2019.12.16 8
196 2019년 12월 16일 대림 제3주간 월요일 별지기 2019.12.16 5
195 2019년 12월 15일 대림 제3주일 별지기 2019.12.15 7
194 2019년 12월 14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별지기 2019.12.14 8
193 2019년 12월 13일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별지기 2019.12.13 7
192 2019년 12월 12일 대림 제2주간 목요일 별지기 2019.12.12 8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19 Next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