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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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 화요일입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예수님의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는 예수님의 마지막이 참 많이 외로우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적은 이는 예수님의 마음을 '산란하시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안팎으로 어떤 것에도 당신을 전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에는 당신을 없앨 계획이 완성되어 있었고 당신의 제자들 가운데에는 당신을 팔아넘길 이가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주님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고 거기에서 늘 하던 것처럼 제자들과 함께 성전에서 또 길에서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에 주님을 이해하고 그분의 말씀을 바로 알아듣는 이들은 없었습니다. 


 

그때에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였다.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이 장면은 다름아닌 '최후의 만찬'입니다. 마지막 날이 시작될 때 예수님이 준비하신 것은 제자들과의 식사였습니다. 물론 예수님만 아시는 마지막 식사였습니다. 수 없이 예고를 하셨지만 제자들은 그 사실에 슬퍼만 할 뿐 그 일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 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그 일을 시작하게 될 유다가 자신의 할 일을 알고 있었고, 예수님은 그 시간 앞에 계심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도 제자들은 전혀 짐작을 못합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제자가 물었고, 예수님이 대답하셨지만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적신 빵을 들었던 유다를 보고서도 이것이 무엇을의미하는지 알지 못한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씻겨진 발의 느낌에 기뻐했을 것이고, 달라진 예수님의 태도가 불안하긴 해도 '또 무거운 이야기시구나' 정도를 짐작했을 뿐입니다.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베드로가 다시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예수님의 모든 것에 관심이 많았던 제자 베드로도 그 자리에 있었고, 그는 예수님을 배반할 사람을 궁금해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실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주님의 심각한 말씀에 자신의 충실함을 고백합니다. 주님을 따르겠다는 이야기, 그리고 주님을 위해 목숨을 내 놓겠다는 이야기. 그의 말은 아마 사실이었을 겁니다. 그의 성격을 보면 그가 거짓을 말하고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행동을 알고 있고 또 기억합니다. 우리의 교황이 저지른 큰 잘못을 누구보다 그로부터 지켜진 교회의 신자인 우리들은 모두 기억합니다. 그가 살기 위해 또 두려워서그랬다고 말하지만 그의 행동은 2천년이 지난 후에도 잊혀지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 되어 있습니다. 
 

당신과 늘 함께 했고, 당신을 위해 이처럼 훌륭한 생각을 했던 베드로조차 당신을 버리는 시간을 이미 알고 계신 예수님의 산란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구하러 오셨으나 아버지의 메세지가 전달되지 않는 세상을 만나셨고, 당신이 함께 한 이들도 당신보다 돈을 선택하고 또 목숨을 구하기 위해 생명의 당신을 모른 척하고 마는 이 상황에 앞뒤가 막힌 채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뿐이셨을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은 넋두리가 아닌 '기억하게 하기 위한 말씀'으로 보아야 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당신의 말씀을 기억하고 또 그 때의 상황들을 기억합니다. 기억은 되돌려지진 않지만 그래서 중요합니다. 몰라서 더 안타까운 제자들의 모습과 알면서도 그 길을 가야하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과 우리의 모습을 깨닫습니다. 


 

유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은 이 때 오직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고 알고 있었던 단 한사람 유다를 더욱 기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다는 예수님의 직접적인 죽음의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죽음의 과정에서 그는 어떤 작용도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의 이 행동이 예수님을 죽게 했음을 알고 그는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는 손에 쥔 은전 서른닢이 그의 행동으로 얻는 것으로 알았으나 그것이 스승의 목숨 값이 될지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안타까움도 그래서 더 컸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모르고 자신을 위한 선택으로 모든 것에서 면제를 받기를 원하는 이들이 세상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것을 몰랐던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죽였던 이들은 한 사람의 생명을 희생시켜 많은 사람들과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려 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는 스승에게 등을 돌리는 댓가를 원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과 배신의 댓가는 하느님을 죽이고 돈 한줌을 쥐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숭고한 결정이었고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 말할 겁니다. 그것이 세상이고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람들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하느님도 예수님도 그렇게 우리를 만들고 이끄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겁먹은 베드로가 더 행복해 보이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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