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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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시작되었고 예수님의 죽음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죽으심을 알고 있기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복음을 적은 사람의 시선도 주님의 죽음에 모든 것을 맞추어 바라보는 듯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행선지는 라자로의 집이었습니다. 당신이 다시 살려내신 라자로의 집은 이미 그 동네에 유명한 집이 되었을 겁니다. 그곳에 주님이 방문하셨으니 주변이 떠들썩 했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상 밖의 장면이 펼쳐집니다.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향유는 누군가를 축복하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어드린 이는 다름아닌 주님의 발치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랑스러운 마리아였습니다. 오빠를 살려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그 은혜를 갚고자 한 어린 동생의 마음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장면에 누군가는 불만섞인 이야기가 흘러 나옵니다.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요한복음은 유다에 대한 나쁜 감정을 쏟아냅니다. 그는 참 밉게도 말하고 그 상황을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라자로의 소생이 사람들 모두를 놀라게 했고, 그래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를벌인 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즐거운 일에 그는 '돈'이라는 가치를 들먹이며 마치 가난한 이를 생각하는 듯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적은 이는 유다가 도둑이어서 그런 이야기를 했음을 밝힙니다. 그 향유가 스승에게 드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스승이라면 다른 것을 더 원했을 것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전하며 그는 정작 그 돈이라는 가치에 더 의미를 두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이 예수님의 생각을, 그리고 그 집의 분위기를 깨지는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이 상황을 당신이 알고 있는 미래의 일과 연결시키십니다. 그리고 고마움의 예물이 당신 죽음에 관해 당신이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그나마의 위로임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못내 아픈 것은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소생의 라자로가 있는 곳에서 당신의 죽음을 생각하시는 예수님의 모습도 더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가득한 향기가 의미하는 것은 주님의 죽음의 향기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없애려는 이들은 예수님의 모든 흔적을 없애려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왜 하필 죽음을 계획하고 결정하는 이들이 수석 사제들인지 참을 수 없는 화가 밀려오지만 그들에게 생명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생명에도 구분이 있고, 무지한 백성들이 하느님의 뜻에 눈을 뜨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는지 하느님이 아닌 로마의 눈을 더 무서워하던 성직자들이 내린 결론은 살인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생명의 주관자라는 것이 그들이 사람의 생명을 구분해서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을 준 것이 아님에도 그들은 이 이름 없는 예언자를 두려워하며 그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 모든 것을없애려 했습니다. 


 

제자는 스승보다 돈의 가치를 더 쫓고, 백성의 지도자요 성직자들은 살인을 계획하며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려 하는 상황. 그것이 이스라엘의 상황이었고, 예루살렘 하느님의 도시의 상황이었습니다. 그곳에 발을 디딘 주님의 운명이 위태로움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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