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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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에 예수님은 하느님이 주시는 표징을 일으키신 분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만이 가능한 그 표징을 지닌 사람을 두고 이런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그때에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렸다.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그들이 이렇게 동요하는 것은 몇 가지 연상되는 일들을 염두해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표징은 다가올 두려운 미래에 대한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질투하거나 시기했다기 보다는 그들은 무엇인가를 지키려 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민족을 지키려는 의도로 예수님을 위협적인 대상으로 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의 자존심이고 또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는 성직자들이었으나 그들이 정말 두려워한 것은 로마인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보다 그들에게 무서운 것은 백성들의 동요와 이것에 대한 로마의 오해와 그에 따른 정책의 변화였습니다. 


 

그러자 그 해의 대사제가 등장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지키고 전해야 할 한 사람이 책임있는 자리에서 말을 뱉습니다. 


 

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종교적 지도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치인으로서의 판단이었습니다. 민족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 하나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지니고 표징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습니다.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이로서 사람들과 하느님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었던 그는 하느님보다 로마를 무서워하는 이들을 대신해 그들에게 지혜를 발휘해 주고 있었던 겁니다. 


 

그들의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아들을 죽이기로 결정하고 하느님은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려고 파스카 축제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다가 성전 안에 모여 서서 서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이스라엘을 이끄는 이들의 잔인한 판단은 정치적인 판단이고 그들 나름대로는 가장 지혜로운 판단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의 시도는 로마인인 빌라도에게 자신들의 성인을 넘겨주는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성지주일의 수난복음은 그렇게 이스라엘이 로마로부터 살아남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서 희망을 본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멀어지셨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의 궁금증은 '잔인하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합니다. 이 궁금증의 대상은 예수님이었고, 예수님은 그들의 이야기처럼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을 수 없는 이스라엘 사람이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그 곳에 발을 들여야 했습니다. 선하고 의로운 한 사람 앞에 이미 놓여 있는 죽음의 덫은 그렇게 놓여졌고 그 모든 것을 계획하고 실천한 이들은 하느님의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지도자들의 뜻이 다르지 않아야 하는데 이토록 달라져 버린 상황에 우리가 아는 백성들의 선택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드러났습니다. 그것이 세상의 악함이 가지고 있는 연결고리입니다. 또한 지금도 우리가 자신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 때를 바라보는 사순절의 마지막은 우리에게 그 덫에서 벗어나는 길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늘 그 덫을 주님께 드리우는 중임을 고백하고 맙니다. 


 

성지주일이 코 앞입니다. 내일 주님을 먼저 돌아가시게 해야 합니다. 그런 토요일이 적막하고 삭막한 막막함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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