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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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 전 사람들이 생각한 예수님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우리처럼 처음부터 예수님을 구세주로 배웠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시자 하느님의 아들로 아는 우리에겐 이 질문이 별 의미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예수님을 대하는 그 때의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전해 줍니다. 그리고 곁에서 함께 생활한 제자들의 생각들도 우리에겐 중요한 가치가 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느님과 연결시킵니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로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 중 누구도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인정하고 말하는 이들은 없었습니다. 곧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이거나 혹은 예언된 옛 예언자 중 하나라고만 생각합니다. 


 

누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을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그들이 기억할만큼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되지 않았다는 것이며 예수님의 출신과 정체를 사람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을 말하는 수많은 이들 중 하나로 여겨졌던 셈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이시지만 2천년 전 이스라엘 땅에서 예수님은 그저 생각이 많은 '평범한 신자'일 뿐이었습니다. 옛 성인들의 이름을 빌려 이야기되는 존재가 그분께 붙여진 최고의 대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예수님 곁을 지켰던 제자들 중 베드로는 자신을 죄 많은 이라 부르며 예수님을 거절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베드로가 느낀 예수님은 하느님이 보내신 구원의 사람, 곧 구세주였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이 성별하신 기름을 받은 이, 곧 사람들에게 왕으로, 예언자로, 사제로 세워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구원의 메시아가 예수님이라는 베드로의고백은 우리가 아는 그리스도의 뜻 그대로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며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알아들으십니다. 곧 베드로와 같은 이에게도 구원을 알려주시는 아버지의 뜻이 예수님이 구원해야 할 세상의 가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 자리에서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가 주어졌음을 알고 있습니다. 곧 베드로가 예수님을 알아본 것처럼 예수님도 베드로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알아들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들, 또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에게 이 사실을 감추시고 당신이 그런 이유로 수난과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로서 이 모든 상황을 바꾸어 놓으실구원의 계획을 알려주십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여전히 베드로였습니다. 그가 주님을 알아본 것과 그가 세상에서 배운 가치는 달랐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본 베드로는 주님의 고통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도 알아보는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들에게 주님은 그들과 같은 처지의 한 사람으로 하느님을 입에 올릴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는 자신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을 믿지만 자신이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임을 모르고 자신의 구원이 이미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게 희망으로 주어졌음을 알지 못하는 이유로 다른 이도 인정할 수 없는 처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은 자신들의 운명을 저주하는 하느님의 백성의 자기 고백과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부활을 통해 뒤집혔을 때 그들이 내린 십자가가 죽음에서 구원의 상징이 되었고 그들이 포기한 구원이 가능한 희망이 되었습니다. 곧 아무것도 아닌 죄 많은 이들의 삶에도 하느님 구원의 무지개는 떠올라 있고 스스로 포기하고 자신을 포기한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가 있음을 알려준 것이 그리스도의 삶의 이유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통 앞에서 베드로는 이 뜻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에게 고통이란 죄의 결과요 인정할 수 없는 스승에 대한 모욕으로만 여겨졌을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에게 수난과 죽음은 이유 없는 미움이며 모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누군가 지금도 아무것도 아닌 존재의 사람이 하느님을 말하며 사랑을 논한다면 그는 말과 행동이 아닌 자격이나 신분으로 판단받고 조롱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유는 '본보기'였고 그것이 평범한 사람에게 허용되지 않는 천국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예수님을 살리심으로 그 십자가를 본 모든 이의 판단이 틀렸음이 드러났습니다. 


 

스승에 대한 베드로의 사랑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함에서 비롯되었겠지만 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대단한 정체를 알리려 애를 쓴 마귀들의 시도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우리에겐베드로는 분명 억울한 악담을 들었지만 예수님에게 베드로의 생각과 말은 사탄의 말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래야만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사랑 받아 본 사람이 사랑할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말들을 듣다 보면 '정말 불행한가보다'하는 생각이 듭니다. 평범함이 가치를 잃어버린 세상에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자신을 들여다 보는데 집중합니다. 그래야 사랑도 있고 행복도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당신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애를 썼다면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분이 자신의 생명을 좌우한 그 하룻밤 새벽길을 이용해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우리는 그분의 수난도 십자가도 죽음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그분의 손길에서 또 다시 기적을 체험한 사실을 부러워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그런 사랑이 주어지기를 기대하는 비참한 인생을 아직 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느님의 사람들이라 불리는 이들은 누구도 인정할 수 없는 구원을 주장하며 자신들을 치장했을테고 안쓰러운 백성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탓하며 희망 없는 하루 하루에 하느님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인생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결국 자신이 살기 위해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말합니다. 주님이 그랬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알면서도 피하지 못하는 우리의 약함 앞에서 예수님은 강한 어조로 당신의 길을 확실히 하십니다. 그것이 우리의 왕이요, 예언자이며, 사제인 그리스도입니다. 그분과 하나되는 우리가 해야 할 가치도 그것입니다. 이미 주어진 그리스도의 가치로 세상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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