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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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주일로 시작하는 한 주간입니다. 지난 주 피정에 들어가 한 주간 말씀을 손에서 놓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시간을 흘러 보는 일주일이었습니다. 가만 있는 것이 힘들고 그 순간 상황도 몸도 더 나빠지는 느낌이었지만 그냥 있어보기로 했습니다. 


 

아무데도 가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피정 지도 신부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 만으로 피정을 채웠습니다. 함께 하는 신부님들을 보며 생각에 잠기고 이 길에 있는 지금의 위치를 느끼고 내가 두고 온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렇게 저렇게 한 주간이 소리 없이 지나갔습니다. 


 

보통 때라면 이야기 보따리를 내어 놓듯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성소주일의 강론을 채웠겠지만 따로 준비할 생각도 또 시간도 보내질 않았습니다. 게으름보다 더 게으른 시간 끝에 돌아온 성당에는 세례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몸살과 같은 하루를 보내고 새벽에 앉은 자리에서 마주한 복음은 다시 목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는 예수님의 증언을 기억하는 주일을 보내고 복음 속에는 우리 안의 양을 사랑하는 목자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목자와 반대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도둑, 강도입니다. 누가 목자인지, 강도인지, 도둑인지 구별하는 첫 번째 특징은 "문"입니다. 
 

문을 통해서만 들어서는 목자는 결코 다른 방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문은 목자와 양들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통로입니다. 옳은 길, 바른 길,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으로 양들을 만나는 통로입니다. 이 문을 양들도 알고 목자도 압니다. 그리고 양들은 이 문 만을 통해 드나들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목자는 양들과 같은 길을 걷습니다. 그것이 이 문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결코 양은 드나들 수 없는 곳으로 드나들며 양들이 모르는 것으로 그의 자리를 지키는 이는 강도와 도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자는 양들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는 양들을 하나 하나 불러 데리고 나간다고 말합니다. 곧 목자에게 양들은 '무리'가 아니라 '한 마리'로 여겨지는 개별적이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이 양들의 무리를 지켜주고 있지만 목자에게 양들은 그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고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는 양들에게도 목자의 존재는 마찬가지로 느껴집니다. 


 

양들이 자신의 존재를 목자와 바로 연결하지 못하고 무리를 따라 움직이는 상황이 오면 양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게 되고 자신 앞에 있는 것이 도둑인지 강도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결국 자신의 운명을 초점 없는 상태로 몰아가고 맙니다.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양이 낯선 사람을 피해 달아나도 갈 곳을 알지 못합니다. 위험한 곳에 방치된 채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먼 후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을 '목자'로 여기며 복음을 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을 '문'이라고 표현하십니다. 곧 예수님이 아닌 것으로 양들에게 접근하는 이가 도둑이며 강도라는 것이고, 목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이 '문'으로 드나들도록 문지기 앞에 서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지기는 하느님 아버지라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목자는 양들을 위해 살고 양들은 목자를 통해 살 이유와 방법을 모두 얻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문'으로 드나들 때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양들에게 풀을 뜯어 입에 가져다 대고 그들을 유혹하는 이는 '문'보다 다른 곳을 이용합니다. 담을 넘고 양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 사이에 들어와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을 제공하며 양들의 두려움을 이용합니다. 


 

이 말씀으로 그림을 보듯 예수님이 와 계신 그 시대와 사람들의 모습을 짐작하게 됩니다. 예수님 이전 구세주인듯 이야기하며 자신을 전하는데 혈안이 되었던 이들. 그들은 자신들만이 구원을 선점한 사람들인 듯 사람들을 가르치고 위협하며 유혹하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접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온통 죄인이 천지인 세상에서 자신들의 실제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의인으로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목자로 대해야 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도 양들인 백성들도 서로를 불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도무지 말과 행동이 같지 않았고 백성들을 율법에 묶어 죄인으로만 구분하는데 익숙했습니다. 그들은 의인이었으나 누구도 그들이 가는 구원의 나라에 안심할 수 없었던 시대에 하느님이 정하신 문으로 등장하신 것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며 사람들에게 그들이 먹을 수 있는 풀밭으로 데려가시고 또 하느님의 우리 안으로 인도했던 그들과 늘 함께 하는 목자를 뽑아 세워 그 문을 드나들게 하신 것이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역할은 당신으로 끝나지 않았고 목자를 세워 백성들을 한 우리 안의 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말씀해주시는 목자의 이야기입니다. 곧 우리는 주님을 목자로 부르지만 목자가 드나들어야 하는 문이 주님이시고, 주님은 목자들을 하느님의 도구가 되게 하는 유일한 길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갈수록 깊어져 가고 그분의 길은 늘 하나의 진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돌아와 선 제대. 그리고 보고 싶었던 사람들. 그 속에 선택해야 하고 살아야 하는 유일한 것. 그 '문'을 향해 오늘도 길을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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