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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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 우리에게 가져온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 이전에 가르치신 모든 것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삶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뜻이었으니 그분의 모든 것도 진리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부활시기에 보게 되는 말씀들은 우리가 그 말씀을 진리로 여기며 새겨 들어야 하는 가치들입니다. 


 

바리사이 가운데 니코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었다. 


 

니코데모는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바리사이였습니다. 율법을 지키며 자신의 구원을 믿었던 사람이며, 또한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정치적 지도자이기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 옵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었던 바리사이는 보통 낮에 주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대접을 합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찾아온 시간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 사람이 밤에 예수님께 와서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스승이라고 부릅니다. 바리사이는 자신들이 이미 의로운 사람이며 하느님께 구원받을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스승이란 자신들을 말하는 수식어일 뿐 다른 이에게 사용하는 말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스승이라고 부르고 그 이유를 주님이 일으키시는 표징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그는 자신이 하느님의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기면서도 하느님의 은총이 벌어지는 장면들에 놀라고 있었던 셈입니다. 


 

바리사이면서 마음이 흐트러진 셈입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그에게 정말 필요한 가치를 이야기하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배 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이스라엘의 의인이고 백성의 지도자였던 니코데모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하느님의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아는 사람임을 밝히셨습니다. 위로부터 태어남은 물과 성령 곧 하느님의 생명과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글로 주어진 율법을 헤아리고 박혀 지키는 것만으로 하느님의 뜻을 이룬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이야기이고, 세상에 태어나 하느님의 뜻을 알고 사는 것이 이 세상을 참으로 사는 것임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런 이가 백성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의 주인공이고, 또한 백성을 이끌 수 있는 참 스승이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곧 하느님 나라를 아는 이는 세상이 주는 생명이 아닌 하느님이 주시는 생명으로 살고, 세상의 상식이 아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만들며 그 안에 사는 사람입니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니코데모가 예수님을 스승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제자됨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놀랄 이야기를 하시며 당신이 백성들 안에 머물고 그들의 지도자인 니코데모의 스승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을 하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밤에 주님을 찾아온 것처럼 그는 조심스럽게 주님을 찾았으나 주님은 항상 밝은 낮에 백성들 사이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말씀하셨으니 그분의 뜻을 세상의 지도자요 스승인 사람이 헤아리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은 분명했으나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고 자신만의 구원을 바라는 이는 주님의 방법과 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이미 자신에게 빠져 하느님 안으로들어가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겸손이란 하느님과 자신을 잘 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주님의 뜻을 알아들으려면 그래서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찾고 따라야 합니다. 


 

최고 의회는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그 속에서 동의하지 않았던 니코데모는 이 밤을 잊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이 그를 받아들이시고 그의 스승이 되셨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은 백성 사이에 머무셨습니다.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람의 방향입니다. 하지만 그 바람은 분명 하느님에게서 나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구원의 바람이었습니다. 


 

부활의 빛이 누구에게 비춰지는지도 이 말씀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복된 부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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