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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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곁에 모여드는 사람들.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입니다. 


 

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복음에서 이 다른 사람들은 늘 등장합니다. 그것도 함께 '세트메뉴'처럼 나타납니다. 세리는 바리사이들과 대척점에 서 있고, 죄인들은 율법학자들과 늘 상대편에 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는 것이고, 그들의 차이점은 직업 보다 '죄인'과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불평하는 이유가 된 이들에 관한 이야기 하나를 들려 주십니다. 우리가 너무 잘아는 '돌아온 탕자' 혹은 '둘째 아들' 또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큰 아들이 돌아오기 까지 이야기는 감동적으로 흘러갑니다. 사실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 둘째 아들이 정말 뉘우쳤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여겼고, 그것을 차지하고는 모두 써버렸습니다. 그가 그 돈을 열심히 살기 위해 썼다고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방탕하게 모든 것을 다 누릴 듯 흥청망청 살았고, 그 덕분에 생각지 못한 짧은 시간에 거리로 내몰린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가 집에 돌아오려 한 계기를 '깨달음'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께 해야 할 이야기까지 준비하는 치밀함을 보입니다. 그의 마음은 모르지만 그가 돌아서 하는 행동을 보면 그는 여전히 자신을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떠난 후부터 줄곧 이 아들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돌아온 아들의 이야기에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아버지에게 아들의 이야기와 태도는 별로 중요해보이지 않습니다. 아들은 여전히 아들이고, 그것도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다른 아들이 있습니다. 바로 큰 아들입니다.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아들은 작은 아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리고 그가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도 잘 아는 듯 합니다. 그래서 그 동생이 미움을 넘어서 경멸까지 하는 단계에 이르러 있습니다. 그러니 그 아들을 위해 소중한 짐승을 잡고 기뻐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행동은 정의도 아니고 어리석음을 넘어선 행동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모든 것, 곧 집에 조차 들어가기 싫어져 버립니다. 


 

그런 아들을 아버지는 달랩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아버지를 '자비로움'으로 표현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묵상들의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야기 속 아버지는 큰 아들에게 잊어서는 안되는 것 하나를 이야기합니다. 아버지에게 작은 아들, 곧 아우는 여전히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행동의 문제보다 우선하는 것이라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곧 큰 아들도 화가 나는 중에도 이해해야 하는 것은 그 둘은 모두 한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점입니다. 


 

큰 아들의 삶은 동생에 비해서는 희생의 삶인 듯 느껴집니다. 아버지의 명을 어기지 않았음이 억울해지는 상황을 마주한 큰 아들이 조금만 숨을 쉬고 생각해보면 그는 결코 손해를 본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고, 또 살아야 하는 삶을 산 것 뿐입니다. 일탈을 한 이가 그에 대한 벌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의 삶을 후회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늘 함께 있었고 함께 있으면서 어떤 필요도 느끼지 않았던 것이 누군가에 베풀어진 사랑 때문에 손해로 느껴진다면 결국 우리는 그 숱한 좋은 순간들을 잊어버리고 말게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위로가 아닌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이야기합니다. 


 

성당 안에서도 서로를 나누고 다투고 질투하는 이들을 보면, 이 말씀을 알아들어야 할 사람들이 아직도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야 할 처지에 서 있는 이들도 명심해야 할 이야기임에 틀림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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