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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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를 물어 보면 '행복'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신앙을 가지려하는 사람들의 동기에도 이 행복이란 단어는 가장 많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 신앙생활을 통해 언젠가 찾아올 그 행복의 때를 기다리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그 한 순간이 언제 올지 모르고 그래서 우리는 늘 간절한 기도와 청을 드리고 또 때로는 그것이 힘겨워 지치거나 포기한 상태로 건조한 신앙생활을 유지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맞는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주님의 고통을 통해 구원을 말하는 사순시기에는 더욱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가 바라는 그 황홀한 순간에 계십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이 복음의 예수님의 순간을 '영광스러운 변모'라고 부릅니다. 주님의 생애를 기억하는 우리의 묵주기도에도 들어 있는 멋진 순간입니다. 우리 주님의 가장 행복한 듯한 순간에 머물러 있는 우리는 이날 주님의 화려함에 넋이 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주님은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상태에 계십니다. 구약에 하느님을 세상에 알린 모세와 하느님의 충실한 예언자 엘리야와 함께 예수님은 기쁨이 아닌 비장한 순간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았다. 그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예수님은 그 화려함 속에서 당신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부활로 연결되기에 우리는 이 시간을 기뻐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이 시간은 우리의 기쁨과는 조금 다른 순간이었던 듯 싶습니다. 그 상황을 드러내는 것은 흐린 구름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데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이 났다. 이어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이러한 소리가 울린 뒤에는 예수님만 보였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침묵이 흐르고 그 침묵은 꽤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있을 때까지 제자들의 입은 굳게 닫혀버렸습니다. 가장 화려한 순간 그 순간에 머물러 있기를 바랐던 제자들이었지만 주님의 바람은 그 순간이 아닌 땅으로 다시 내려온 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순간이 베드로의 이야기대로 순간에 멈추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행복은 그 영광의 순간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며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순간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지만 예수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행복을 바라는 순간에 대한 목마름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한 순간 한 순간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고 맙니다. 우리는 그 행복한 순간을 위해 고통을 견디고또 견디는 듯 살아갑니다. 그래서 신앙이 고통의 연속인듯 느껴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입이 막힌 것은 그 주님이 원하시는 참 행복이 모세와 엘리야가 아닌 제자들이었고 당신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들과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주님의 생애를 복음이라고 부를까요? 그분이 우리를 선택하셨기에 우리의 기쁨이고, 그분이 목숨을 걸고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에게 주님은 복음입니다. 그분의 화려한 옷과 모세와 엘리야가 말하는 권위가 아닌 아프고 죄인 투성이인 우리가 당신 곁에 있음을 좋아하셨기에 그분은 복음입니다. 


 

그분의 화려한 옷이 우리의 남루한 옷으로 바뀔때가 그분의 참 기쁨이었고 우리의 기쁨이었다는 사실에 할말 없이 행복한 우리이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주님이 그토록 사랑하셨던 시간이라는 사실에 우리의 입도 멈췄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산 아래로 내려온 하느님 마음에 드는 주님의 선택을 고통이라 말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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