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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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은 자유로운 분입니다.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점은 당연히 그분이 율법 위에서 자유로운 분이시라는 것을 알려주지만 우리와 함께 계실 때 예수님께 율법의 굴레는 그분 아래 있지 않았습니다. 곧 그분은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도, 또 그 율법 때문에 의인이라 불리던 분도 아니었습니다. 왕이나 예언자나 사제가 아니었던 그저 이름만 '그리스도'였던 예수님이 자유로운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은 틈만나면 율법으로 그분을 얽매이게 하려 애를 썼습니다. 그들이 가진 권력이 율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이 파 놓은 율법의 함정은사람들을 죄인으로 내 몰았고, 그 무리 중 예수님은 항상 섞여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시도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 아니라 율법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예수님의 살인은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곧 살인과 성을 내는 것이 동일시 될 수 있는 감각을 가진 예수님이시기에 그분의 모든 삶은 살인으로 향할 수 있는 어떤 여지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 세상을 사는 듯 살아가는 것은 예수님께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잘못을 풀어가는 것도 하느님과 자신의 개인적인 관계로 풀어내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임을 이야기 하십니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현실에서 형제에게 원한을 놓고 화해하지 않았다고 해가 오는 경우는 그가 약자가 아닌 이상에는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화해 전 고해소를 찾는 것이 일상이고, 그 어려움을 고백하는 것이 오히려 더 빈번한 일입니다. 우리가 잘못한 것에 대해 먼저 화해하려 애를 쓰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경우는 그 때도 지금도 드문 일인 듯 싶습니다. 사람들의 잘못은 잘못보다 그 원인에 대한 호소가 더 많고 억울한 감정 속에서 우선 자신의 고리를 먼저 풀어내려고 죄 고백과 반성을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는 TV의 멋진 사제처럼 먼저 화해하고 오라고 돌려 보내지 못합니다. 용서의 도구로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사람들이 피곤하고 어려워하는 성사의 시도 보다 더 참혹한 마음을 가져올 때도 많지만 하느님이 용서하심을 알고 있는 한 그에게 주어야 할 사죄의 기회를 스스로 망쳐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저 그가 다시 회복하기를 한 없이 바라고 권하는 것이 할 수 있는일때도 많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풀지 않고 하느님 앞에 오는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이야기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용서를 받고 또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을 닮아 가고자 애를 쓰는 중입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걱정은 혹시 우리가 갚지 않은 그 숱한 죄의 흔적들이 갚아야 할 몫으로 남겨져 있지는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용서를 받는 것조차 무서워하고 불편해 하는 사람들에게 이 몫을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 알기에 내일 고해소를 들어가기가 조금은 두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할 일이 용서 밖에 없는 도구는 그럼에도 길을 돌려 나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제발'을 외치며 사죄경과 십자가를 보이지 않는 이 앞에 내어 놓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저 주님의 용서 앞에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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