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966DB4B5C86F15E22D3AB




 

신앙생활 중 사람들이 가장 먼저 머리 속에 떠올리는 것 중에 '기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기도의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기도에 대한 가르침은 대게 기도의 기본에 대한 가르침과 기도의 방법에 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 둘을 우리가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직접 가르치신 것이 있다면 가장 정확하고 좋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그 기도에 대한 두가지 가르침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주님의 기도'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는 기도문 이전에 기도에 대한 가르침이 들어 있습니다. 말씀 만으로 기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드러나는 가르침을 함께 봅시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기도의 형식에 '반복적인 기도'를 말하는 것으로 들리는, 혹은 유려한 문장으로 하느님께 여러가지 서술을 하는 훌륭한 기도문을 찾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정의는 '빈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의 가장 근본적인 출발은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이신다'는 은혜로운 표현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동시에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하느님은 듣지 못하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잘 말하고 잘 표현해야' 하느님이 '감동'하신다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자유롭게 기도를 잘 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의 감탄과 부러움이 일어나는 이유이고, 또 그것을 유도하거나 가르치는 이들도 마찬가지의 생각에 머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시도를 '빈말'이라고 잘라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기도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또 공동체의 기쁨일 수 있으나 하느님과는 상관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표현이 가능한 이유는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는 말씀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하느님은 우리가 정성을 다해 다가갈 때만 반응하신다는 잘못된 신앙의 근본을 바꾸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 하느님께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이미 알고 계신 부모님께 그 이야기를 꺼내는 아이들의 말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주님의 기도는 그런 가르침에 이어지는 기도문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라는 것이 자신의 걱정은 온통 빠져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에 대한 수많은 해석이 존재하지만 정확한 것은 이 기도에 우리의 개인적인 고민과 청원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에 중심은 '아버지'에 있고, 우리의 바람 보다 아버지의 뜻을 이 세상이 알고 이 세상이 창조된 그 목적의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바람, 그리고 우리가 그 세상에 살기 위해 해야 할 '용서'의 가치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모로 약한 우리 힘만으로 되지 않으므로 도움을 청하는 것이 기도의 끝입니다. 


 

곧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란 이 기도 안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천천히 바치든 아니면 외우듯 바치듯 이 기도가 의미하는 것은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기도와 동시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고 잊지 않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기도에 이어지는 가르침은 우리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과 함께 나누어야 할 이야기와 함께 우리 각자의 노력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용서' 말입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곧 기도의 가르침은 하느님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고 오직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을 만들고 살 수 있도록 우리도 서로를 용서하며 세상을 행복한 곳으로 만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기도는 그런 하느님에 대한 안심과 함께 그분의 뜻을 알고 살아가는 삶을 향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기도는 늘 우리 각자의 바람과 어려움을 하느님이 모르신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되고 불확실한 기대와 희망으로 마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누군가를 알고 믿고 말을꺼낼 때 그 기도를 '대화'라 말할 수 있습니다. 늘 답을 바라는 문제를 하느님께 내고, 요구를 꺼내들고 그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기도가 아닌 협박일 수 있고, 내기 일 수 있습니다. 청원이다 감사다 말을 꺼내기 전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51 2020년 2월 16일 연중 제6주일 별지기 2020.02.15 7
250 2020년 2월 15일 연중 제5주간 토요일 별지기 2020.02.11 3
249 2020년 2월 14일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별지기 2020.02.11 1
248 2020년 2월 13일 연중 제5주간 목요일 별지기 2020.02.11 2
247 2020년 2월 12일 연중 제5주간 수요일 별지기 2020.02.10 5
246 2020년 2월 11일 연중 제5주간 화요일 별지기 2020.02.10 2
245 2020년 2월 10일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1 별지기 2020.02.10 4
244 2020년 2월 9일 연중 제5주일 1 별지기 2020.02.08 6
243 2020년 2월 8일 연중 제4주간 토요일 별지기 2020.02.08 2
242 2020년 2월 7일 연중 제4주간 금요일 별지기 2020.02.08 2
241 2020년 2월 6일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별지기 2020.02.08 4
240 2020년 2월 5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별지기 2020.02.08 5
239 2020년 2월 4일 연중 제4주간 화요일 별지기 2020.02.08 5
238 2020년 2월 3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 1 별지기 2020.02.03 8
237 2020년 2월 1일 연중 제3주간 토요일 1 별지기 2020.01.27 7
236 2020년 1월 31일 연중 제3주간 금요일 1 별지기 2020.01.27 2
235 2020년 1월 30일 연중 제3주간 목요일 1 별지기 2020.01.27 5
234 2020년 1월 29일 연중 제3주간 수요일 1 별지기 2020.01.27 2
233 2020년 1월 28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1 별지기 2020.01.27 3
232 2020년 1월 27일 연중 제3주간 월요일 1 별지기 2020.01.27 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19 Next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