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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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이 어렵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나 판단을 해야 할 때 이것이 주님의 생각에 합당한지 아닌지, 또 이 생각이 나의 욕심으로 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고민할 때입니다. 때때로 일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욕심과 내가 잘하는 것을 내세워 일을 이루고자 할 때도 이런 고민에 빠집니다. 물론 이 고민은 어려움의 고민이 아니라 선택의 고민입니다. 


 

판단 하나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할 때 마다 이 같은 고민을 계속 반복합니다. 내가 해 온 것, 내가 잘 하는 것, 내가 성공한 것이 다음 사목의 준비가 되고 또 자신감이 되곤 합니다. 그렇게 다른 곳에 이르러 그곳을 살피는 것은 잠시하고 내가 성공한 노하우를 발휘할 시기를 봅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은 내 일을 거들 사람들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무리 신중해도 잘 모르기에 누구와도 합을 맞추어 보며 저울을 잽니다. 그리고 일정한 시기가 끝나면 사람을 골라 선택합니다. 


 

이런 행동은 때로 걱정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본인의 입장에서는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좋은 결론이 나온다면 그것으로 모든 부정적인 것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다 많은 준비를 하라고 후배들에게도 말해주는 것이 좋은 선배의 충고가 됩니다. 


 

그런데 복음 속 사명을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과 이런 우리의 모습은 완전히 반대편에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는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우리는 '좀 더 준비를 많이 해야 하고 걱정하는 만큼 대비를 해야 한다는 식'입니다. 우리는 성공하는 사목자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고, 또 그 방법들을 공유하려 하며, 후배들은 될 수 있는대로 빨리 그 방법을 익혀 바로 사용하여 시간을 줄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많은 재주와 준비를 거쳐 사람들 앞에 서려고 합니다. 되도록 좋은 소문의 주인공이 된다면 그리고 그것에 걸맞는 준비, 그것도 유행에 민감한 소재를 잘 준비하는 이라면 그의 성공적인 미래는 이미 따논 당상입니다. 


 

여기서 잠시 멈출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가는 곳에 어떤 것도 준비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그에게서 어떤 것도 볼 수 없게 하심과 같은 이치입니다. 곧 어떤 일을 할지도 모를 사람을 만나 기대가 아닌 관심으로 그를 보고 듣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그가 그 고을에 필요한 것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이 주님의 파견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지닌 것이라곤 주님과 함께 지내며 듣고 보았던 것이 전부입니다. 
 

그들은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언제 떠날지도 기약이 없는 채로 동네에 들어와 그 동네에서 나오는 모든 것으로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달리 보일만한 여지를 지니지 않았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동네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한 것 뿐이었습니다. 사람이 맨 몸으로 어떤 일을 치러야 할 때 우리는 속된 말로 '맨 땅에 헤딩'이라는 말들을 합니다. 제자들의 처지가 그랬고 그렇게 복음전파의 첫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었고, 주님이 가실 곳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리 저리 떠돌지 않았고 한 곳에 머물며 그 동네에 일원이 되어 하느님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비밀스러울리 없고 조심스럽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본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그 사명 속 주인공의 원형이었습니다. 그런 주님과 우리는 너무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주님을 배웠으나 세상이 원하는 것에 대비하려 하고, 그것을 이용해서라도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위험한 발상도 여기저기서 보입니다. 물론 이 일들은 세상의 눈으로는 성공한 것으로 비춰집니다. 그리고 세상에 한쪽 발을 걸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답답함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너무 짧게 끝났기에 시간이 더 있었다면 예수님의 가르침도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주님의 가르침은 이것 뿐이고, 주님의 모습도 바로 이런 모습 뿐입니다. 


 

그럼에도 복음은 2천년을 흘러왔고, 우리가 아무리 준비하고 애를 써도 근본은 이것 하나 뿐입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그곳에 가서 살며 그곳에 필요한 것을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어떤 것으로도 먼저 자신을 알리거나 끝까지 자신을 남기려 들지 말아야 하는 것이 사명을 받은 이들의 모습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른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보여주신 것이 우리의 교과서입니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그것에 '예'하면 그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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