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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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성지 주일을 일주일 앞둔 사순절의 막바지에 있는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사건 중 기억에 남는 용서에 관한 이야기 한 편을 만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말씀이 성경에 기록된대로 라고 말씀하셨고, 율법과 예언서의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으리라 하셨으니 예수님의 모든 것이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과 다를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과 그들이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던 이들은 예수님의 이야기 속에서 전혀 새로운 것을 들었을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다음의 상황은 그들이 왜 예수님께 모여 왔는지를 설명해줍니다. 물론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들이 제시한 문제는 한 사람의 생명이 담겨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율법에 의해 고발할 여인을 데려왔고 그녀는 이미 죽은 것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현장에서 죽을 죄를 지어 그 처벌을 받으러 온 '사형수'였습니다. 이미 율법에 의해 형이 정해진 사람을 놓고 그들은 예수님에게 그분이 율법에 충실한 분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들의 '정의'에는 죽음 이외의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합법적인 살인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시간을 보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이 때 예수님의 행동을 해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의미가 무엇인지, 또 무슨 내용을 땅에 적으셨는지 전혀 알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난 후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에게 실제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인지 분명히 드러내 줍니다.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예수님의 대답은 끝났고 더 이상의 질문은 불가능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답에 대해 행동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율법을 어기지 않으셨고 사람들에게도 율법을 어기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그 생명을 빼앗을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도록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 말씀에 대한 자신들의 답을 내 놓았습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 여자를 떠난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께 살인적인 질문을 던진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그들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 율법이었고, 그 속의 내용은 그 율법이 의미하는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도 그 말에 벗어날 수 없는 죄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예수님이 남으셨습니다. 죄인과 그 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분이 남았습니다. 그분이 돌을 던져 그 여인이 죽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그 자격을 가지신 '무죄하신 분'이자 '의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느님의 진짜 의인의 답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당신에게도 던지신 대답에 대한 당신 스스로의 판단의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우리는 하루에도 수도 없는 죄를 짓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 죄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심판은 아버지의 뜻대로였고 그 뜻은 우리가 죽을 죄를 지었더라도 그것으로 그의 생명을 빼앗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시작되고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이 아닌 사람이 자신을 위해 빼앗는 형태로 계속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자신을 위해 다른 이를 죽이고 또 자신의 생명조차 자신이 결정 짓는 일들을 반복합니다. 


 

누군가 죽을 죄를 지었다면 죽는 것이 율법을 떠나 당연한 듯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또 다른 살인입니다. 살인이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최악의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스스로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아 그 책임을 묻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말씀을 우리의 현실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살인에 관한 율법은 분명 하느님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느님의 뜻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더 직접적인 의미로 전해집니다. 사람이 자신의 죄를 책임져야 함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물을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부터 그 죄에 대한 자신의 모습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드러나는 가르침은 '용서'의 이치입니다. 우리가 아는 용서는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듯 대하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 여인의 죄가 세상에서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이 여인을 보면 그 죄를 떠올릴 것이고, 이 여인조차 자신의 잘못을 잊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용서는 '단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이 되고 그것을 아는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부족함을 생각하며 그녀에게 그 죄를 묻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태도를 스스로에게 묻는 셈이 됩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의 손에서 돌을 놓게 되었고 그 결과 작은 '구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자리에 모든 이들은 율법을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율법의 글자를 그대로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율법을 어겼다 말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이 율법에 담긴 진짜 뜻을 알아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녀에게 단죄하지 않음으로써 그 법의 진짜 무게를 알게 되었고 예수님의 단죄하지 않으심이 하느님의 본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는 성주간을 한 주간 앞두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무죄한 분에게 돌을 던지다 못해 그분의 생명을 빼앗는데 침묵하게 됩니다. 무리의 대부분이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있고 지도자들의 폭력적인 권위에 동조했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변명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전 죽어야 마땅한 이를 두고 우리 스스로의 부족함으로 인해 살인의 돌멩이를 놓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놓고 무죄한 이의 죽음은 당연하지 않아도 방관했던 우리의 잘못은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 율법을 어긴 더 큰 잘못을 뜻합니다. 


 

간음하고도 죽지 않은 여인은 무죄하면서도 돌아가셨던 예수님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가치입니다. 예수님은 땅에 몇 번이고 십자가를 그리셨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 봅니다. 하느님은 죽을 이에게도 그의 생명을 빼앗지 않으셨는데 우리는 무죄한 이도 어떤 식으로든 죽일 수 있는 잔인한 삶을 사는 중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용서의 주님과 살인의 권력의 후손으로 살아가는 방황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선택이 얼만 남지 않았습니다. 살인자의 후손이 될지, 아니면 목숨을 걸었던 주님의 형제가 될 것인지 말입니다. 돌아가신 주님을 위해 울기보다 우리를 위해 울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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