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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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듣기 : https://youtu.be/FIyDWoIO_9A
 

사순절의 첫 주일입니다. 사순절의 매일은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많이 다를 수 있지만 그 끝에서 그리스도의 마지막 삶을 만난다는 것은 같습니다. 그 삶의 마지막에 이루어진 사건들 속에서 우리를 찾아오신 하느님의 뜻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고 우리가 살아야 할 참된 삶의 의미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만나는 예수님의 생애는 오직 한 번 사는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예수님에게는 세 가지 유혹이 주어집니다. 유혹의 시간은 예수님의 40일간의 긴 피정이 끝난 후입니다. 이 피정은 공생활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의 시기였고, 그래서 공생활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준비하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준비의 시간이 끝나고 예수님은 긴 시간 공복으로 인한 허기짐을 면해야 하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 식사는 가장 필요한 것이었고 그것이 예수님에게 첫번째 유혹으로 등장합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세상을 사랑하고 정의롭게 사는 것이 아무리 옳아도 사람에게 절실한 것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 다음도 없다는 것을 유혹하는 자는 말합니다. 예수님께는 식사할 빵 한 조각이었고,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생각하라는 좋은 가르침이 가장 절실한 유혹이 됩니다. 곧 예수님께 던져진 첫 질문은 돌을 빵으로 만드는 기적을 보여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 꼴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조롱이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나 갖추고 무엇인가를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게 이런 질문에서 주저 앉습니다. 누군가의 눈에 우리는 늘 부족한 사람들이고, 무엇을 하기에도 해결할 것을 항상 쟁여두고 있는 듯 사는 사람들이니 말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옳고 좋아도 우선 내가 해결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이 질문 앞에서 늘 무너지고 멈추고 나쁜 행동으로 자신을 망쳐버립니다. 그렇게 빵 하나도 해결못하는 상황을 하느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예수님의 대답은 간결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부족함을 먼저 해결하는 것으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이루어 가는 것으로 행복한 삶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곧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란 흔하게 말하는 무엇보다 하느님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사랑하며 살라고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사랑의 가치는 우리의 부족함을 생각하며 개인적이거나 이기적인 이유로 멈춰질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배고프신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평생 스스로 지니신 단점을 극복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겐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시지만 그 때의 사람들에게 구세주의 모습은 나자렛에서 올라온 목수였던 것도 예수님을 따라다닌 약점이었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스스로에게 필요한 것을 거절하신 예수님. 그분에게 주어진 또 다른 유혹은 '이제 무엇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할 것인가', '무엇으로 당신을 믿게 할 것인가?'입니다. 하느님의 집인 성전에서 뛰어내려 천사들의 보호를 받게 된다는 것은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고, 또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보기엔 허기에 굶주린 예수님, 그분의 모습은 깡마른 세례자 요한만큼 강렬했을 수도 있지만 그분은 요한처럼 알려진 분이 아니었으므로 걸맞는 능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여전히 우리가 말하는 '본색'이 필요한 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때부터 당신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과 당신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간단히 물리치신 예수님은 이제 허기지고, 무능력한, 그리고 유명하지도 않은 사람이 되십니다. 그런 힘 없는 주님께 마지막 유혹이 주어집니다.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아무것도 아닌 주님 앞에 주님이 만나셔야 할 세상이 펼쳐집니다. 세상의 모든 나라와 영광이었습니다. 곧 예수님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세상이 주님보다 훨씬 화려하고 좋은 세상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유혹하는 이는 자신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저 영광 속에 살아가는 인생들이 주님께 고개를 숙이게 하려면 주님은 저들이 원하는 것을주셔야 하고 그것은 그들의 싸움과 이기적인 경쟁에 의해 이루어진 것들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손을 들어주고 그들을 행복하게 하면 주님은 그들의 경배를 받으며 저 모든 것을 당신의 것으로 받으시고 경배를 받으실 수 있게 됩니다. 


 

유혹하는 이는 세상이 만들어낸 영광과 그들이 바라는 신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현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앞에 무능한 신으로 서야 하고 그들의 근본에 부딪혀야 하는 주님을 마음껏 조롱합니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예수님의 또 한 번 거듭되는 간단한 말씀으로 정리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우리는 이 세가지 질문을 유혹이라 말하지만 현실에서 이 세가지 질문은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장 필요한 것 하나를 해결하지 못하는 부족함 앞에 계속 머물러 있거나 그것을 채우기 위한 범죄를 반복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에 힘겨워하고 다른 이들보다 무엇인가를 증명하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그것이 행복이라 생각하며 언제나 목마르고 부족함에 불만스러운 삶을 삽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영광과 성공을 부러워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나쁜 행동을 하는 것도 '정도'에 따라서는 정당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며 범죄합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부족함을 알면서도 옳은 것을 찾고 바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사람됨의 의미가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며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행복함으로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가고 다툼이나 시기가 발전의 동력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인생을 아름답고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것을 깨닫고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것을 인간의 비천한 상태를 벗어나는 것으로 알지 마십시오. 사람들 위에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나 구원이라고 착각하지도 마십시오. 그리고 누구보다 높은 산에서 이루어지는 그 악함이 이루어내는 성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도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사순절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예수님의 사랑이 그렇게 단단한 것임을 말합니다. 시작부터 아무것도 아닌 그래서 전부를 포함할 수 있는 사랑으로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오늘 주일의 말씀과 예수님의 모습에 기뻐합시다. 적어도 우리의 주님은 당신의 먹을 것보다 우리가 중요하셨고, 당신의 이름보다 우리의 삶이 더 중요하셨으며, 어떤 방법이 아닌 당신 자신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런 주님께 우리도 무엇을 준비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그분을 따라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라는 말씀은 하느님께도 우리는 충분히 사랑받을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기뻐합시다. 


 

텅 비어버린 성당에서 신자 없이 미사를 드려야 하는 시간이 언제까지 될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슬픔과 공포, 그리고 분노만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사이를 옮겨다니는 병균 하나를 이겨내지 못하는 현실을 보는 중입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힘겨워도 서로를 지켜내기 위해 우리를 위해 애쓰는 것을 봅니다. 돌은 빵이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중에도 서로를 사랑합니다. 누군가 영웅이 나타나 우리를 구해주지는 않아도 서로를 지켜내는 중에도 줄을 서고 안부를 물어보고 궁금해하는 우리를봅니다. 그리고 이 시기를 피해갈 수 있는 이들, 또 이용하려는 이들도 세상엔 존재하지만 지금 우리가 그곳을 쳐다보고 있지 않다는 것도 우리가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그것이 이 위기를 극복시키는 분명하고 놓치지 말아야 할 우리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그 어느때 보다 사랑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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