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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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데모와 예수님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그것은 물과 성령을 통해 사람이 다시나는 것을 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니코데모의신앙과 상식에 예수님의 이야기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성경에도 사람에도 정통한 사람이었으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의 상식을 벗어나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스승님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의 표징 때문이었고 그것이 그가 생각했던 예수님의 가치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그는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생각하고 예수님께 그의 솔직한 입장을 드러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능력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바리사이이자 최고 의회의 의원이었던 니코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의문 투성이가 됩니다.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도 물과 성령의 이야기도 그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이스라엘 최고의 자리에 있었고 성경은 어릴 때부터 익혔던 것이어서 신앙에서 이미 특별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또 다시 새로난다는 것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은 표징이 일어난 것을 제외하고는 늘 죄인들 사이에 계셨기에 그의 태도는 당혹스러움 자체였습니다. 


 

잘 살고 인정받는 자신의 삶이 거듭나야 하는데 그것이 예수님처럼 죄인들 사이에 살아가는 것이라면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가졌던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 한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의 당혹함에 예수님은 그의 상황을 바로 지적하십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스승이 망신을 당한 이유는 그가 사람과 세상을 대할 때 일정한 수준으로 판단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적어도 자신과 같은 부류나 자신이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만 대접했던 것입니다.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스승이라는 말을 꺼낸 것은 그런 의미였고 예수님은 그의 스승이 되는 것을 거절하셨습니다. 또한 그가 지금 그보다 못한 이가 말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음도 지적하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진리는 성경 안에만, 혹은 성전 안에만 있다고 생각하고 그 보물의 가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머무는 곳과 그의 풍모는 사람들 사이에도 훌륭해야 합니다. 그래서 '수준'이라는 것이 설정되고 사람을 하느님이 아닌 사람 안에서 이미 걸러내는 사회의 지도자로 살던 니코데모였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삶과 말씀 모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나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는 주님을 따를 준비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님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삶이 되지 못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누리고 사는 이의 모습이 니코데모에게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결국 당신의 죽음으로 세상이 이 진실을 알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니코데모가 목격한 예수님의 죽음은 다른 이와 달랐을 겁니다. 이 말씀이 지금이 이해할 수 없지만 그 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가 깨달음을 얻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곧 예수님은 그가 스승이라 부르는 것에 당신의 생명으로 답을 보여주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위로부터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니코데모의 시선에 더 사로잡혀 있는 듯 보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이에 대한 일정한 높이의 시선을 가지고 있고, 또 세상의 성공과 하느님의 은총을 연결시키는 일에도 익숙합니다. 그런 우리가 여전히 그렇고 그런 삶 속에 땀흘리며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 안에 계신는 것을 기분좋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위로부터 태어난' '바람'같은 존재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정체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의 성체를 모실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질문은 니코데모를 시작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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