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9962624F5CC0D3811347A9


 

 

우리에게 오신 하느님. 그분의 삶의 모습은 우리의 생각과는 참 많이 다른 하느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부터 그분의 성장과 우리 안에서의 삶의 순간 순간에서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기대하는 전지전능의 모습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물론 우리가 놀라는 기적들이 등장하지만 그것만이 예수님의 전부라고 말하기에 예수님의 모습은 소박하만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이들의 위대함을 말하고 싶지만 하느님의 선택은 생각보다 평범했고 그들의 삶의 면면들도 영화에 나오는 대단한 영웅들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예수님 인생의 최고의 화려한 모습은 언제였을까요? 아무래도 부활하신 후의 예수님의 모습이었을 겁니다. 죽음을 이긴 모습이었으니 말입니다.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들은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고 묻었던 사람이 일어나 우리 눈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우리가 외면하고 떠나온 사람이면 우리가 그 사람 앞에서 느끼는 감정은 '당황스러움' 이상일 수 없습니다. 살아서 나쁜 기억이라고는 없던 사람. 그러나 순식간에 우리가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사이 사라져 버린 사람이 우리에게 던진 인사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입니다. 


 

그분의 인사에는 어떤 '과정'이 생략된 듯 보입니다. 그런데 또 어떻게 보면 마치 어제 본 사람처럼 아무 일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주님은 예전처럼 인사하셨고 우리가 헤어진 그 밤이 없었던 것처럼 너무 평범하게 인사하십니다. 우리의 스승은 예언처럼 그렇게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는 어느새 그분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살아나셨다는 증거를 보여주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예수님의 증거는 '먹음'이었습니다. '먹보요 술꾼'이셨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친히 그들이 가진 물고기 한토막에 부활을 증명하십니다. 제자들이 본 익숙한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곧 부활의 증거는 또 한 번 '원래의 것'이 영원한 것임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이 초자연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셨다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없습니다. 죽었던 분이 살아난 것만해도 대단한 사건인데 그분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든지 그분을 죽인 이들이 그것을 두고 입을 댈 이유는 없지만 그분을 기억하는 십자가만큼 강렬한 인상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부활은 그 죽음을 극복한 사건이니 한결같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흰옷을 입었던 영광스러웠던 산 위에서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늘 그렇게 하늘에 어울리는 예수님을 부활하신 모습으로 그리곤 합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은 정원지기의 모습이거나 길동무이거나 이렇듯 물고기를 잡수시는 허기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그리고 변하지 않은 모습이 하나 더 등장합니다. 여전히 가르칠 것이 있는 듯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오히려 제자들이 이제는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죽었다 다시 살아난 스승의 가르침이니 영원한 가르침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이 이럴수도 또 저럴수도 있는 선택의 말씀 중 하나라는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당신에 대한 성경의 기록들은 '하느님의 뜻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곧 우리가 멈추고 돌아서야만 한다는 말씀. '회개'의 말씀이자 '구원'의 선포가 부활을 통해 완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시종일관 평범했던 그리고 우리 곁을 지키셨던 예수님의 사랑은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흩어진 마음을 모으고 한결같은 그분을 따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91 2020년 3월 28일 사순 제4주간 토요일 별지기 2020.03.28 5
290 2020년 3월 27일 사순 제4주간 금요일 별지기 2020.03.28 4
289 2020년 3월 26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 별지기 2020.03.28 0
288 2020년 3월 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별지기 2020.03.28 1
287 2020년 3월 24일 사순 제4주간 화요일 별지기 2020.03.28 1
286 2020년 3월 23일 사순 제4주간 월요일 별지기 2020.03.22 10
285 2020년 3월 22일 사순 제4주일 별지기 2020.03.22 6
284 2020년 3월 21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별지기 2020.03.15 1
283 2020년 3월 20일 사순 제3주간 금요일 별지기 2020.03.15 4
282 2020년 3월 19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신 성 요셉 대축일 별지기 2020.03.15 2
281 2020년 3월 18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 별지기 2020.03.15 1
280 2020년 3월 17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별지기 2020.03.15 3
279 2020년 3월 16일 사순 제3주간 월요일 별지기 2020.03.15 1
278 2020년 3월 15일 사순 제3주일 별지기 2020.03.14 4
277 2020년 3월 14일 사순 제2주간 토요일 별지기 2020.03.10 9
276 2020년 3월 13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 별지기 2020.03.10 2
275 2020년 3월 12일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별지기 2020.03.10 3
274 2020년 3월 11일 사순 제2주간 수요일 별지기 2020.03.10 3
273 2020년 3월 10일 사순 제2주간 화요일 별지기 2020.03.10 0
272 2020년 3월 9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별지기 2020.03.10 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9 Next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