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99106C465C8BB0DD06E71D




 

우리는 겸손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어디서나 겸손이 등장하는 곳에는 누군가 상대방이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을 겸손이라 부르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는 사회입니다. 그런데 이 겸손이라는 말이 가끔은 잘못 사용되고 있음을 봅니다. 그리고 또 그 잘못으로 인해 우리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흘러가는 위험도 볼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복음은 '원수 사랑'이라는 아주 큰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원수 사랑이라는 불가능한 사랑을 앞에 두고 복음의 가르침을 묵묵히 읽어 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사실 복음이 이야기하는 것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보다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길에 대한 것입니다. 원수 사랑이 너무 큰 명령이기에 우리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장 원하는 가치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수 사랑이 어떻게 또 왜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불가능'이란 단어를 생각하기 전에 설명부터 들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하느님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너그러우시고 그분의 판단은 짐작 할 수 없을 정도로 헛갈릴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주님의 진심이라는 것을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듣습니다. 우리에게만 주어져야 할 하느님 생명의 선물들이 왜 악하고 나쁜 사람들에게도 허락되는지 우리는 묻지만 그것 역시 하느님이 원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충격적이기도 하고 받아들이기에 힘겹기도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은 그렇게 하고 계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을 허물어 버리십니다. 곧 우리가 사랑의 최선이라고 말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같은 가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도 다 하는 사랑에 최선을 다하며 우리가 신앙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느님 앞에서 어떤 가치로 여겨질 지 예수님은 묻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사랑은 누구나 다 합니다. 죄를 지으면 안된다는 것은 굳이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은 온 세상이 하느님이 만드신 그야말로 '좋은 곳'이라는 것이며 그 속에 갈라져 있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은 끝가지 기회를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원수 사랑은 그래서 하느님이라야 또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야 가능한 가치입니다. 곧 상식적이지 않은 것이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그 가치를 이야기하셨고 우리가 피해갈 수 없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아야 하고, 실천해야 하는 가치입니다. 도망갈 생각말고 노력해야 할 일입니다. 


 

이야기의 시작을 겸손으로 꺼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우리는 겸손이라는 말로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에서 도망가려는 시도를 자주 합니다.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의 태도라면 우리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 교만일 수 없는 이유입니다. 


 

겸손이란 하느님 앞에서 부족한 자신을 아는 것이지 결코 남 앞에서 자신을 숙이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 걷는 보폭과 정성과 마음이 필요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31 2019년 3월 3일 연중 제8주일 별지기 2019.03.03 10
330 2019년 3월 4일 연중 제8주간 월요일 1 별지기 2019.03.05 8
329 2019년 3월 5일 연중 제8주간 화요일 1 별지기 2019.03.05 10
328 2019년 3월 6일 재의 수요일 1 별지기 2019.03.06 17
327 2019년 3월 7일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1 별지기 2019.03.07 16
326 2019년 3월 8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1 별지기 2019.03.08 17
325 2019년 3월 9일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1 별지기 2019.03.09 9
324 2019년 3월 10일 사순 제1주일 2 별지기 2019.03.09 28
323 2019년 3월 11일 사순 제1주간 월요일 1 별지기 2019.03.10 21
322 2019년 3월 12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1 별지기 2019.03.12 12
321 2019년 3월 13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1 별지기 2019.03.12 16
320 2019년 3월 14일 사순 제1주간 목요일 1 별지기 2019.03.13 16
319 2019년 3월 15일 사순 제1주간 금요일 1 별지기 2019.03.14 17
» 2019년 3월 16일 사순 제1주간 토요일 1 별지기 2019.03.15 13
317 2019년 3월 17일 사순 제2주일 1 별지기 2019.03.16 14
316 2019년 3월 18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 1 별지기 2019.03.18 14
315 2019년 3월 19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1 별지기 2019.03.18 11
314 2019년 3월 20일 사순 제2주간 수요일 1 별지기 2019.03.20 16
313 2019년 3월 21일 사순 제2주간 목요일 1 별지기 2019.03.20 23
312 2019년 3월 22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 1 별지기 2019.03.22 1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9 Next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