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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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을 보내는 우리는 이 시기를 참 무겁게 보냅니다. 이 시간 우리가 묵상하고 기억하며 지내야 하는 것은 주님의 수난이나 고통만은 아닙니다. 사순절은 주님의 수난과 부활 사건이 어떻게 우리 안에서 일어났는지 생각하고 주님의 삶을 따라 살며 그 사건을 준비하는 시간들이어야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는 이 시기에 그 어떤 때보다 예수님을 따라 살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 때도 '구원'이라는 단어는몹시 중요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구원의 열쇠를 쥐고 계신 분이었고 사람들은 그분에게서 하늘에서 내려온 징표를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야 '믿을 수 있다'는 식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바람을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그것은 그런 표징이 구원의 표징일리 없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그 표징에 목말라 하는 우리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새겨 들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때에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모여들고 그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보러 왔습니다. 그것을 신앙으로 여길수도 있지만 예수님은 전혀 생각이 다르십니다. 그들이 이곳에 모여온 이유는 '신기한 것'을 보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바람을 거절하고 대신 요나의 표징만을 허락하십니다. 


 

그 요나 예언자의 표징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가 물고기 뱃속에서 하느님의 굳은 생각을 받들어야 만 했듯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사흘간의 사건을 말하는 것으로도 들을 수 있고, 요나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만으로 니네베 사람들이 뉘우친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남방 여왕이 하느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솔로몬의 경솔함에도 하느님의 권능을 알았던 것도 표징의 예가 됩니다. 요나와 솔로몬은 하느님의 은총의 사람들이었으나 하나는 하느님의 뜻을 거절하려 했고, 하나는 하느님의 은혜를 잊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당신 약속을 지키셨고 니네베 사람들에게는 회개의 기회를 허락하셨고, 남방 여왕에게는 솔로몬에게 주셨던 지혜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곧 사람을 놀라게 하는 신기한 일들이 아닌 하느님의 구원 약속이 유일한 표징임을 알려주시는 예수님은 그런 표징 중에서도 당신이 그들과 다른 점이 있음을 확실히 하십니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곧 요나는 하느님을 너무 잘 안 나머지 자신이 용서할 수 없는 니네베를 멸망시키려 했고, 솔로몬은 남방 여왕의 방문에 하느님을 찬미하기보다 그 여왕에 빠져 이방의 신들을 섬기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악한 세대조차 구원하시려는 하느님 아버지의 생각에 동의하셨고, 아버지의 뜻을 끝까지 지켜 십자가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이 더 큰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끝내 지키셨다는 것이고, 그것이 결국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는 부활로 이어졌습니다. 


 

사순절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아는 것이 이 시간을 잘 지내는 첫걸음입니다. 예수님은 고통의 생애를 이기신 분이 아니라 우리를 구하려는 의지를 굳게 가지시고 포기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늘 우리 곁에서 우리를 행복하게 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복음'이라 부릅니다. 그분 곁에 있었던 사람들은 끝내 행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순을 보내는 모습은 다른 어떤 때보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야 솔로몬 보다 요나 보다 더 크신 주님을 우리가 잘 따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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