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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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 달려와 무릎을 꿇은 사람. 그는 진지한 사람이었습니다. 젊었지만 사는 동안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했고 죄도 없이 살아왔으며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할 어떤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궁금함이 있었으니 그 삶에도 답답함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우리가 아는 이 이야기의 시작은 그의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자신의 궁금함을 풀어 주실 것이라 확신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의 가장 답답한 바가 그의 첫 말에서 등장합니다. 그것은 "선하신 선생님"입니다. 
 

그는 선하게 살려고 노력했으나 답을 얻지 못한 듯한 느낌이었고 그 답은 곧 '영원한 생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늘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예수님, 그분에 대해 들은 바는 바로 그 영원한 생명의 답을 알고 계신듯 하니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로 예수님께 질문을 시작했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의 질문에 답하기 전에 예수님은 그가 말하는 선함이 어디에 있는지 확실히 하십니다.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는 말씀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선함은 오직 하느님에게서부터 시작된 유일한 가치라는 것을 뜻합니다. 곧 누가 선하기 때문에 그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지녔다는 생각을 바로잡고 우리가 선한 모든 것의 이유는 하느님에게서부터 받은 것이어서 누구에게 그러한 말로 하느님의 가르침을 흐리는 일을 분명히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다음으로 그의 말에 답을 하신 것은 "계명"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구원의 약속을 하실 때 "계명" 곧 지켜야 할 것들을 알려주셨습니다. 백성은 그것을 통해 하느님께 다가가며 하느님은 구원 앞에 사람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속에 영원한 생명의 길이 있고, 방법이 있고, 뜻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모든 것을 성실히 지켰다고 고백합니다. 오늘은 그의 말에 의심하지 말고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그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예수님도 그의 말을 부정하시지 않으셨으니 더더욱 우리가 그를 의심할 바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계명을 다 지켰기에 그는 '죄인'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준에 그는 '의인'을 넘어 '성인'으로 부를만한 품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 나름대로 구원의 확신이 없었고 그의 걱정은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부족함 때문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런 그가 그 상태로 죽어서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지만 그의 걱정이 그랬다면 그는 이미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자신을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를 답답하게 한 이유에 대해 예수님은 '어떤 것을 하라'는 말씀보다 그가 계명을 지키며 깨달아야 했던 것을 알려주십니다. 그의 손과 마음으로 하면서 알아야 하는 하느님의 가르침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냥 글자로 적힌 대로 지키는 '준법'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어서', '당연히' 지켜야 하는 가치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가치를 잃고서도 찾아야 하는 가치이기에 모든 조건을 갖춘 그가 할 필요가 없어서 '지켜진' 것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실천해서 지켜야 하는 계명의 원래 뜻에서 그가 벗어나게 되었던 셈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하느님을 이용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부유하고, 사람에게 욕심을 부리지 않을 정도로 부유하다면 십계명은 사람을 궁지로 몰지도 죄를 지어 극복할 필요도 없는 계명이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에게 하느님이 필요한 이유는 '영원한 생명' 정도일테고 말입니다. 


 

세상은 가난한 이가 기댈 곳이 '영원한 생명'이라 말하며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영원한 생명을 더 바라는 것은 부자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누렸으니 그것이 계속되기를 바란다면 그 집착과 노력은 상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느님은 그리고 그분을 믿는 사람들은 잔인하게 그들의 사치를 드높이는 수단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떠난 자리에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을 남기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의 빈자리에 예수님의 말씀이 놓이고 그 말씀에 놀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부자에게 하신 말씀을 잊고 그 말씀을 자신들에게 놓인 철벽과 같은 하늘나라에 관한 이야기로 듣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부자도 안되는데...'라는 생각입니다. 부에 기대어 의인도 되고 성인도 된 사람에게 필요했던 그 사랑을 받지 못한 이들의 절망은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그 때도 지금처럼 부유함이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했고 그 은총의 사람들은 별 고민 없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부유한 이가 자신을 지켜준 것을 스스로 나눔으로써 하늘나라의 이치를 깨닫고 그렇게 함께 세상을 누리며 하느님의 모습을 되찾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부자의 고민은 스스로를 놓지 못함에대한 고민이었으나 가난하고 부족한 이들은 세상의 가치에서 하느님으로 연결된 끈이 없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 예수님의 말씀은 동일하게 해석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우리 역시 사람을 살리고 도울 수 있는 사랑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계명도 지키고 하느님 나라의 문도 두드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법으로 알고 필요하고 적당함 안에서 행동하는 사람은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지키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결국 그 부자가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그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줄 때 하느님의 마음을 알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에게 하늘나라에 함께 할 친구들이 생겼으면 합니다. 그 깨달음의 열쇠는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 일이 쉽지 않지만 그도 역시 하느님의 사람이기에 전혀 불가능할리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만큼 우리가 자신을 버리는 일이 어렵다는 것으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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