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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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는 선언이 울려 퍼집니다. 산 위에서 내려 앉은 사람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신 행복선언이 이제 평지에서 이루어집니다. 주님이 평지에 서 계신다는 뜻은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행복이라는 주제는 늘 미래의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나마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늘 소소한 곳에서 언급되고 우리가 누리고자 하는 행복은 늘 먼곳에 또 높은 가치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복음'이라고 부르는 이유와 가치는 먼 미래가 아닌 '지금 바로 여기'에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그분과 함께 있는 이들이 행복했던 이유는 그분 덕에 기적을 구경하고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에 흥분된 상태를 느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가난했고, 굶주렸고, 눈물 짓는 날이 많았고, 사람들의 모진 태도 속에 상처 받는 일들도 빈번했던 시간 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우리에게 하느님이 함께 계심을 알려주셨고 그런 우리가 이미 하느님의 사랑 안에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매 시간 하루를 사랑으로 지낼 수 있는 같은 현실임을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예수님은 작은 행복이 아닌 지금 우리가 확실한 행복한 사람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온 사방에 모여온 이들이 단지 예수님 곁에서가 아니라 늘 행복한 이유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와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그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구조, 환경, 불의가 승리하는 세상. 그들이 가진 몫으로 모든 이들 위에 군림하며 눈물짓게 하고 미움 받게 하고 소외 당하게 만드는 모든 것은 그대로였지만 그것은 사람이 자신만을 생각하는 오래된 잘못으로 착한 이들이 일방적인 피해를 입었던 역사의 반복은 계속됩니다. 물론 그 행복한 이들 위주로 모든 역사가 적혀져 기록에 남겨졌기에 그만큼 불행한 이들의 역사는 가려졌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 속에 불행의 몫을 짊어진 이들을 다시 행복으로 끌어 내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이들에게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묻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바뀌는 것이 있느냐고? 예수님을 혁명가로 부르는 이들도 있지만 현실에서 예수님은 힘 없는 군중이었고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까지 힘 한 번 써보지 못한 보통의 백성이었을 뿐이라는 것도 어김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 위에 올려진 저 십자가는 예수님 스스로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오늘 불행을 선언당한 이들의 힘으로 더 큰 힘을 가진 이의 손을 통해 이루어진 살인사건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어서 그 때의 사람들은 확실히 행복했습니다. 그분과 함께 있을 때 그들은 가난하지 않았고, 배고프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울지 않아도 괜찮았고 그들은 누구의 미움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불행하게 했던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계신 가치에 따라 천국은 하늘에도 또 땅에서도 있을 수 있었습니다. 


 

행복선언을 듣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행복한 사람입니까? 불행한 사람입니까? 


 

이 말씀을 장차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의 말씀으로 듣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불행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면 이 말씀은 백성의 위치가 아닌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그리고 때때로 그리스도의 위치에서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라면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행복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위치라면 우리 때문에 사람들이 적어도 이런 이유로 불행을 느껴서는 안됩니다. 


 

곧 그리스도의 형제들이 모인 성당은 그 자체로 행복의 자리여야 하고 우리는 행복을 서로 나누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우리를 불행으로 몰아가며 하나라도 확실한 행복을 바라는 이 슬프고 안쓰러운 세상에서 이 행복이 왜 가능한지 증언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처럼 사랑하고 그리스도처럼 살며 사람들 하나도 놓치지 않도록 선하게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 이루어야 합니다. 


 

그것이 행복선언의 증언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어디에서건 행복하십시오. 이미 복된 이들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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