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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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의 의미를 밝혀주는 여러 장면들이 한 주간 내에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입니다. 우리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 그리고 남은 열 두 광주리에 가득한 빵. 그리고 오천명이 넘는 엄청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다른 것에도 남아있습니다. 그곳이 '외딴 곳'이고 '시간도 늦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그 외딴 곳까지 주님을 찾아 왔다는 것이 주님께 일으켰던 생각이 더 가슴에 남습니다.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기적은 그 크기와 내용보다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일으킨 변화는 사람들이 어떤 처지에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지금 우리에게 예수님은 이 놀라운 기적의 주인공이 되어 계시지만 실제 그 자리에 온 이들은 주님의 이 기적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곧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나선 이유는 그 능력의 예수님을 보러 온 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처지는 '목자 없는 양들'과 같았다 합니다. 
 

모두가 하느님을 알지만 누구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이들. 그래서 모두가 기도하고 율법을 지키지만 누구도 하느님 덕에 기뻐하거나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예수님은 평생에 만나기 힘든 사랑의 하느님을 알게 하는 존재였고 그래서 그들은 먼길과 고단함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그들에게 선생님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들을 위해 하느님께 제사를 올리는 사제들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도 그들은 도무지 아무도 없는 듯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무것도 없는 주님에게서 물질적인 어떤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닐 겁니다. 그분은 재력이나 능력, 혹은 지식이나 지위를 갖고 계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기대치는 우리가 기대하는 주님의 것과는 많이 달라보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살아있는 말씀, 곧 그들의 삶에 단 한번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기쁜 소식을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귀하게 대하는 분의 목소리와 그분과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미 함께 계신 하느님이 그들에겐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 외딴 곳에서 해질녘까지 함께 머문 단 한사람에게서 그 하느님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음이 오늘 기적이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래서 이 기적은 주님에게는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는 저녁 식사였고 그 시간을 통해 외딴 곳의 적막함도 해질녘의 두려움도 사라져버립니다.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의미는 그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분과 함께 있고 그분은 우리를 걱정하고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하늘나라가 어떤 것인지 우리 중 정확히 아는 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의 모든 장면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메세지와 그 생생한 내용이 모두 실려 있습니다.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 보다 외딴 곳과 해질녘을 기억하며 이 기적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 중 많은 이들도 여전히 이 주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필요에 답하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머무시는 주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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