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5일 주님 공현 대축일

by 별지기 posted Jan 0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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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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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공현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구세주로 드러나신 날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또 한 번의 성탄이라 할 수 있는 날입니다. 주님의 공현을 나타내는 여러 장면이 있습니다. 동방 박사의 방문, 그리고 성전에 봉헌되는 주님의 모습, 그리고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당신의 첫 기적을 행하신 것, 그리고 공현을 준비하며 세례자 요한이 사람들 앞에 하느님의 어린양을 선언하는 장면 등입니다. 


 

대축일의 복음 속 예수님의 탄생을 세상에 드러낸 것은 하늘 위의 별이었다 합니다. 당시 세상 모든 곳이었던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주님이 단지 이스라엘만의 구세주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정작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왕이 태어났음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권력자는 그 예언이 이루어짐을 자신의 자리에 대한 위협으로 느낍니다. 그리고 무죄한 어린 아이들을 해치는 잔인한사건을 벌임으로 인해 주님을 이집트로 밀어 내고 맙니다. 
 

동방박사의 모습이 마굿간 앞을 차지하는 시간이지만 그들의 기쁜 방문은 그 밤을 뒤로 먼지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헤로데의 착각과 욕심을 피해 그들이 사라졌듯 구세주의 오심도 사람들 사이에 드러나지 못하고 영문 모를 피바람만 불었던 것이 첫 공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공현은 다른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입니다. 성전에서 주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으로 두 예언자에게 드러나지만 그분의 탄생과 성장은 감추어져 버립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예수님을 증언했던 세례자 요한도 주님을 따라나서지 못합니다. 요르단강에서 나타난 표징은 그야말로 하느님이 전해주시는 징표였지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섬기고 따라나선 이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카나의 혼인잔치는 주님의 첫 기적이지만 그 기적은 혼인잔치의 흥을 넘어서지 않습니다. 


 

모든 사건이 주님이 우리 구세주로 드러난 사건이지만 이 사건들이 그리 큰 이야기가 되지 못한 이유는 주님이 우리들 어딘가로 오셨기 때문이고 우리가 말하는 대단하고 위대한 탄생과는 거리가 멀었던 주님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공현대축일도 주님의 거룩하심과 위대하심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또 다른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공현 사건들에는 하나같이 보지 않고도 믿었던 신앙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무지 속에도 하느님의 뜻은 어김 없이 우리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마굿간을 찾은 동방 박사들은 하늘에 뜬 별 하나를 향해 먼길을 걸어왔고 모두가 그 별이 가르쳐 주는 한 아기를 의심 없이 유다인의 왕으로 믿고 영원한 왕권을 상징하는 예물로 경배합니다. 성전에 봉헌되시는 주님을 본 두 늙은 예언자들도 아기 예수님을 보면서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고백하며 기뻐합니다. 또한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성모님은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주님께 알리며 주님이 그 혼인을 지켜주실 것을 이미 알고 계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보지 않고도 믿는' 이들의 모습이 우리가 주님 공현 대축일에 지녀야 할 마음가짐임을 느낍니다. 우리는 늘 주님의 뜻을 확인하고 싶어하고 그것을 한 번쯤은 경험해야믿음이 가능하다는 말을 하지만 주님 공현에 만나는 믿음의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상식'은 수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우리 곁에 오신 주님을 몰랐던 이유는 우리가 사는 방식에서 얻어진 그 상식 속 대단하고 위대한 사람을 머리 속에 그리며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헤로데의 착각도 그가 차지한 그 자리가 무수한 이들의 피를 밟고 서 있었던 곳이었기 때문이었고 사람들 속 구세주의 탄생 역시 세례자 요한 정도의 알려진 기적 속에 가능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하지만 주님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서 사람들의 생각에 따른 삶을 살지 않으셨고 우리 속에서 자리하며 우리와 같은 삶 속에서 하느님의 구원을 알려주셨습니다. 


 

곧 주님의 공현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삶을 항상 낮은 것으로만 생각하는 우리는 주님의 삶의 자리와 같은 자리에 있음을 생각하고 신분이나 상황의 변화보다마음의 변화를 먼저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의 공현이 대단한 사건이라면 우리가 태어난 순간, 또 우리가 이름을 얻은 이유, 그리고 우리가 사는 내 삶의 자리는 분명 귀하고 거룩한 자리입니다.